-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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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사람이냐? / [12-1 환자컬럼]
“야! 니가 사람이냐?”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고, 창구 앞은 시끄러웠다. 또 동네 깡패가 왔나 싶어 나가보니, 한 중년여성이 전화기에 대고 절규하듯 악을 쓰고 있었다.
“너는 왜 엄마를 돌보지 않는데? 엄마 치료비는 왜 나 혼자 내야 되냐구?”
병원이 떠나갈 듯 시끄러웠지만 아랑곳없이 소리는 지속되었다.
“야, 됐어, 됐다구! 오빠면 다냐?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끊어!”
전화기가 부서질 정도로 소리를 내면서 끊어버린 중년여성은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던 직원들이 서로 쳐다보며 싱긋 웃는다. 이런 광경은 매우 익숙하다는 표정이었다. 창구의 시끄러운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질문은 남아 있었다. ‘니가 사람이냐고?’‘사람이 뭔데?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 거지? 그 여성의 날카로운 외침은 스스로를 향한 질문으로 진화했다.
이틀 전, 응급실을 통해 알콜중독 환자가 각혈을 하며 들어왔다. 검사를 해보니 만성폐쇄성 폐질환과 결핵에, 기흉(가슴에 공기가 찬 병)까지 있었다. 상태가 안 좋아, 의사의 지시에 의해 중환자실로 옮기고 격리치료를 했다. 우울증과 헛소리를 하는 등 정신질환 증세도 보였다. 그러나 간병인은 물론 보호자도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하던 간호사를 손으로 공격하여, 간호사들이 기겁을 했고 결국 사지를 침대에 묶어 놓았다. 신원을 조회하여 간신히 친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전화로 형의 상태를 말하니, 보호자 자격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단다. 이 또한 익숙한 광경, 흔한 장면이다.
얼마 전 병실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의료진의 눈을 피해, 연필깍이 칼로 손목의 동맥을 끊는 자해를 감행했다. 자살미수였다. 급하게 응급조치를 하고 가족에게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치료비 지원 측면에서 본다면 차라리 가족이 없는 편이 낫다. 실질적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서류상으로 동거하는 직계가족이 존재하면, 사회안전망 차원의 정부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무팀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가족이 있으면서도, 보호자 없는 독거노인으로 방치되어 살다가, 치료가 어려운 상태로 응급실에 오는 노인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독거노인들의 대부분은 가족이 있으며, 그 가족들 대부분은 연락이 되지 않거나, 어렵게 연락이 되더라도 보호자로서 자격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그 또한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가장 매력적인 해법을 제시한 사람은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던 맹자(孟子:B.C.372~B.C.289) 다. 맹자는 공자가 죽은 뒤 백년 좀 넘어서 탄생했는데, 왕도정치를 주장하며 전국시대 중기에 살았던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맹자는 측은지심 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측은의 마음이란 갓난아기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아이를 구해야겠다고 반사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운 감정이다. 겨우 기어다니는 어린아이가 한 발짝만 떼면 우물에 빠지려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 우리는 아이를 구해야겠다고 느끼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몸을 날려 아이를 구하려 할 것이다. 맹자는 이 일이 “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을사람들과 친구로부터 어린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다”[공손추 상 (6)] 라고 갈파했다.
인생에서 큰 시련을 겪어본 사람은, 현재 시련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이 시련을 겪는 것처럼 마음 아파 한다. 부모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으면, 밖에서 만나는 노인들이 무심하게 느껴지지 않고, 강아지를 키우면, 집을 잃고 헤매는 강아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인 공감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어떤 사려나 이해타산이 개입하기 이전의 마음이며, 남의 불행을 무심하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마음이다. 순간적으로 움터 나오는 이 새싹 같은 마음이 바로 맹자가 착하다고 하는 본성, 즉 성선설의 주장이다. 또한 사람이 타고난 바탕은 선하기에,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바탕을 드러내서 선해질 수 있다는 것이 성선설의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선한 바탕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지 못 한다고 여긴다. 어쩌면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람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아마 욕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성찰하며, 사람의 길을 가게 하는 것도, 사람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도 인간의 욕망이다.
내가 맹자에게 매료된 것은, 그가 인간을 사랑의 존재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관계망속의 존재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타인을 염려하는 능력이다. 함께 느끼는 공감의 능력을 통해 타인과 연결하는 것이 인간의 본모습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인간은 고립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넘나든다. 너무 이상적인 느낌마저 들지만, 맹자는 인간에게 이기심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맹자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는 이기적이지만, 자신을 자기 한 몸 안에 가두지 않고 밖으로 뻗어 가려는 사랑의 마음도 있다는 것이었다.
‘니가 사람이냐?’는 질문에,‘사랑만이 사람이다’라는 아주 통속적인 답안지를 작성했다. 사랑만이 다시 시작하게 하고, 우리의 삶에 생명을 준다. 내안의 연민과 측은지심을 아무리 살펴봐도, 똑같은 답안지가 나올 것 같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도 아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만이‘사람’이다.
[p.s]
참, 연구원은 책을 쓰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다.[스승님 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