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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9일 23시 55분 등록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음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음악의 전문가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한다고는 조금 말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느 정점의 순간에, 추락의 순간에 나를 황홀하게 만들고 위로해주는 친구 같은 음악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음악 하나. 음악과 사람 사이에는 깊은 공명이 있습니다. 음악과 사람의 공명, 그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저는 음악이 주는 힘을 믿습니다. 제 글을 읽기 전에 음악을 꼭 듣고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병곤의 뮤직라이프, 뮤직 스타트~

 
음악과사람사이.jpg

 

가리워진 길

 

유재하

 

보일 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 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 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 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되 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고 가리워진 길

 

 


거리에는 눈이 푸설거리며 떨어지는데 저는 전철을 갈아타고 있었습니다. 우측 보행이라는 팻말이 잠깐 제 눈을 스쳐 지나갔지만 조금도 우측으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발 디딜 팀도 없는 빽빽한 공간 속에서 여유를 찾으려고 한 호흡을 쉬고 걸어보지만 길은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그 숨막히는 찰나에 이어폰에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 나왔습니다. 바이올린 켜는 소리와 함께 사선으로 내리는 비처럼 한 사람이 켜켜하게 다가옵니다.

 

그와 나는 오랜만에 만나서 소주 한잔을 하고 볼그족족한 얼굴로 노래방에 갔습니다. 그는 취중에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불렀습니다.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길.”이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제 갈 길을 모르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노래는 그 누구도 아닌 저에게 목놓아 부르는 노래로 들렸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 바쁘게 돌아가는 프로젝트에서 그의 몸은 아토피와 과민성 대장증상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짜 힘들어 한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라는 것을 저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가리워진 길을 터주고 싶었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첫 책을 목놓아 썼습니다.

 

살다 보면, 내 앞에 부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잔뜩 껴 있는 날이 있습니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갓길도 없는 길을 달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방황하는 그때, 누군가 ‘짠’하고 나타나 위로와 힘이 되는 한 마디를 건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의 길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지난 주 홍대 앞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오랜만에 불렀습니다. , 그런데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길이라도 자세히 보면 길은 보인다는 것을.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행운처럼 무지개는 떠오른다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길’은 우주가 저마다 준 소명을 찾는 것임을. ‘그대여 길을 터주오’의 그대는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임을. 길은 내 안에 있습니다.

 

유재하의 모든 노래는 사랑하는 한 여인을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만 저는 다시 노래방에 가면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나오는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구절처럼 결연함으로 불러보고 싶습니다.

 

 

IP *.154.234.5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10.12.10 11:26:24 *.108.81.47
병곤씨, 잘 지내지요?
병곤씨의 뮤직라이프 열독자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왜냐?
너무 아는 노래가 없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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