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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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대한 기억들
당신에게 강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지구과학자들에게 강은 ‘지구’라는 커다란 하나의 생명체 안에서 육지의 어느 구간을 흘러가며 침식과 퇴적을 일으키는 변화의 요인으로 이해될 수 있고, 지리학자들에게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나누기도 하고,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가르기도 한다. 더러 나라들끼리는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국경이 되기도 한다. 문화인류학자들에게 강은 ‘문명의 발상지’로 이해된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으로 기억되는 ‘비옥한 반달모양’의 지역에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부터 이집트, 갠지스, 황화 문명으로 기억되는 인류 4대문명의 발상지들이 모두 강을 끼고 시작되었다.
하지만 강은 학자들의 이해 이상이다. 수많은 시인들의 눈물과 함께 흘렀고 작가들의 상상 속에서 용이 되기고 하고, 풍요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느 문명의 신화 속에서도 강은 빠지지 않는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다. 인류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흘렀고,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스튁스 강은 산자와 죽은 자의 구분이고, 한 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의미하며, 다시 레테의 강을 건넌 자는 이승에서 있었던 모든 일과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망각의 강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틴어: alea iacta est/alea jacta est)’는 말로 잘 알려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9년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에게 루비콘 강을 건너는 일은 로마의 국법을 어기는 일이었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이었다.
기원전 206년, 중국 한(漢)나라의 한신이 강을 등지고 진을 쳐서 병사들이 물러서지 못하고 힘을 다하여 싸우도록 하여 조(趙)나라의 군사를 물리쳤다. 1592년 임진왜란 시절, 신립 장군은 북상해오는 왜군을 맞서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끝내 패배하고 만다. 부하장수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강물에 몸을 던진 이들이 어디 사내들뿐인가. 1593년 7월, 28일간의 지루한 공방전 끝에 진주성이 함락되고, 왜군들은 진주 남강의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인다. 경상우병사였던 최경회의 후첩이었던 논개는 관기로 위장하여 술에 취한 왜장과 함께 푸른 남강(南江)에 목숨을 떨구었다. 나라의 운명은 여인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았다. 백제의 몰락은 삼천궁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고, 백마강에 꽃처럼 흩뿌려졌다. 사랑하는 이를 따라 강물에 몸을 던지는 백수광부의 아내 곽리자고의 이야기도 <공무도하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요르단 강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서 처음 세례를 받았던 곳이다. 기독교에서 강은 ‘죄를 씻고, 새로 태어남’을 의미한다. 지금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빠뜨릴 수 없는 성지순례 코스가 되고 있다. 인도의 갠지스 강에서는 몸을 씻는 이들 때문에 강이 더러워졌다 할 정도다. 강물이 몸과 마음을 씻어 준다고 여전히 믿어지고 있다.
강은 풍요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집트 하류지역의 풍요는 매년 정기적인 범람을 통해 상류로부터 풍부한 유기물을 날라다 주는 나일강의 선물이다. 비단 농작물을 키워내는 일만이 아니라 매일같이 먹고, 씻어야 하기에 문명과 도시들이 크고 작은 강을 끼고 형성되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다. ‘라인강변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도 거기서 나왔다.
때로 강은 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 한번 흘러가면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는 이유 때문일까.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그려진 몬타주 강은 유년시절의 추억으로부터 이어지는 노먼 멕클레인의 달관한 듯한 인생과 가족사를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또 그랜드 캐년을 깎아 놓은 콜로라도 강은 그 자체로 지구의 연대기를 기록해놓은 타입캡슐이다.
그런 탓일까. 강을 따라 가는 것이 순리라고 믿어지기도 하고, 물 흐르듯이 사는 것이 삶의 지혜로 배워지기도 한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일은 반역이고 대단한 용기와 힘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어성전에 연어들이 모여들 듯, 흐름에 제 몸을 맡기지 않고 끊임없이 헤엄쳐 오르는 것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본능의 힘이기도 하다.
강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홍수로 매년 목숨을 잃어야 하는 일본인들에게 강과 하천은 분노한 용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화가 나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악마의 형상이기도 했다가, 순리를 따르면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내게 강은 무엇일까.
젖줄.. 포용.. 치유.. 두려움이자 한없이 감싸 안고 도는 것.. 수많은 생명들을 품어 안고 키우는 존재.. 부끄럼도 모르고 꾀복장이 친구들과 멱을 감던 유년시절의 따뜻함이 묻어 있는 곳.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단어가 있다. 여인의 품... 바로 어머니였다.

산골짜기 상류에서부터 바다로 이어지는 하류까지를 쭉~ 따라 찰칵찰칵 찍어내다보면
신진철이라는 한 남자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앓고 있던 어떤 아픔을 스르륵 씻어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그의 어머니가 소리없이 평생을 그래왔던 것처럼...
P.S. 저의 '남편 탐구'에도 유용하게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


진철아, 첫 문장, 첫 단락이 영화의 시작이다. 단번에 사로 잡아야 한다.
그것은 은근해서 도저히 뿌리칠 수 없거나 너무도 도발적이어서 순식간에 당하고 말아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스미듯 아름다운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암소를 데리고 물가로 가듯, 저녁이 침묵을 배불리 마시도록 기다린다.
이윽고 그들은 몸을 일으켜 침묵을 실컷 마신 저녁을 몰고, 따뜻한 등불 곁으로 데리고 간다"
- 막스 피카르트
순식간에 겁탈하는 문장은 이런 것이다.
"나는 오직 피로 쓴 것 만을 사랑한다. 퇴락한 잉크대신 팬끝에 피를 적셔라.
사람들은 이제야 이 피가 그대의 정신임을 알리라"
이게 누구의 글이냐 ?
넌 그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너는 첫마디 유혹에 실패했다. 잔뜩 무게를 잡고 젊잔을 빼지 않느냐 ? 시인의 장기가 아니지 않느냐 ? 가슴을 무찌르지 않으면 지식 조차 전달하지 못한다.
너는 아름답게 첫 문단을 쓰도록 해라. 하고 싶은 이성적 설득이 필요하면 적절한 곳 어디를 찾아라 . 그러나 처음이어서는 안된다. 이 글을 다시 고쳐 써라. 순서를 바꾸고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을 재배치해라. 시와 산문이 그 특성을 보완하고, 논리와 스며드는 감성이 함께 하게 해라. 너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글로 훈련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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