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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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기적 / [12-4 컬럼]
무대의 주인공은 화려하다. 조명이 빛나는 무대에서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와 뜨거운 열기, 박수갈채를 받아본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무대의 힘을 깨닫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축제기간에 개최된 교내 가요제에서 자작곡으로 금상을 받은 것이었다. 당시 상품으로 받은 크리스털 유리잔은 막걸리 잔으로, 잔 받침대는 재떨이로 썼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광장에서 저녁 노을과 함께 화려하게 빛나던 스포트라이트 조명, 후배가 안겨 준 장미 꽃다발, 그리고 4천명이 질러대는 우렁찬 함성과 박수소리였다. 연예인들이 무대의 환호와 조명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날이었다.
그 이후,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베짱이 같은 삶을 살았다. 2006년에는 레일아트 창작가요제에 나가서 우수상을 받고 음반도 녹음했다. 세상에 없던 것이 내 이름으로 나온 흥분을 만끽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었다. 마치 다른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더 큰 흥분을 찾아 무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음악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기쁨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사는 삶이야 말로 천국같은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노래’ 부르는 재미가 없어졌다. 직장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직장인 밴드’를 꾸리기도 했고,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악기를 배워 콘서트를 하기도 했지만, 모두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그냥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무대 뒤의 공허감 탓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무대의 경험이 일상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모든 환호와 고양된 감정은 허망한 신기루가 되고, 무대 위의 화려함은 일상의 권태로 이어진다. 수많은 록 스타와 위대한 뮤지션들이 마약과 술을 달고 사는 이유는, 눈앞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와 함성을, 무대에 내려와서도 잊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무대가 있다. 그건 병원의 환자들을 위한 자원봉사의 무대다. 인간은 의미있는 삶을 원한다. 나 또한 그렇기에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한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음악을 하는 재미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연말이 되면 이런 저런 따뜻한 모임들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병원에서도 몇 개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사회사업팀에서 개최한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성탄 축제, 호스피스병동에서 호스피스 환자를 위해 마련한 캐롤잔치,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 미사때의 특송까지 이번 주에는 3군데나 초대되어 노래를 불렀다.
환자와 상담을 하고 업무를 보다가 공연시간이 되면 강당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는 식이다. 입만 가지고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멘트와 소품, 합창의 경우라면 미리 연습도 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 외로 준비할 것이 많은 것이 공연이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데,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쁜 업무 중에 3군데를 소화하느라, 육체적으로 힘든 일주일이었다. 내가 이렇게 초대를 많이 받는 이유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노래를 아주 잘~하기 때문이다. ㅎㅎ 둘째, 음향이나 마이크시설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전혀 따지지 않기에, 주최측의 입장에서는 아주 편안한 초대가수가 된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공짜다. ^*^
음악은 힘이 세다. 행진곡을 들으면 행진하는 기분이 들게 하고,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 레퀴엠을 들으면 엄숙해진다.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 하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멜로디에 가눌 길 없는 슬픔도 진정된다. 예술이 좋은 것은, 인간의 감정을 다독거려 주는 기능이 아닌가 싶다. 자원봉사 무대를 서면서 음악이 가진 긍정적인 힘의 크기를 실감했고, 음악을 통해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작곡의 원칙을 세워 놓았다.
‘나를 위로해주지 못하는 음악은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 노래의 역할은 위무다.’
노래의 기능이 어찌 '위무' 하나에만 있을까마는, 어쨌든 그건 내 원칙이다. 가끔 내 노래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는 인사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적지 않은 기쁨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요가가 그러하듯, 나에게는 노래가 고단한 삶의 마취제다. 내 노래가 누군가의 감정을 건드렸다면, 그것은 내가 그러한 감정으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위로한 것처럼 노래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그때부터 그 노래는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니고 살아있을 것이다.
행사장에서의 노래는 대부분, 분위기를 띄우거나 합창을 유도하면서 힘든 병원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지만, 그와 반대로 노래를 부르면서 가장 마음이 경건해지는 곳은 호스피스 병동이다. 말기암 환자인 그들은 대부분 무표정이다. 감정의 변화가 없다. 죽음이 그들의 곁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그저 기타를 튕기며, 조용히 그들의 마음을 위무할 뿐이다. 그것은 조셉 켐벨의 말처럼 '세상의 슬픔에 기쁘게 참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인생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인생에는 두 가지 삶 밖에 없다. 한 가지는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삶.
또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후자이다."
언젠가부터 나도 기적같은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적은 큰 것이라 생각했다. 성서의 예시처럼 곱추가 허리를 펴고, 장님이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력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기적은 아름다운 눈이다. 암환자에게 기적은 돈이 아니라 건강이다. 병상에 누워 본 사람은 알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숟가락을 들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것, 자신의 힘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것이야말로, 믿을 수 없는 기적이 된다는 것을..
매일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삶!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천국이 아닐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군.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라네"
- 영화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 중 -


책을 읽다 보니, 제가 쓴 컬럼의 개선점이 저절로 보입니다.
"....이런 일은 작가가 자신의 감정에 너무 빠져 버려 원래 하고자 하던
이야기의 방향을 망각하고 본래의 줄거리에서 너무 멀어져 버렸을 때에 일어난다..."
-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
지난 주에, 3일이나, 노래를 부르러 다니면서, 가장 강하게 느꼈던 부분이라
컬럼에 넣었지만, 결론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니, 굳이 연결이 자유롭지도 않은데
앞부분에 표현한 과거의 경험과 노래와 음악에 대한 생각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컬럼을 다시 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아비판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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