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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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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일 22시 02분 등록

우리 엄마는 툭 하면 가방을 싼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큰 가방이다. 저것이 창고에서 나오기만 하면 나는 홀로 집에 남겨져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우둘투둘 달린 지퍼의 가방 입구는 이빨을 드러내고 입을 쩍 벌리고 자고 있는 악어처럼 보였다. 저 큰 가방의 입은 엄마의 짐은 물론 나의 식욕과 의욕을 모두 다 쓸어 삼켜 버렸다. 나 대신 저 악어를 끌고 엄마는 또 어디로 가려는 걸까…… 슬쩍 물어다 숨겨 버리고 싶지만 대적하기에 나에게는 산만큼이나 커 보였다. 마음은 슬픈 척 하고 싶지 않아 엄마 뒤를 쫓아 다니고 싶지만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려 슬며시 내 자리로 들어와 깔아 놓은 방석 밑으로 들어가 눈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내 풀 죽은 모습은 들키고 싶지는 않지만 난 엄마가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거실을 왔다 갔다 분주한 엄마의 발을 보면서 나는 엄마는 항상 가방을 쌀 때 제일 기뻐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엄마가 가방을 싸는 이유는 딱 두 가지, 늘 그리워하며 사는 형아들을 보기 위해 미국으로 갈 때와 다른 하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을 갈 때이니 저렇게 발이 공중에서 떠 다닐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의 분주함이 멈추고 시계와 달과 구름만 움직이는 새벽시간, 엄마는 내 곁에 앉아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리오, 엄마는 이 세상 개들을 다 돌보라 해도 돌 볼 수 있어. 그리고 밥 주고 씻기고 똥 치우고 하는 것 하나도 힘들지 않아. 하지만 너희가 아플 때와 이렇게 떼 놓고 어딘가로 가야 할 때 너무 많이 힘이 드는구나. 이번에는 금방 돌아올 거야. 캄보디아란 나라에 가서 많은 것 보고 올 테니 너도 잘 있어야 해. 오리오 잘 자라엄마는 눈물을 닦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괜찮아요. 힘들어 하지 말고 잘 놀다 오세요. 사람들과 사는 반려 가족들의 가장 큰 아픔은

이별이에요. 하지만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 내 냄새가 배어 있는 잠자리, 친근한 밥 그릇과 물 그릇이 나와 함께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자에 담아 슈퍼에서 배달되어온 물건처럼 다른 집에 데려다 놓고 가는 이별이나 길에다 풀어 놓아 버리는 그런 이별만 아니면 돼요. 그런 이별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참고 잘 지낼 수 있어요. 전쟁에 나간 주인 오디세우스를 20년이나 기다린 <아고로스>도 있는걸요. 이쯤이야……사람들이 우리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들은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아요.’

 

창 밖을 보니 내 꼬리보다도 작은 하얀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저 비행기 안에 엄마가 있을까? 내내 엄마의 냄새를 그리며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고만 있었다. 배가 슬슬 고팠다. 밥 그릇에 담긴 밥에 금방 퍼준 엄마 손의 온기가 없으니 찬밥이다. 몇 개 집어 먹다 이내 그릇에서 입을 떼고 자리로 돌아왔다. 배변판 기저귀에 쉬를 보아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신이 나지 않는다. 휑한 집은 엄마랑 뛰어 놀던 집 앞 학교 운동장 보다도 커 보였다. 따뜻한 엄마의 체온이 그리워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내 가랑이 사이에 코를 집어 넣고 외로움을 달래다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하루에 셀 수도 없이 내 이마에 뽀뽀 세례를 하는 엄마가 보였다. 내 이마에 엄마의 입술이 느껴지는 것 같아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런데 있어야 할 엄마는 없고 거실에다 들여 놓고 간 빨래 건조대에서 떨어진 회색 양말 한 짝이 내 이마에 걸쳐져 있었다. 잠을 깬 것도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도 쌓여 일어나 온 몸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흔들어 털어냈다. 양말 한 짝이 툭 떨어졌다. 나는 평소에 입에 무언가 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사다 준 인형도 가지고 놀지 않았었다. 또 엄마가 놀자고 공을 던지고 물어오라고 하면 귀가 안 들리는 척을 하고 반대로 돌아 내 갈 길을 가곤 했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저 양말이 이상하게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입에 양말을 물어 보았다. 물고 좌우로 흔들어 보기도 하고, 그러다 놓쳐 날라가면 다시 가서 물어 오기를 반복했다. 재미있었다. 이런 나만의 독립적인 생활을 하며 잘 먹고 잘 놀아야 했는데…… 나는 넘치는 사랑에 부족함을 모르고 늘 불평만 하며 의존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꿈에도 그리운 엄마의 뽀뽀는 그나마 없는 털이 벗겨져 점점 대머리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엄마 입이 가까이 오면 으르릉거리며 거부를 하기도 했다. 그 뿐인가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콧노래를 부르는 엄마에게 우리들의 청력을 과시하며 고막이 터질 것 같으니 끄라고 짖으며 방해도 했었다. 전화를 하면 항상 참을 수 없는 고음의 목소리로 변조해 까까를 달라고 졸라서 결국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쟁취했다. 꺼져가는 생명을 거두어 주고 살피면서 오로지 나에게 퍼부어 준 사랑에 대한 보답은 커녕 점점 나는 엄마를 서열상 나의 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 이건 뭐야?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손에 꼭 나만한 시커먼 개가 들려있었다. 엄마가 내가 외로울까 싶어 햇빛에 검게 그을린 캄보디아산 개를 소포로 보냈나 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데 눈이 어딘지 구분이 안 갔다. 순간 거부감이 확 밀려왔다. 그런데 싫다고 하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갔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탐색을 시작했다. 엉덩이에서 나와 다른 냄새가 폴폴 났다. 오호! 여자였다. 크기도 나만하고 내가 이 집 주인이니 기세 등등에다 만만하기 까지 했다. 그녀는 거실에 꼼짝도 안하고 마치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내가 코 끝으로 쿡쿡 쑤셔도 보고 으르릉 거리며 위협도 해 보았지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서열을 잡을 필요도 없다 생각이 들 정도로 온순했다. 이 생각이 한 10분이나 유지되었을까 그녀는 방울아~’ 소리 한 마디에 갑자기 바뀌어 미친 듯이 뛰어 다녔다. 혼자 얼음, 놀이를 하고 있었나 보다. 외로움을 운운하며 궁상을 떨던 게 바로 어제였는데……일은 한 순간에 벌어졌다. 그녀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뛰어 다녔다. 그리고는 밤이 되자 완전 실신한 자세로 곤하게 잠을 잤다. 내일이 막막했다. 엄마도 없고 아빠도 일하러 간 시간 난 저 들짐승 같은 방울이와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지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사고와 문제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녀는 아침이 되자 기지개로 온 몸을 가볍게 늘리더니만 주어진 자기 밥을 다 먹고 내 밥까지 너끈히 해치웠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내 밥 그릇 접근 금지라는 위협적인 행동도 못 해보고 아침을 쫄쫄 굶었다. 사랑이 없는 밥은 밥이 아니라 사료라느니 온기가 없는 밥은 맛이 없다는 등의 말은 배부른 소리였다. 방울이란 이름을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잡아온 야생 흑곰 같은 저 놈을 당장 이 집에서 데리고 나갔으면 하는 간절함만이 절절했다. 내 예상이 적중했다. 저건 개가 아니라 흑곰이었다. 겨울철 먹이를 찾아 민가에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지는 야생 곰 그 모습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부엌에 달린 작은 베란다에 놓인 쓰레기통을 엎어 뒤지기 시작했다. 내 밥까지 다 먹어 치우고도 모자란 모양이다. 샅샅이 뒤져 다 찢어 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일에 흥미를 잃었는지 내 근처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Oh! My GOD’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시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면 자국어가 나오나 보다. 고개를 밑으로 떨구고 눈만 치켜 뜨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 자세를 뭐라고 받아들여나 하나 순간 멈칫했다. 나에게 복종하는 저자세? 아니면 머리보다 어깨에 더 힘을 주고 눈을 치켜 뜬 공격 자세? 뭐든 다 무서웠다. 사시나무 떨리듯 몸이 떨렸다. 모른 척 눈을 감고 자고 있는 시늉을 했다. 그 때 내가 깔고 있던 얇은 방석이 휙 몸과 분리 되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방석을 사정없이 물고 뜯고 흔들며 뛰어다녔다. 거실은 온통 하얀 솜으로 가득 찼다. 나는 그저 닥친 일을 넋을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가 서는 소리와 한 발 떼는 걸음에 난 당장 엄마가 오는 것을 알았다. 하루에 몇 번이 되던지 엄마와 내가 만나는 상봉 세라모니는 축구 선수가 한 골 넣고 뛰는 만큼의 환희와 기쁨이었다. 그런데 거실 문이 열리자 엄마의 눈은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한바탕 어질러져 있는 거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런 시간이 올 줄 알았다. 엄마는 나는 둘째고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검둥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불난 현장을 보고 전화기를 집어들 듯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귀를 쫑긋 세웠다. 나 역시 이 검둥이의 정체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라구? 그래서 나보고 이 개를 책임지라고? 내가 개를 좋아하는 거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만 사랑이 집착으로 변해 내가 개에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알잖아. 차라리 그저 남들처럼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야 내 마음이 편안해져 여행 한 번 가기도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알잖아. 그래 좋아, 여행은 일 년에 몇 번이라고 쳐. 매일 나갈 때마다 안타까워하고 밖의 생활도 마음 놓고 못 하고 어두우면 집으로 바로 들어오고 하는 것 잘 알면서…… 한 쪽 발목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잡혀 쩔뚝거리며 생활하는 기분으로 살아가는데 이제 두 발목을 내어 주라고? 아니야 이건 아닌 것 같아. 나 마음 약해지기 전에 어서 제자리로 데려다 줘. 몇 차례 버림을 당해 갈 때가 없어 갈 때가 없다고? 아이 난 몰라.” 엄마는 전화기를 놓고 자리에 철퍼덕 앉아 버렸다.

 

엄마의 얼굴에는 여행의 피로함과 난감함이 묻어 있었다. 쉬지도 못 하고 나와 인사도 나눌 시간 없이 엄마는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는 검둥이를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 보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검둥이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름은 방울이, 나이 생후 3개월 반, 성품이 바르지 못하여 가는 곳 마다 쫓겨난 푸들 잡종 강아지였다. 듣다 보니 내가 엄마를 만나 입양 오기 전의 생활이 떠 올랐다. 성격 좋고 외모 출중한 개만이 살아 남는 사회에서 또 하나의 불쌍한 강아지였다. 나는 방울이와 잘 지낼 테니 같이 살자는 눈빛으로 엄마를 올려다 보았다. 엄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춘삼월 방울이란 예쁜(?) 여자 동생을 가족으로 맞아 같이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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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2011.01.03 19:34:54 *.108.52.183
방울이와 동거하게 된 오리오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네요.
개들의 심정으로 쓰느라 힘드셨겠어요.
이거 웬만한 애정과 상상려이 아니면 몇줄 쓰는 것도 어려운 작업일듯해요.
대견하십니다. 누님~ ㅎㅎ
전 요즘 애교발랄 시츄녀석과 낼모래 사람으로 둔갑할 것같은 토끼와 지내는 재미가 솔솔해요,
동물들을 사람이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체온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예전엔 사실 개가 무서워서 가까이 못했는데 머리며 등을 쓸어주면서 전해오는 따스함이 안전하다는 신호라고 제가 느낀다고나 할까요. 
1달뒤에 헤어져서 못보면 벌써부터 많이 아쉬울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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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0:23:05 *.230.26.16
잼있어요. 그리고 좋아요.
강아지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입양된 아이들 이야기 같아서 마음에 다가옵니다.
계속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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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1.04 18:39:18 *.105.115.207
요즘 누나는 개말고는 뵈는 개없는 개비다.
누나 글만 해도 ... 맨 개만 보인다. 개처럼 네발로 개단을 오르고,
개처럼 생각하고, 개처럼 보려고 하는 개 정말.. 개발세발 개나발
(개인의 발전이 세계의 발전이라는 ...)
심지어는 Oh, my  DOG로 보이고.. 개신교, 개바라, 개릴라, 개구리...
누나. 책 잘팔리개엤다. 인세 받으면.. 올 여름 개 어쪄?
참, 누나는 개 안허던가? ㅋㅋ 좋은 개 좋다... ㅎㅎ
아니 무쟈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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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8:41:57 *.30.254.21
은주야..
제목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
그리고..사진을 좀 찍어두면 좋겠다..
글과 어울리는 강아지 사진을
지금부터 많이 확보해 두면 어떨까 싶어..

만화영화...톰과 제리..
마치 그런 만화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미안타,,너 고생해서 쓴 것 아는데..
우짜겠니..웃긴 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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