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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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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7일 20시 50분 등록

수배자, 허클베리의 친구

 

1940년대 초 뉴욕. 검은 선글라스에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한 여성이 보석상 <티파니> 앞을 지난다. 방금 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바로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며 부유한 남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화려한 신분상승을 꿈꾸는 홀리.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이사 온 별 볼일 없는 작가 ‘폴’은 그녀에게 빠지게 되지만...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1961년에 개봉된 오래된 흑백영화지만, 지금도 창문틀에 앉아 기타를 치며 "Moon River"를 부르던 그녀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달빛이 흐르는 드넓은 강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언젠가는 그대를 건너갈 거예요. 멋지게
Oh, dream maker, you heart breaker 오, 꿈을 꾸게 하는 그대, 무심한 그대
Wherever you're going, 그대가 어디를 가든
I'm going your way 난 그대를 따라 갈 거예요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세상을 구경하러 떠난 두 나그네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세상에는 볼 것이 많지요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우린 같은 무지개의 끝을 쫓고 있어요
waiting, round the bend 기다리며, 미친 듯이
My Huckleberry Friend, 내 친구 허클베리
Moon River, and me 달빛이 흐르는 강 그리고 나

 

노래처럼 달빛이 가득 찬 미시시피강을 따라 뗏목이 흐른다. 내 친구 허클베리... 볼 것 많은 세상구경을 동경했던 탓일까... 함께 무지개를 쫓던 또 다른 친구는 지금은 멀리 한강에 살고 있다.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오게 된 것일까. 달빛 찬 그의 눈에 서글픔이 고인다.

 

‘환경부 지정, 생태계 유해종’

이것이 그에게 붙여진 딱지다.

 

2001년 12월, 대한민국 환경부에서는 ‘미시시피 붉은귀 거북’을 생태계 교란 야생동물로 지정하고, 수입을 금지시켰다. 또한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매년 붉은귀 거북을 포획하여 맹금류들의 먹이로 처리한다. 한마디로 미국산 붉은귀 거북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전국각지의 용병을 통해 거북을 생포해오는 이들에게 마리당 얼마씩 현상금도 걸렸다. 한강을 비롯해서 전국의 강과 하천 그리고 호수를 점령해버린 그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 그들이 우리나라에 오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였다. 거북을 귀하게 여기는 한국의 전통은 그들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했으며, 집안에 두고 키우며 햇볕 좋은 거실창가를 내어주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초등학교 앞에서는 병아리와 함께 아이들 손바닥만한 새끼들이 이름도 예쁜 ‘청거북’이 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을 거쳐 집안 구석구석까지 열쇠도 없이 침투하게 된 것이다. 생명력이 강한 편이어서 웬만해서는 병에 걸리거나 죽지도 않았고, 영양상태가 좋은 조건에서 5~6년 정도면 어른들 손바닥만 하게 자란다. 이쯤 자라면 더 이상 키우기가 눅눅치 않다. 매일매일 먹어치우는 사료 비용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도 두 세 번씩 물갈아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장난이 아니다. 애호가들의 말에 의하면 겨드랑이에서 나기 시작하는 냄새 때문에도 가까이두기 어렵다고 한다. 급기야 가족회의가 열린다. 내가 자라던 시절에야, 같이 놀던 바둑이가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면 없어진다 해도 그 이유를 따져 묻지 못했다.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혼자서 결정하지 못한다. 회의에서는 더 이상 키우기 곤란하니 자연으로 돌려보내자는 결정이 그럴 듯하다. 좋은 날을 잡아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냇가나 호수로 가서 “잘 살라”는 인사와 함께 풀어준다.

 

그뿐이 아니었다. 청계천에서 붉은귀 거북을 취급해 온 상가주인의 기억에는 사월초파일이면, 한 박스에 200마리씩 관광버스당 2박스씩 주문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거북의 방생을 통해 세상에 지은 죄를 씻자고 벌인 일들이었다. 모르고 저지른 일이니 죄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붉은귀 거북이 토종인 남생이를 몰아내고, 천적도 없이 대한민국의 온 강과 하천에 군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한들 이제는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신중치 못했던 처사임은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귀담아 듣지 않던 이들의 뒤늦은 후회라고 말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 시절에도 분명히 생태계의 균형이 중요하고, 인위적인 방사가 불러올 재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을 테니까. 모르고 있지 않았다. 큰입배스와 블루길 그리고 황소개구리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설마 했던 것이다. 다만 눈여겨보지 않았고, 귀담아 듣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해 보인다.

 

미시시피 붉은귀 거북과의 전쟁에 마침내 ‘해병전우회’가 동원되었다. 왕년에 귀신도 잡았다는 해병들이면, 그깟 거북이 정도 섬멸하는 것이 대수랴. 용감하다는 팔각모의 노병들은 TV 카메라 앞에서 뜰채로 멋지게 두어 번 붉은귀 거북을 낚아챈다. 물론 연출이다. 방송을 위해 미리 준비한 붉은귀 거북을 뜰채에 담아두었다가 방금 잡아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이어 가장 용감해 보이는 덩치 좋은 해병 하나가 인터뷰를 한다. 그는 섬멸을 다짐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필승을 다짐한다. 몇 해 전 ‘환경의 날’행사의 풍경이다.그렇지만 나는 안다. 이미 한반도에서 가수면 상태로 겨울을 나는 법을 체득하기 시작했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워내기 시작한 그들은 해병도 물리치지 못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용기나 힘으로 주워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을 무찌르듯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돌이켜 보면, 과연 그들의 잘못인지를 묻고 싶다. 아무리 미시시피의 달빛 찬 강을 따라 허클베리와 같이 세상을 향한 여행을 꿈꾸었을망정, 그들은 스스로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그들에게 발급된 비자는 그들이 신청하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토종 물고기들의 씨를 말려 우포늪의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는 큰입배스는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의 단백질공급을 위해 들여왔던 것이고, 뱀도 잡아먹는 황소개구리 역시도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들여왔다. 조금 먹고 사는 시절이 되면서 청거북은 애완용으로 이 땅에 발을 딛게 되었다. 그들 모두는 타인의 의지로 고향을 떠났고, 머나 먼 이국의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조물주가 정해준 운명대로 살 뿐이다. 본능의 의지대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적으로 삼아 총구를 돌리고 있다. 설령 그들을 다 물리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정작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무지한 사랑에 언제까지 관대해야 할까. 적을 삼아 무찌르려는 용기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는 과한 욕망과 무지한 사랑에 대한 솔직함이 먼저 아닐까. 또 다시 강을 살리자고 난리들이다. 강이 죽어가고 있나보다. 그런데 그들은 정작 누가, 왜, 무엇 때문에 강이 죽어가는 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포크래인 앞세워 강을 살리자고만 한다. 그들 말대로 하면, 강이 살아날까? 강에게 먼저 물어볼 일이다.

 

IP *.186.58.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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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1.11 13:22:56 *.236.3.241
이 칼럼을 라디오 대본이라고 생각해 봤다. 앤디 윌리엄스의 'Moon River'가 백뮤직으로 흐르고,
우리의 귀염이 철이 오빠가 운을 띄운다. 1940년대 초 뉴욕, 검은 선글라스에.....
초반은 낭만적으로 흐르다가 생태계 유해종, 배스와 황소개구리가 등장하면서
다큐멘터리가 된다. 중반부의 거친 부분을 유화시키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초반-->중반으로 전개할 때 색의 편차가 좀 커 보여서 한 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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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1.11 16:58:05 *.105.115.207
맞다..상현.. 써놓고서도 도입과 전개의 고리부분이 영 자연스럽지 못해 불만이다.
전개부의 시작이 영화나 라디오 대본이라면... 타이프라이터가 찍히는 소리를 내며...
(따따따다다...) 생태계 유해종! 뭐, 이런식의 효과를 통해 분위기를 확 뒤집겠는데...
글로 그런 전환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지금도 고민중이다... 이 글을 볼 때마다.. 거기가 결려...
또 눈이 오려나.. 쑤신데가 또 쑤시는 것이... 요놈의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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