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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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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0일 08시 55분 등록

미래의 장례식 / [1-2 컬럼]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것도 원하지 않을 때, 한 장의 편지를 써 보도록 해라. 너의 장례식장이다. 너를 알고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네 무덤 앞에 서 있다. 이때 신이 너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 10분간 살아있게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며 네 무덤가에 모여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 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 세상 마지막 연설문을 만들어 보아라.”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첫 수업을 잊지 못한다. 첫 수업이 자신의 장례식 연설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 장례식에 와 있고, 나에게는 꼭 10분이 남아 있다. 내 인생, 마지막 소통의 기회!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회한을 털어놓았으며, 누군가는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맞이했다. 삶의 궤적이 다른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상이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같았다. 그건‘사람’이었다. 부모님, 자식, 배우자, 형제 등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서운함, 그리움까지..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같았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우리는 죽음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생로병사가 함께 하는 병원에서는 죽음이 일상이 된다. 하루에도 몇 명씩 사람이 죽고, 새로운 사람들이, 죽음의 초대를 받고 있지만, 그것은 병원의 일상일 뿐이다. 그리고 병원은 기본적으로 죽음에 무심하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의료절차에 따라, 기계적으로 망자의 처리가 이루어질 뿐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병원은 살아있는 사람, 살아야 할 사람을 위한 곳이지, 죽은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곳이 있다면 아마 호스피스 병동이 유일할 것이다.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들에게 남은 인생을 원 없이 살아보도록 돕는 한 편의 드라마야..”   

노유자 수녀(성바오로 가정호스피스 센터장) 님의 말이다. 노 수녀님은 30년 째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는 불치병 환자들의‘대모’다. 1970년대 초에 간호 수녀로 시작해서 가톨릭대 간호학과 교수, 가톨릭대학교 성바오로 병원장을 역임하며 호스피스와 관련된 일을 했으며, 가톨릭에서는 알아주는‘호스피스 전문가’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던 수녀님은 ‘존엄한 죽음’에서 ‘존엄한 삶’이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죽음은 떠나는 자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남은 자들의 사건이지... 말기 환자가 삶을 얼마나 존엄하게 마무리 짓는가에 따라 남은 가족의 행복이 좌우되거든..” 

삶 마디마디에 맺힌 매듭을 풀어내고, 남은 가족들과의 화해 속에 ‘사랑합니다.’ 껴안고 떠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수녀님은 몇 번을 강조하셨다.“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은 못다 이룬 일에 대한 후회보다,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에 괴로워한다.” 는 것이다.

죽음은 육체의 완전한 소멸이고 모든 것의 끝이다. 그러나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수녀님이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의 이별 인사나, 가족들과의 화해, 사별가족들을 위한 모임 등 사후관리(?) 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다. 
 

삶의 마지막 동행자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수녀님께,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드렸더니,‘걸림돌을 디딤돌이 되게 하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사는 게 계획대로 잘 안되지? 현재 계획으로 만족해야 해...생각해 보면 걸림돌도 다 자기가 만드는 거야. 웰빙은 웰다잉 없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잘 살다 가야 잘 죽지...지금 행복해야 한다...관계를 잘 풀고, 용서하고, 마음에 맺힌 것이 없도록 가는 것...그것이 생을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거야”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그 손을 잡아 보고 싶은 사람들이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잊지 못하는 일들이 바로 내 인생의 가장 의미있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고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일인 것이다.”   

주제의 무거움 탓일까? ‘미래의 장례식’을 현재로 불러와 고민하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글 쓰기 진도가 나가지 않고 매우 힘들었다. 도서관에서 계속 낑낑대고 있는데, 아이들과 아내가 계속 꼬신다. 동네에 무료 얼음썰매장이 생겼으니, 가서 뛰어놀자는 것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썰매장으로 갔다. 찬바람 맞으며 아이들과 한바탕 뛰어놀았더니, 가슴까지 시원해졌다. 머리가 복잡할 땐, 단순한 몸놀이가 최고다.   

아이들에게“지금, 꼭 꼭 해보고 싶은게 뭐냐?”고 물었다. 딸 아이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잘 생긴 현빈이 나오는‘시크릿 가든’을 본 다음, 놀이동산에 가는 것”이란다. 아들은 조금 더 소박하다.‘맛있는 밥 먹고, 놀이동산에 가는 것’이다. 아내는 졸려서 자고 싶단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미래의 장례식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앞당겨 체험해 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의 죽음을 기억하며 ‘지금 여기서’행복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삶에서 바라보는 죽음은 슬픔이지만, 죽음에서 바라보는 삶은 기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죽음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이들에게, 미래의 장례식은 진짜로 잘 사는 방법을 깨닫는, 현재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모든 삶은 결국 소멸한다. 좋은 죽음이란, 잘 사는 것의 최종지점을 가리킨다. 
‘살아서 웃다가 죽다.’  내가 바라는 미래의 묘비명이다. 난 그렇게 죽고 싶다. 그러나 살면서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살면서 죽음을 기억하면 된다. 그러면 '삶은 진지하고 즐거우리라.'는 그의 말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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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1.11 13:06:50 *.236.3.241
파토스와 에토스가 행복하게 만난 글이네요^^
최우성의 사골이 진하게 우러난 글에서 감동이
느껴집니다. 소재의 무거움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하셨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시도였다는 생각입니다.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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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1.11 22:07:21 *.105.115.207
삶에서 바라보는 죽음은 슬픔이지만, 죽음에서 바라보는 삶은 기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에서 나도 뭔가를 얻었다.. 강건너 불구경...
형! 좃습니다.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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