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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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귀염둥이 현우, 여행을 시작하다.
우리는 이제 혼자 모험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다. 시대의 영웅들이 우리를 앞서 이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궁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제 영웅이 길에다 깔아놓은 실을 붙들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무서운 괴물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는 신을 만나게 되고, 남을 죽여야 하는 곳에서는 저 자신을 죽이게 되며, 외계로 나가야 하는 곳에서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되돌아오게 되고, 외로워야 할 곳에서는 온 세상과 함께 하게 될 것임을…… - <신화의 힘> 조셉 캠벨
“선생님, 엄마가……”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 하고 현우는 갑자기 눈물이 한가득 고여 흘러내린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현우에게 받았던 명랑 쾌활한 느낌과 대비되는 모습이 낯설다. 무슨 일일까 덜컥 겁이 났다. 애써 진정을 하고 “응, 엄마가 무슨 일이 있으셔?”라고 물었다. 현우는 엄마가 어제 저녁에 너무 아프셔서 오늘 아침 병원엘 가시는데 걱정이 되어 조퇴를 하고 따라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들려주는 현우의 이야기에 그만 함께 울어버렸다. 엄마가 예전부터 빈혈이 있으신데 돈이 없어서 돈 아끼려고 병원에 가지 않으시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어 어제 동네 병원에 누나랑 자기랑 모시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여기서는 정확한 병명도 알 수 없고 알아도 치료도 힘들 것이라고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라고 해서 오늘 큰 병원에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하며 현우는 “피똥까지 싸셨데요.”하며 이내 크게 흐느끼며 울어버린다.
의사선생님도 알 수 없는 심각한 병일지도 모르고 그 때문에 엄마가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현우에게 그런 큰 슬픔을 가져다 준 것이다. 갑자기 어렸을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딱 현우만 했을 무렵이었다. 엄마가 아팠다. 허리도 아프고 가슴도 아프고 고통 때문에 숨쉬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엄마. 밤마다 잠을 청하기가 두려웠다. 혹시나 밤사이 엄마가 인사도 없이 내 곁을 떠날까봐. 새벽에 눈을 떠 안방에서 들려오는 엄마 숨소리를 확인하고는 안심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현우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 슬픔의 근원일 것이다. 현우는 나였다.
조퇴하는 현우에게 병원에 가서 진찰결과가 나오면 꼭 연락하라고, 현우가 눈물 흘리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더 아프실 테니까 엄마 앞에서는 울지 말고 선생님 앞에서는 언제든지 울어도 좋다고 말하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날 저녁 진찰결과는 내일 나온다며 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온 현우의 얼굴은 여전히 생기가 없다. 오늘하루도 잘 보내라는 말을 하며 조회를 마치고 교실을 나와서도 내내 현우가 마음에 걸린다. 점심시간에 교실에 갔더니 아침과 다른 밝은 얼굴의 현우가 한달음에 달려온다. “선생님! 엄마 괜찮으시데요. 잘 쉬고 음식만 잘 드시면 된데요.”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그래 잘 되었구나. 한 동안 엄마 힘드실 테니까 현우가 많이 도와드려야겠다.”는 내 말에 당연하다는 듯 큰 소리로 대답한다. “네! 그럼요”
현우는 명랑한 성격에 의리파다. 두뇌회전이 빨라 분위기 파악을 잘 하고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약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작고 깡마른 몸에서 어쩜 그리 목청도 크고 활동적인지 현우의 넘치는 에너지가 부러울 따름이다. 사실 좀 노는 편이라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공부를 안 해서 못하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덩치 크고 노는 아이들도 현우의 말을 무시 못 하고 건드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전언에 의하면 깡이 좀 세다는 소문을 들었다. 1학기 내내 내가 보기에 현우는 나름 즐겁게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지각도 안 하고 점심시간에 항상 축구를 하며 친구들과 다툼도 없고 다툼이 있으면 오히려 현우가 중재해주는 편이었으니 나에게 혼날 일도 없었다. 뭐 성적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건 나의 욕심이고 중학교 신입생으로 이렇게 잘 적응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2학기 들어 음악제준비로 리허설 연습을 하던 날이다. 현우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학교에 나오질 않았다. 지금까지 지각 한 번 없이 학교에 나왔는데 무슨 일일까 궁금하다. 학급에 일이 있으면 처음엔 쑥스러워 나서지 않다가 내가 부탁하면 이내 못이기는 척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현우라 음악제에서도 특별히 2ne1의 산다라박으로 여장을 해주기로 했다. 아주 중요한 역할인데 그런 현우가 결석을 한 것이다. 1교시가 끝나고 집에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신다. 현우가 친구들이랑 싸워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단다. ‘이런 어느 정도로 싸웠길래 그러지?’ 어떤 상황인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왕따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에게 말이다. 사실 이렇게 왕따를 당한 상황이 이번 한 번이 아니고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어찌어찌 풀려서 다시 잘 다니는구나 안심했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며 어머니께서는 수심에 차서 말씀하신다. 내가 왕따를 시킨 아이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어머니는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저녁에 직접만나서 왕따를 시킨 이유가 뭔지 물어보기로 했다며 끝내 말씀을 안 하신다. 어머니께 가능하면 현우가 학교에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점심나절이 지나서 현우가 학교에 왔다며 전화를 했다. 차마 교실로 들어오지 못하고 엄마와 교무실근처에 서있다. 1학기 때 아프다시다는 말을 들었던 어머니는 아직도 다 완쾌되지는 않아 보인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현우와 이야기를 나눴다. 왜 왕따를 당한 것 같으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어제 하루도 잘 놀았는데 갑자기 저녁때 ‘현우랑 놀지마’라는 문자가 함께 노는 친구들 전체에게 뿌려졌다고 한다. 아마 같이 노는 무리 중의 어떤 아이가 현우에게 그런 문자가 돌았다는 것을 알려준 모양이다. 내가 조심스럽게 왕따시킨 아이들을 물어보니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한 걸 알면 아이들이 더 심하게 왕따를 시킬지도 모른다며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망설인다. ‘선생님이 어떤 아이들이 그러는지 알아야 도와줄 수 있어. 일이 잘 해결되기 전까지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한테 아는 척하지 않을꺼야.’라고 하니, 그제야 처음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인 아이들인데 다른 학교도 있고 우리학교도 있다고 말해주다가 우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이름을 하나 둘 말해준다. 우리학교 아이들 이름을 듣는데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수업들에 가는 반에 1-2명씩 있어서 알고 있는 아이들인데 하나같이 다들 반에서 상태 안 좋기로 1인자들이어서 담임선생님들이 2학기가 되어 거의 포기모드로 진입한 녀석들이었다. 정말 그 무리 중에 현우가 제일 상태가 좋고 똘똘하다. 아마 현우도 그 아이들과 함께 놀면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 것 같았다. 오히려 그 아이들과 관계를 정리하고 새출발을 하기에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그 아이들과 현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앞으로 그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면(가출을 해서 무단으로 학교를 빠진 경험이 몇 번씩 있으며 수업시간에 집중도가 매우 낮아서 매일 같이 지적을 받곤 하는 아이들이다) 네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가 많이 힘들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현우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엄마도 비슷하게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번에 관계를 잘 정리하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데 오늘은 도저히 아이들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없다며 수업을 받지 않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학교에 빠지는 것은 오늘만 허락해줄 것이니 마음 굳게 먹고 내일부터 학교생활 열심히 하자고 부탁했다. 그리고 우리 반에 좋은 친구들이 많으니 현우가 먼저 다가가 좋은 친구가 되어주면 마음이 통하는 멋진 친구가 생길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현우가 집으로 돌아간 후 현우와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왕따시킨 무리 중에 1명인 우리 반 동민이를 불러 조심스럽게 현우가 왕따를 당한 이유를 물었다. 동민이도 마음이 착한 아이라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왕따를 주도한 적은 없고 이번에도 그냥 저녁때 현우와 절대로 놀지 말라는 문자를 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그 무리에 짱인 녀석이 단체 문자를 돌리면 그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확실하게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예전에 한 번 왕따를 시켰을 때와 같은 경우일 것이라고 한다. 현우가 자신에게는 잘해주어 자신은 잘 모르겠는데 다른 아이들은 현우가 이기적이고 자기 것밖에 모른다고 버릇을 고쳐주어야 한다고 했단다. 어떤 점에 그러냐고 물으니, 먹을 것이 있으면 자신들은 작은 것도 나눠 먹는데 현우는 자기 혼자 먹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런 것이 얄미워서 아이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현우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몰라서 그럴 수 있으니 알려주어서 나쁜 습관이면 고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가 아니겠냐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동민이의 대답이 가관이다. ‘애들이 나쁜 버릇은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말해주지 말래요. 자기가 느껴야 확실하게 고쳐진다구요.’ 이런 웃음만 나온다. 그렇게 스스로 깨우쳐서 정신 차려고 학교에 빠지고 수업시간에 말도 안 듣는 구나싶다. 동민이에게 다른 반 아이들이 왕따를 시켜도 넌 현우랑 함께 지내온 의리가 있으니 아이들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점을 직접 말해주고 고치도록 도와주라고 말해주었다. 동민이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
다음날 현우는 어제보다는 밝은 얼굴로 학교에 나왔다. 화해를 하고 다시 잘 지내기로 했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이제는 그 아이들과 방과후에 계속 놀지는 않고 점점 관계를 정리하고 새친구들고 사귈 것이라고 예전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한다. 이제야 좀 안심이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며 폭력을 쓸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화해를 했다니 다행이었다. 나도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데 자식이 왕따를 당한다는 것을 아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를 생각해보니 마음이 더욱 아프다. 게다가 현우가 왕따를 당한 이유가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현우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보조를 받는다. 어렸을 적부터 항상 어려운 집안 형편을 몸소 체험하고 듣고 자라서인지 돈과 관련되는 문제만 나오면 ‘이거 공짜는 안 돼요?’,‘저는 돈 안 내도 되지요.’이런 이야기를 종종하곤 했다. 아마도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에 인색해졌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짠하다.
2학기가 1달 정도 남았을 무렵 우리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닝페이지반을 모집했다. 인원은 최대 5명으로 내 모집 요강을 보고 마음이 동하는 자발적인 참여자들만 받았다. 첫 번째로 하고 싶다고 신청서는 낸 것이 현우였다. 모닝페이지반을 모임을 한 첫날 왜 지원을 하게 되었냐는 나의 질문에 현우는‘예전과는 다른 모습의 내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모임에서 <어린 시절 돌아보기>에 대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발표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잊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자신이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지 못하고 말썽을 피운 것에 대한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게 되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장소가 있고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것이 현우에게는 진정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하는 아이들은 운다고 놀리지 않고 현우가 감정을 추스르는 것을 기다렸다가 ‘이제는 괜찮아’라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정말 아름답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내가 정말 행운이다.
해마다 겨울방학에 우리 교육청에서 한 학교에 1명씩 영어마을에서 2주간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저소득층 아이들 중에 공부에 열정이 있는 아이 중에 추천을 할 수 있다. 심사를 거쳐야 해서 추천을 한다고 다 뽑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문을 보는 데 현우가 떠올랐다. 가정형편상 학원을 다니기가 힘들어 방과후학교 수업을 듣게 해주곤 했는데 겨울방학 때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만 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를 불러 의사를 물었더니 ‘왜 저에요? 저만이요?’라고 묻는다. ‘왜 싫어?’라고 되물으니 ‘아니에요.’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리며 금새 얼굴이 밝아진다. 부모님의 동의서를 받아 지원을 했는데 다행히 우리 학교에서 현우가 뽑혔다. ‘영어를 정말 못하는데 가서 잘할 수 있을 까요?’라며 자신 없이 말하지만 자신이 되었다는 말에 환하게 웃는다.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온 현우가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환경이 현우에게 펼쳐지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현재가 낯설고 두려워 한 걸음 떼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현우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현우보다 먼저 이 여행을 시작한 나도 있고 이제 현우와 함께 여행을 떠날 친구들도 있다. 이 여행이 현우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소중한 과정이 될 것이다. 이 성장의 과정을 통해 멋지게 도약할 현우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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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가 보내준 편지이다. 아직 답장을 못했다.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철부지 현우에요. 선생님이 있어서 저는 1학년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왕따 당했을 때 제가 힘들어 했을 때 저에게 격려를 해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뭐든지 저를 추천해주시고 영어캠프도. 저는 그때 머리가 아파서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절 부르셔서 해보라고 추천해주셔서 영어캠프에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저는 선생님이 추천해주지 않으셨으면 전혀 12박 13일이라는 것을 꿈도 못 꾸고 영어공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5년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갈께용~!
2010년 12월 18일
귀염둥이 현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