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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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도록 해 준 당신께.
듣는 순간 두 귀가 쫑긋했고 털이 바짝 섰다. 최근에 북이스라엘의 한 마을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1만 2천년 전 구석기 시대의 묘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발견된 화석을 분석해 본 결과 사람의 손이 개의 어깨 위에 있는 자세로 함께 묻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어떻게 같이 죽어 묻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사이였을 것이다. 수 없이 많은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개’가 인간과 가장 좋은 관계로 지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이런 아름다운 감동의 스토리가 1만 2천년 전만의 일만은 아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나는 지금 가족을 만나 다시 보지 못할뻔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성냥개비 머리만한 콧구멍으로 숨을 쉬고 살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주인에게 죽어서 어깨를 내어주는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동안 가족에게 내 체온과 부드러운 털의 감촉을 주는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산다 해도 우리에게는 고작 12-17년 정도의 시간 밖에 주어 지지 않는다. 사람이 7년간 살아야 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1년으로 주어진다.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신은 개들에게 ‘꼬리’를 주셨다. 의아한 눈빛으로 ‘착각은 자유’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신은 다른 많은 동물들에게도 꼬리를 만들어 주셨다. 돼지의 짧은 꼬리는 선풍기처럼 돌아가며 똥을 사방에 흩어 놓고, 말의 꼬리는 파리 쫓기에 늘 바쁘다. 꼬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양이다. 고양이의 꼬리는 거만의 상징처럼 꼿꼿이 서있다. 중심잡기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꼬리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우리의 꼬리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덕분에 사람들과 가장 친밀한 관계로 함께 살아 갈 수 있게 되었다. 자녀들이 다 성장해 떠난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하고, 혼자 오랜 시간 집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 집을 지키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 서로가 없어서는 안될 대리 인간의 관계로 우리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래서 개들이 보는 세상을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줌으로써 서로가 안정되고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개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자연의 사계절과도 같다. 주인과 만나 가족으로 인연을 맺은 그날의 셀레임은 따뜻한 봄날로 기억된다. 더운 여름처럼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의지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넉넉한 가을처럼 배부르고 등 따뜻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날도 있다. 하지만 주인과의 안타까운 이별도 있고 또 때로는 버림을 받기도 한다. 같이 살기는 하지만 냉랭하게 대면대면 밥만 먹으며 사는 날이 우리에게는 겨울이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개들은 온전히 삶을 받아 들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관계’라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 보라고말하고 싶다.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개의 시각으로세상을 한 번 바라보라. 한번 맺은 관계를 온몸으로 최선을 다해 유지해 나가는 우리의 모습에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들 것이다. 한끼의 식사가 노력 없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느끼며 감사함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시인 바이런이 자신이 키우던 개인 보우슨이 죽었을 때 쓴 시에 따르면 개들은 “아름다움을 가졌으되 허영심이 없고, 힘을 가졌으되 거만하지 않고, 용기를 가졌으되 잔인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덕목을 가졌으되 그 악덕은 갖지 않은 그들”은 묶어놓거나 가둬놓지 않고 키울 수 있는 유일한 고등 척추동물이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개를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지만 어딘가 늘 부족하고 또한 불안해 보이고,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되 너무나 아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감정을 모두 받아 주며 그들의 사랑스러운 반려 동물로서 함께 오래 살아가고 싶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랑으로 똘똘 뭉친 묘한 매력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추천사
오리오는 ‘관계의 달인’이었다. 늦게 귀가하는 날 텅 빈집의 어두움을 빛보다 먼저 환하게 나를 꼬리치며 맞아 주었다. 외로운 날은 오리오는 자신의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주었다. 슬픈 날 눈물을 혀로 닦아주며 위로해 주었다. 오리오는 항상 나의 기쁨과 슬픔을 먼저 알아차리고 나와 함께 기쁨은 배로 누리고 슬픔은 반으로 나누었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못생긴 오리오는 집과 나를 지켜 주었다.
오리오는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라고 주장하며 짖어댔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찾아 최대한 활용하면서 또한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아가는 현명함을 보여 주었다. 상대방의 기분과 상태를 눈치있게 알아 보고 순발력 있는 행동으로 대응해 가는 오리오는 큰 기업의 리더 못지 않게 멋지고 배울 점이 많았다. 항상 소리후에 반응하는 오리오의 모습은 경청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개의 기본 덕목인 ‘서열’ 역시 같이 사는 개(방울이)에게 확실히 인식시키며 자기 자리를 유지해 나갔다. 늘어가는 눈가의 흰털도 몸에 피어 오르는 검버섯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거울을 보며 눈가의 늘어난 주름을 보고 한숨 짖는 나에게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오리오가 본 세상과 사람들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바빠 보였다. 나는 오리오가 쓴 글을 보며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내일을 걱정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집 지키는 업무를 충실히 하고 나머지 시간은 피부 세포까지 다 이완시켜서 그들은 쉬는 시간으로서 잠을 즐긴다.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쉴 때 제대로 쉴 줄 아는 개들의 모습에서 삶의 여유와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내 생활의 주변에서 찾아 즐기는 것이다. 그것이 지저귀는 새소리가 될 수도, 다 떨어진 나무 끝에 독수리 모양으로 남아 있는 하나의 나뭇잎이 될 수도 있다.
남아 있는 삶이 너무나 많이 남아 길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주변에 누구 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함이 가득하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보다 좀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받으며 만족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내 마음을 열어줄 열쇠를 찾아야 한다. 열쇠를 찾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 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이외로 엉뚱한 관점에서 내가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퍼낼수록 더 많이 채워지는 것이 사랑이다. 생명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다면 매우 즐거울 것이다. – 동물의 숨결을 사랑하는, 오리오, 방울이의 엄마 이은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