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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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51 - 하얀 자전거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새로 산 내 하얀 자전거가.... 나는 계단을 두 개씩 올라가며 쫓아갔지만...내가 그곳에 닿았을 때 자전거는 이미 멀리 달아나 이젠 눈으로 쫓아갈 수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방금 여기 있던 하얀 자전거 누가 타고 갔는지, 보신 분이 계세요? 까만 머리 청년이라 했다. 키가 크고 흰 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를 안다고도 했는데 어딘가 내가 되찾으러 갈 수 없는 장소를 말해주었다. 막막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왜 자물쇠를 채워놓지 않았을까? 내 손에는 하얀 열쇠가 남아 있었다. 손에 꼭 쥐고 있던 열쇠, 그러나 이젠 쓰일 데가 없다.
새로 자전거를 샀다. 그리고 신나게 달렸다. 가려는 곳이 학교 같기도 하고 무언가 세미나 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강물도 지나고 다리도 지나고 별로 막힘이 없이 쌩쌩 잘 달렸다.새로 나타난 길에서 자전거가 사람들로 막히기 시작했다. 비틀거리기도 하고 내려서기도 하면서 자전거 바퀴는 느릿느릿 해졌다. 누군가가 장애인 경주로 교통이 통제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경주는 무슨 경주를 한다고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투덜댄다. 한쪽 귀로 흘려 들으면서 조심해서 자전거를 밀고 갔다.. 비틀비틀 거리다가.... 드디어 눈에 익은 간판들이 나타났다. 체부동...무슨 연탄...구이.....이런 단어들이 보였다.
길 끝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속으로 들어갔다. 자전거에서 내려 움직이는 사람들을 따라갔다. 조금 가다보니 계단이 있고 길 아래로 큰 공터가 보였다. 사람들이 자그마한 나무 묘목을 심고 있었다. 향나무 같기도 하고 주목 같기도 했다. 나도 함께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나무를 심었다. 그러다가 손가락이 찔리기도 했다. 갑자기 이럴 때가 아닌데....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옆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어느 스님께서 사재를 내놓아 미래를 위해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 광경이 너무나 어설펐다. 듬성듬성 몇 사람씩 둘러앉아 말없이 나무를 심고 있었다. 무슨 이념의 공유...이런 것이 없이 그냥 엎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안되겠다. 내 갈 길을 가야겠다. 그래서 계단으로 되돌아 나왔다. 올라오는 길, 계단 중간에 비석처럼 생긴 시멘트 버팀 물이 있었는데 붙잡았더니 흔들거린다. 이런 경험 그때도 있었지...무언가 지지대를 붙잡았을 때 흔들거려 가슴 철렁하던 위태로운... 그리고 불안한 느낌들...그순간, 계단 한 중간에서 만난 스님과 보살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같이 가자고 ... 계단을 거의 다 올라 왔을 때 내 자전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어~ 내 자전거~ 어어~
내 오른손에 남은 흰색 꼭지가 달린 열쇠, 자동차 열쇠처럼 생긴 자전거 열쇠 하나!
이게 뭐야, 새 자전건데... 쒹쒹 달리던 기쁨이 너무 짧아 허무했고 내 손에 남아있는 열쇠가 너무 새것이어서 맥이 풀렸다. 펼쳐놓은 손바닥을 다시 쥘 수 없었다. 이제 어쩌지.....
두 눈에 남아 아른거리는 하얀 자전거! 내 손바닥에 남은 하얀 열쇠! 도대체 왜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거지? 왜일까? 자꾸 되돌아오는 후회들 !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꿈이 너무 생생해서 눈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기록해 둔다. 이건 분석이 필요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