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 조회 수 313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시간은 둑이 없는 강이다
나는 江이고 싶다. 나는 흐르고 싶다. 영원은 새끼를 배어 열 달을 키우고 시간의 자궁을 통하여 물방울 하나로 세상에 내어 놓았다. 갓난 벌거숭이는 가볍고 허허로웠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발원한 물방울은 한 떨기 나뭇잎처럼 계곡을 따라 흘렀다. 바위틈에 끼어 발을 구르는가 하면 평평한 潭(담)을 만나 너른 원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발을 헛디딘 산짐승이, 한 차례의 미풍이 길을 재촉했다. 말하자면 그는 ‘흐르는 존재’였다. 계곡을 지나자 드넓은 평야와 푸른 숲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던 새털구름이 하늘에서 빛났다. 물방울은 더 많은 풍경들을 담으려 되도록 느릿느릿 흘렀다. 풍경은 자신을 오리고 자르고 이어 붙이며 변신과 복제를 거듭했다. 물방울은 이윽고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맥질을 했다. 숨을 놓치는 일이 당연지사가 되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허나 더 힘든 건 둑이 없는 강에서 그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는 시간에 원망을 돌리곤 한다. 좀 더 많은 젊음과 좀 더 많은 시행착오가 허락되었다면 우리의 오늘은 이렇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육체의 사랑으로 태어난 남녀 한 쌍을 골라 우리가 가장 바라는 낙원의 조건을 그들에게 부여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不滅(불멸)이다. 그들 중 한 명은 익히 알려진 저명인사이며, 다른 한 명은 다소 이질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동종의 인간이다. 그것이 결정적인 간택의 이유는 아니다. 그들의 매력은 충만한 에너지 뒤에 가려진 짙은 그림자에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삶을 복기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불멸의 생명이 주어졌을 때 그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들을 여기로 초대하기는 했지만 애당초 그들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휘둘릴 인물들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행적을 밟은 건 배우기 위함이었다. 흐르지 못하는 강물에서 서성이기보다는 흔적도 없이 증발되어 다른 물줄기를 따라 흘러보고 싶었다. 의미 있는 시도였을까. 삶의 고단함을 이기고 그들의 重生(중생)이 마침내는 아름답게 빛났기를 기원해 본다. 그들이 나이고 내가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