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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연탄을 때는 시절이 있었다.
하루에 몇 번이고 교체해야 하는 그 수고로움으로 인해 나는 연탄 이라는 매개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적이 있었다.
순번대로 찾아오는 연탄 갈기에서 새벽 시간은 매번 막내인 나의 차지였다.
시린 손을 호호 부비며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하고 있는 꺼진 연탄을 집게로 꺼내고 파릇파릇한 새 연탄을 갈아 끼운다.
매캐한 일산화탄소 가스를 뒤로 하면서 가장 중요한 구멍 맞추기에 도전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의 수고가 허사로 끝나 히든 카드인 번개탄과 함께 부채질이 등장을 할 수 밖에 없기에.
그런데 이런. 왜이리 불이 안붙는 거지. 밑에가 막혔나...
새벽 3시. 곤히 잠들 시간인데 마눌님이 갑자기 흔들어 깨운다.
“승호씨, 일어나 봐요.”
“아니, 왜 연탄불이 꺼졌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비몽사몽간에 일어난 나는 상황정리를 하여야 했다. 아, 꿈이었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람.
“왜그래. 꼭두 새벽에.”
“바닥에 물이 차올라요.”
불을 켜고 일어나 보니 방바닥 한쪽에 홍건히 물이 고여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나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던진다.
“추워서 그런가. 괜찮아 질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레로 바닥의 물을 대충 훔쳐 내며 다시 잠을 청하였다.
기상시간인 04시 40분이 될려면 아직도 멀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 보았다.
물이 나오질 않는다.
‘어쩌나. 왜 물이 안나오는 거야.’
거실 주방도 상황은 마찬가지 였다. 어떡해 해야하나.
철없는 남편은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쓸데없는 걱정만 해댄다.
‘세면은 어떡하지. 그래도 명색이 신사 체면인데 안하고 갈수는 없고.’
이른 새벽 시간이긴 하지만 어쩔수 없이 인터폰을 눌러 관리실 직원에게 SOS를 요청한다.
“세탁기 배수관 쪽이 동파가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람.
동파라니? 무슨 동파?
갑자기 TV 뉴스 시간에 소개 되었던 이재민들의 현장 동영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럼 우리도 그런 시츄에이션으로 흘러 가는겨?
“제가 서울 생활한지 십여년이 넘도록 이런 일은 처음 겪는데 이유가 무언가요.”
그럴 리가 없다는 심정으로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고객님 집뿐만 아니라 이쪽 아파트 라인 4채가 함께 동파가 되었어요. 차가운 한강 바람이 세게 그대로 밀어 닥치는 데다 고층인 탓에 얼어 붙어 있다가 어제 잠시 기온이 올라갈 때 터진 모양 입니다.”
살다 살다 이런 상황을 직접 겪다니. 남의 일로만 여겼던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도 일어나다니.
“그럼 방법이 없나요. 뜨거운 물을 부으면 되질 않는지.”
이미 끝난 상황이지만 어떡해서든지 해결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가스는 끊기질 않아 난방에는 문제가 없다지만 물이 끊기면 당장 식수에다 설거지며 쌓인 빨래더미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옆집에 가서 물을 얻어 쓰기에는 눈치도 보이고.
“공사를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기사분과 연락을 취해 봐야 되겠지만 요새 워낙 이런 집들이 많아 바로 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주인집 분께 상황설명을 이야기 하고 수리를 해야 한다고 말해 주세요.”
주인집에 연락이라? 그럼 견적은?
“공사를 하게되면 대금은 누가 부담을 하는건지요.”
어차피 공사를 해야 한다면 일은 벌여야 되겠지만 그 금액은 누가 내야 하는지가 짠돌이 남편 초미의 관심사 였다.
“주인집에서 부담을 하셔야 될거예요.”
“그래요! 그럼 당연히 공사를 해야죠.”
혹시나 세입자 부담이라고 할까봐 내심 마음 졸였지만 주인집에서 내어야 한다는 말에 화색이 밝아지며 괜한 쾌재를 부른다. 그런데 이런 이제 공사가 문제다.
전화를 해본 관리실 직원은 난색을 표방하는 얼굴이다.
“고객님처럼 요새 동파된 집들이 너무 많아 오전에 당장 와줄수는 없다네요.”
아니 그럼 워쩌라고. 당장 세수는? 이럴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어제 저녘 물을 받아 놓을걸.
새벽의 황당한 사건은 다행히 당일 오후 작업으로써 무사히 종결되어 졌지만, 복구 공사는 이틀이 지난 뒤라야 가능 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물을 쓸수 있다는점.
퇴근을 하고 서둘러 집에 돌아와 사태의 현장을 둘러 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베란다 수도꼭지 배수관 쪽에 드릴로 구멍을 뚫은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워쩌다가 이지경까지 라는 말이 다시금 흘러 나온다.
저 아픔의 흔적을 이제는 메꾸어야 된단 말이지.
마흔살의 나이에 접어들 즈음 생애 전환 주기에 해당이 되니 검사를 받으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생애 전환 주기’라?
처음 듣는 용어가 생소 하기도 하였지만 그 의미가 주는 중요성과 무게감은 나의 가슴을 괜시리 내리 눌렀다.
30대와는 다르게 40대 부터는 이제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경고를 하며 관리를 해야하는 공식적 시기가 시작 되었다는 내용.
건강함을 믿고 펄펄 뛰어다닐 나이가 아닌 이제는 미리 미리 챙겨야 하는 시기가 도래 하였다는 것이다.
태어나는건 순서가 있어도 죽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이 괜시리 생각이 났던건 왜일까.
사람 몸에 정해진 신체 나이가 있는 것 처럼 우리가 쓰는 물건도 그러하다.
그 수명을 늘려 오랫동안 잘 사용키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소의 관리가 중요한 법.
그렇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예기치 않았던 사고가 터진다.
남의 일이겠지. 나한테는 그런 일이 없을거야.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라는 안전 불감증이 지속 되는한 이와같은 일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그렇지. 우째 이런 일이.
겨울철 찬바람의 시원함(?)과 함께 통풍이 잘되는 뻥뚫린 시멘트 벽에서 나의 마음도 허전함을 느낀다.
내일쯤이면 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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