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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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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1일 00시 01분 등록
  “한 배우자를 택하는 것은 일련의 문제 더미를 함께 택하는 것이다”


  부부치료 전문가 댄 와일(Dan Wile)의 말이다. 결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좋은 점, 좋은 상황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문제와 힘든 상황까지 함께 받아들이기로 동의한다는 뜻일 것이다.


  결혼 후, 그에게 크게 서운했던 적이 있었다. 돈과 시집이 한데 얽힌 최고난이도의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그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고 그 다음에는 속상하고 화가 났다. ‘어떻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럴 수 있나’하는 생각부터 나중에는 ‘이 사람을 계속 믿어야하나’하는 생각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이 상했지만 이미 알게 된 일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 등 뒤에서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다보면 또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그가 일이 벌어졌던 당시에 내게 상의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몇 번이고 되풀이 생각해 보았다. 결국은 나도 못 본 척 할 수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간 사람들과 상황에 마구 화를 냈겠지만 마지막에는 그 사람과 동일한 행동을 할 수밖에. 자식인 그는 더구나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 신랑이, 내 아이들의 아빠가 선한 사람이길 바란다. 온 세상을 덮는 선함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부모를 껴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만약 그가 자신의 부모형제를 못 본 척 한다면 지금 당장은 내가 편할지 모르지만 과연 그런 사람을 평생 믿고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그가 나에게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는 것, 한 가지였고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이미 벌어진 일에 화를 내고 신랑에게 전후사정을 따지고 싸울 것인가. 아니면 그와 한편이 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비밀을 만들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궁지로 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런 비밀을 참을 수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유 있는 밤 시간, 차 한 잔을 타 놓고 신랑을 청했다. 마주 앉아서 서운했던 나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다. 미리 상의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속상했던 것과 가족이 얽힌 돈 문제에 대한 나의 평소 생각들을 짧지만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알아봤자 속상하기만 하고 좋은 일이 아니어서 알리고 싶지 않았고 한편 나에게 창피하기도 했다고 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과, 이미 한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공동의 일임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내 마음을 전했다. 당장은 한 사람이 화를 내더라도 함께 나누어야만 한다는 내 생각을 그날 신랑은 받아들였다.

  다음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그 일을 알게 된 후, 서운했던 마음을 말씀드렸다. 함께 알아야 하는 우리 일임을, 또 나에게 숨기고 신경 쓰는 신랑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다음부터는 저에게도 말씀해 주십사 이야기했다. 어머니 또한 받아들이셨다.


  그날 나는 선택을 했다. 궂은일에도 비밀이 없는 신랑을. 그것은 때때로 어쩔 수 없는 일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았다. 그 후에도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서로 숨기지 않는다는 우리의 원칙은 지켜졌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은 농담으로 받아넘기는 내공도 쌓였다. 분명 속으로 미안해할 신랑에게 “뭐, 팔백만 원이 아니고 팔십만 원이니 얼마나 다행이야.”말할 정도로.  

  물론 나에게,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도 원칙이 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이 최우선순위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결혼한 모든 부부는 다투며 살아간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부부도, 결혼한 지 몇 십 년이 넘어가는 부부도 예외는 없다. 신기한 것은 매번 다른 일로 시작해서 다른 주제로 다투지만 항상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비슷한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부부치료전문가인 가트맨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부부들이 신혼 때나 결혼 5년 후, 10년 후, 심지어 30년이 지난 후에도 같은 주제로 다툰다고 한다. 이것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싸우는 주제의 내용은 집집마다, 부부마다 다 다르지만 어떤 부부에게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부부들이 지닌 문제의 31퍼센트 정도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발생하고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나머지 69퍼센트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 풀리지 않는 문제는 늘 두 사람 사이에 숨어 있다가 약간의 갈등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고 작은 문제를 심각한 갈등으로 키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트맨 박사에 따르면 이런 지속적인 갈등주제는 성격 차이나 아동시절의 경험, 가치관의 차이, 유전자의 차이, 환경의 차이 등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즉, 우리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그와 나의 지속적인 갈등의 주제는 일순간에 깨끗하게 해결할 수도, 풀어버릴 수도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이 영역에서는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싸움의 격언이 ‘베어도베어도 소용없다’는 의미에서 맞지만 부딪칠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는 틀린 것이다.       

  이런 지속적인 갈등 주제를 다루는 현명한 방법은 억지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고 ‘문제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어찌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매번 부딪치고 상처주고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문제를 ‘관리’하며 함께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와 나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나아가 유머와 호감을 가지고 서로 대화하며 서로의 입장을 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의 되풀이되는 문제들도 늘 비슷한 것들이다. 온전히 둘만의 문제보다는 주변 상황들이 우리를 힘들게 만든다. 갈등하고 속상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간다. 당신 가족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생각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인가. 그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상황이 문제라는 것. 또한 내가 그와 그의 가족을 감정적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또한 그 둘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알만큼 현명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그 가슴앓이만큼 나는 부쩍 성장했으니 결국 결혼은 수지맞은 일임에 틀림없나 보다.         

IP *.230.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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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03:21:06 *.123.110.13
오, 첫문장 좋고.

막판에 일취월장하시는군요. 성실의 결과.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이기에 공감이 가요. 저도 아내가 아니라, 아내의 식구까지 챙겨야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을 얼마전에 깨달았지요. 

그 비밀이 뭡니까? 살짝 언급해주세요. 생선 머리하고, 꼬리만 먹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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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11:02:29 *.230.26.16
예리한 건이 ^^;;
어제 고민하다가 우선 앞부분만 올렸다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고민이었어.
밤새 뒤집다가 수정하려고 들어오니, 역시 건이의 날카로운 지적 ㅎㅎㅎ

덧붙인 부분 어떤지 좀 봐주삼.
이런 식으로 '미스토리 또는 주변의 사례'에 마무리를 하면 어떻까?
너무 설명하는 듯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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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1.31 11:01:51 *.236.3.241
말하려는 내용이 분명해지니 선형이 특유의 장점이 잘 발휘되는 것 같구나.
머뭇거림 없이 문제의 핵심을 잡아 단칼에 찌르는 모습이 시원시원하다.

다만, 남편의 생각을 자세히 언급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럼 부부간에
갈등이 벌어지는 지형지세가 좀 더 입체적으로 들어올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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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11:04:49 *.230.26.16
오호, 좋은 지적 감사!
사실 자세히 기억나는 건 내 입장이었어요 ^^;;
그에게도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그리고 추가 수정,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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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12:22:42 *.186.57.51
좋다. 좋은데....
음 뭐랄까.. 심리묘사가 좀 더 있으면 어떨까..
비밀을 둘러싸고, 전전긍긍했던 남편의 이상한 예후? 뭔가 모를 나의 불안감? 그러다가...
덜컥.. 결국은 탄로나고 말일인데... 그래도 소심해하던 남편의 마음? 짠하게 일었던 선형의 눈물...
그렇지만 서운했던 심정이... 따뜻한 차로는 좀 부족하고, 뒤에 포옹없었어? 그 느낌이 더 좋을 거 같은데..
아... 결국 이 남자.. 내 남자구나 싶게 만드는 그런 느낌..
선형아 잘 기억해봐.. 너 그랬어... 고것을 좀 더 살리면.. 맛이 나겠다.. 네 맛이 더 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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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1.01.31 12:28:47 *.42.252.67
 사람 사는 거 다 똑 같구나! 라는 위로를 받아가며 잔잔한 웃음이 지어지는 글이네.후후
  나 스스로 답을 찾아 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인용문이 발에 걸려 넘어지는 '돌'처럼 느껴진다.
이 부분을 니가 결혼 초 갈등했던 시절 읽었던 가트맨 박사의 말을 회상처럼 쓰는건 어떨까?
아이들이 학교에 다 간 시간 걸레를 잡고 그 박사의 말을 중얼거리며 거실 바닥 닦은 때를 벅벅 또 닦으며
넌 이미 이 시간 때의 박사의 말에 푹 빠져 맞는 말이야라는 것을 공감하고 있다는 박사님의 말을 쪼개서
놓으면 좀 부드러울 것 같아.
그리고 바닥을 다 닦고 일어섰을 때의 후련함과 깨끗해진 너의 마음이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성장의 과정임을 말하면 아줌마들의 속도 너의 말과 행동으로 후련해지고 받아 들이며 털고 자리에서 일어 날 것 같아. 아이고 내 팔자야 ~ 하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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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1.31 18:44:01 *.10.44.47
살아본 사람들이야 팔자려니하는 체념을 성장으로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언니의 타겟독자층인 미혼이나 신혼주부들에게는 심리적 저항감이 있을 듯해요.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그와 그의 상황의 구분이 해결의 단서가 되는 거라면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명쾌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아니면 언니의 내적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더 상세히 보여지면 
좋겠다고도 생각해봅니다.

후후..
코멘트할때마다
'너나 잘하세요'의 화살에 눈을 뜨고 있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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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2 15:49:25 *.230.26.16
묙아, 네 덕에 나도 옛날 글들 다시 읽어봤다.
그래...
좀 더 많이, 깊이 생각해 보는 중이야.
그래서 어제부터 머리 터지는 중이다 ㅠㅠ
고맙다고 말안해도 알지?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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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2.01 13:04:45 *.10.44.47
언니가 썼던 칼럼들 쭉~ 읽어봤어요.
젤 맘에 들었던 글은 레이스 4주차 '나를 움직인 환상'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담담하게 자신의 문제를 진단하고 풀어가는 모습이 좋았어요.  
아마도 제가 추구하는 글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글이라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봤더니 그래요.
"나쁘지 않은데 뭘 그래요!"
지난 10월 폭탄같은 머리를 만들어놓은 우리집앞 미장원 아줌마의 한마디.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 저의 대답은
'이봐요!! 나쁘지 않을 걸 기대하고 일부러 돈쓰고 시간써가며 머리하러 온 거 아니거든요!!'
물론 하고나면 곧 알게 되죠.
우리가 탐내는 연예인들의 헤어스타일이란 
타고난 자원외에도 엄청난 관리가 필요해서
일반인인 나로선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환상적 이미지일 뿐이라는 걸.
결국 정신건강 유지하고 살기 위해선 환상과 현실의 지혜로운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독자로서 언니의 책에서 제가 기대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예요.
환상과 현실이 지금의 균형점을 찾아낼 수 있었던 시행착오를 포함한 과정.

일부러 언니 칼럼을 몽땅 읽어볼 생각을 했던건
언니랑 나의 교집합을 찾아보겠다는 노력이었습니다.
언니가 저랑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을 가진 사람이라는 단서가 발견되면 미련없이 접자!고
작정하고 시작한 작업이었죠.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나와 비슷한 그녀가 나보다 먼저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소화해내는 과정이 진솔하게 보여진다면
언니의 지금에 훨씬 더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우리가 만원남짓한 돈을 내고 사는 건
책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일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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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2011.02.04 19:54:35 *.221.42.81
음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연애하면서도 벌어지는 일들인데...
정말 멋지게 대처하셨음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초월 저도 가지고 싶네요...
"그사람 편이 되기로 했다."
그 현명한 선택을 우리는 재판관이라는 이름으로
늘 놓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애인관계이거나 부부관계이면...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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