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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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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1일 03시 01분 등록

겨울 이야기(1)

 

늦은 밤, 인적이 끊긴 언덕길 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눈까지 내리니 적막이 따로 없다. 30분 후 알바생과 교대하기 전에 재고와 매출자료를 대사해야 한다. 들릴락말락 켜 놓은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 나온다. 라 마르세예즈. 아니다. 1812년 서곡이다. 낯이 뜨겁다. 군인의 명예라고는 알 턱이 없는 일개 작곡가가 조국 러시아의 왜곡된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프랑스 국가를 편곡하여 나의 제국을 조롱했다. 불쌍한 차이코프스키, 왕국의 유지를 위해  러시아인 스스로 모스크바에 불을 지른 걸 그는 영웅적 처사라고 떠받들다니. 드넓은 러시아 제국에서 영웅이라곤 보로디노 전투를 이끈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 한 사람뿐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러시아를 정복하고 유럽대륙의 초대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1812 9월 보로디노 전투는 전술에서는 승리였지만 전략에서는 패배였다. 적은 잘 짜여진 편제를 앞세워 아군에 정면 대응했고 러시아군과 아군을 합쳐 7만 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프랑스군은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그러나 적은 패배한 것이 아니고 퇴각했을 뿐이었고, 모스크바에 있던 건물의 10분의1만이 성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전쟁에서 패배란 있는 일이지만 보로디노 이후 나의 내면에서 심상치 않은 균열이 감지된 것도 그때였다. 그것은 미지의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 세계를 모두 합친 힘으로도 나를 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완전함에 서성임이라는 불순물이 낀 느낌이었다. 나는 그 생경한 체험을 애써 전쟁의 피로 탓으로 돌렸다. 모스크바는 춥고 음산했다. 10월에 벌써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나면 차갑고 끈적한 밤의 기운이 병사들의 총구를 녹슬게 했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말레 장군의 쿠데타 소식을 듣고 급히 파리로 귀환하는 길에서 나는 나의 운명이 다했음을 예감했다.  

 

지친 병사들을 시찰하고 막사로 돌아오는 길이었지. 용케 파괴되지 않고 남은 교회당을 지나는데 피난 나온 엄마가 백일이 갓 지났을 법한 아이에게 들려주는 자장가가 귀에 들어왔다. 잔잔한 울림이 어둠의 베일로 치부를 가린 전쟁터에 모처럼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적의 주검에서 나는 향기는 예전처럼 감미롭지 않았다. 그것은 한때 전쟁에서 복귀한 나를 튈르리 궁에서 맞이하는 마리 루이즈의 향수보다도 치명적이었다. 지천에 깔린 수 만 병사들의 주검에 주위의 부관들은 코를 감싸 쥐었지만 나는 뼛속을 파고드는 음습한 기운에서 승리자만이 느낄 수 있는 절대고독을 음미하곤 했다. 그것은 수 없이 많은 밤을 피로와 고뇌에 전 이가 맛보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헌데 자장가 소리를 들은 후 나는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러시아는 다른 사람의 추억인양 묻어 두고 벽난로가 이글거리는 튈르리 궁에서 아들 로마왕을 무릎에 앉힌 채 오래오래 정담을 나누며 늙어가고 싶었다. 전쟁터에서 팔 할을 보낸 중년의 육체는 이미 그런 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쇠진해 있었다.

 

IP *.212.98.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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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1.01.31 03:14:47 *.123.110.13
전쟁 현장을 실감나게 묘사하셔서, 생생합니다. 생소한 지명과 이름이 나와서,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군요. 또, 앞의 알바교대로 시작했으니, 글의 끝도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더 완결성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형답게 뚝심있게 끝까지 써내시리라 기대합니다. 

매상자료'보다는 '매출자료' 혹은, 그냥 '매출'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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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1.31 13:12:58 *.236.3.241
매상자료, 어째 좀 어색했어 ㅎㅎㅎ
현직 사장님의 지적 고맙다.

 현장감을 높이느라 지명과 이름을 넣었는데
 다 써 놓고 전체 튜닝을 해 봐야겠다.
구정 끝나고 한번 들를게~~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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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1.01.31 12:42:11 *.42.252.67
아주 눈에 그려지는 정밀 묘사가 할머니가 해 주시던 옛날 이야기처럼
눈 앞에 그려진다.
많은 자료와 정보 수집이 가장 큰 어려움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드네.
다음 편 쇠잔한 몸을 일으키는 반전을 기대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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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1.31 13:10:13 *.236.3.241
참기름 짜 듯 한방울씩 글을 남겨 일말 죄송한 마음 갖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하루에 한 페이지씩은 꼭 써 보겠습니다. 

해피 뉴 이어 ㅎㅎㅎ 오리오와 그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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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1.31 12:43:54 *.186.57.51
들어보라
아!  
라마르세에즈 !
 
라마르세예즈 
http://blog.daum.net/_blog/hdn/ArticleContentsView.do?blogid=0F04W&articleno=182&looping=0&longOpen=                                                                          

                                                                                  

 

1.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é.
Contre nous, de la tyrannie,
L'étandard sanglant est levé,
l'étandard sanglant est levé,
Entendez-vous, dans la compagnes.
Mugir ces farouches soldats
Ils viennent jusque dans nos bras
Egorger vos fils,
vos compagnes.

가자, 조국의 아이들아
영광의 날이 왔다.
우리에 맞서 전제정이 들어섰다.
피 묻은 깃발이 올랐다,
피 묻은 깃발이 올랐다.
들판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리느냐,
이 잔인한 군인들의 포효가.
그들이 바로 우리 곁에 왔다,
너희 조국, 너희 아들들의
목을 따기 위해서.

Aux armes citoyens!
Formez vos bataillons,
Marchons, marchons!
Qu'un sang impur
Abreuve nos sillons.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너희의 부대를 만들어라
나가자, 나가자!
그들의 불결한 피를
우리 들판에 물처럼 흐르게 하자.

2. Amour sacré de la Patrie,
Conduis, soutiens nos bras vengeurs,
Liberté, liberté cherie,
Combats avec tes defénseurs;
Combats avec tes défenseurs.
Sous drapeaux, que la victoire
Acoure à tes mâles accents;
Que tes ennemis expirants
Voient ton triomphe et notre gloire!

신성한 조국애여,
우리의 복수심에 불타는 팔을 인도하고 떠받쳐라.
자유, 사랑하는 자유여,
네 지지자와 함께 싸워라,
네 지지자와 함께 싸워라.
우리의 깃발 아래에, 승리가
네 씩씩한 노래에 맞춰 돌진하리라.
네 죽어가는 적들이
네 승리와 영광을 보도록

 

 

라마르세예즈


1792년 4월 20일

프랑스는 마침내 혁명에 간섭하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선전을 포고를 하는데,

프랑스 대혁명 때 국민공회가 루이 16세와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하자,

혁명의 파급을 두려워한 유럽 각국들은 대 프랑스

동맹을 결성하여 프랑스를 공격하려 했으며

이에 프랑스는 애국심에 불탄 젊은이들을 모아

의용군을 조직합니다.


4월 25일은 선전포고령을 지니고 파리를 떠난

전령이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한 날이었는데,

라인 강을 사이에 둔 프랑스군과 프로이센군은

그야말로 일촉즉발 상태였습니다.


당시 스트라스부르 시장이었던 "프레데리크 디트리슈"는

"루제 드 릴"(Rouget de Lisle) 대위에게,

이튿날 적진을 향해 떠날 라인 군대를 위해 특별히

군가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자,

루제 대위는 그날 밤 단숨에 노래를 만듭니다.


당초 ‘라인 군대를 위한 군가’로 불렸던 이 노래가

‘마르세유 군대의 노래’라는 뜻의 라마르세예즈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석 달쯤 뒤쯤이었는데,

그 해 7월 2일 마르세유로부터 출발한 5백 명의 지원병이

7월 30일 이 노래를 부르며 파리 교외를 지나자,

처음 들어보는 힘찬 멜로디에 감동한 파리 사람들은

이 노래를 라마르세예즈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이 노래는 프랑스군과 함께

유럽 구석구석을 누비며 혁명의 이상을 퍼뜨렸고

라마르세예즈는 왕정복고시기에

얼마동안 금지되기도 했지만

1830년 7월 혁명 때 파리의 바리케이드에서 되살아났고,


제3공화국 시절인 1879년

마침내 프랑스의 국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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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1.31 13:07:57 *.236.3.241
작자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해 주니 베리 베리 땡큐!

너 밥도 안 샀는데 어째 요로코롬 마음에 드냐 ㅎㅎㅎ
나중에 코르시카 집필 여행갈 때 동행을 고려해 볼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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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2.01 10:33:55 *.10.44.47
200여년전 프랑스에서 영웅적인 청년기를 보내고
지금 우리의 곁에서 두번째 인생의 영웅기를 준비하는 중년의 나폴레옹.

아쉬움없을 만큼 찬란한 청년기를 가진 그의
중년은 어떻게 익어갈 것인지...

지금을 흡족히 즐기지 못하는 책임을
과거의 나에게 전가하려고 애쓰는 비겁한 저에겐
참으로 흥미진진한 엿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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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2.01 13:25:20 *.236.3.241
현재를 대놓고 즐기는 사람 중에 미옥이를 빼놓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ㅎㅎㅎ
혹여 지금 흡족하지 않은 게 있다면 그건 너의 생각이 엑셀을 심하게 밟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네 눈에는 이미 다 보이는데 몸이 따라가지를 못하는, 뭐 그런 거.

구정 연휴에 더하기(+) 연습하느라 머리 싸매지 말고
 찬 공기 맡으며 빼기(-) 훈련 열심히 하면 행복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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