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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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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일 02시 18분 등록

겨울은 목덜미에 콧바람을 불어넣으며 침실로 팔을 당기는 요부다. 한기를 피하려 외투 속으로 턱을 담그면 살얼음 아래 갇혀 있던 기억들이 수면으로 솟구쳐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뺨을 어루만진다. 의지는 몰락을 찬란하게 꾸며주는 노리개일 뿐이고 상념의 자락들이 엉성한 담을 넘어 聖恩이 끊긴 지 오래인 안채로 스멀스멀 무찔러든다. 눈을 뜨면 배달된 아침을 까서 과거에 수혈하는 게 일과다. 추억은 갈수록 풍만해지고 육신은 나날이 메말라간다. 나폴레옹임을 몰랐다면 인생이 그렇게 허비되지는 않았겠지. 1812년은 과거다. 나는 21세기의 교차로 한복판에 서 있다. 교차로를 지나는 무심한 차들을 향해 나는 멈추라고 명령했고 그들은 현실에 등장한 돈키호테에게 중지 손가락을 들어 환영을 표했다. 그 뿐이었다. 시간의 여행자는 망령든 이로 지탄 받아 청년기를 *아빌리파이에 취해 살았다. 처음 병원을 찾은 날, 어머니는 초점 잃은 눈에 어눌한 말투로 입술을 빠는 자식을 안고 한동안 침묵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혀는 아빌리파이의 편이었다. 슬리퍼를 신은 채 어기적거리며 기어이 어머니를 배웅했다. 그녀는 출입문에 난 창살 사이로 살이 붙은 내 뽀얀 손을 지긋이 잡았다. 그녀의 발끝에서 시작됐을 울림이 손마디에 전해졌다. 그녀는 울다 웃었고 나는 아빌리파이의 혀 뒤에서 웃다 울었다.

 

병원에서 보낸 시절은 정물화 그 자체였다. 바깥에서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안은 바뀐 게 없었다. 정해진 시각에 밥을 먹고 상담을 하고 뜰을 거닐고 TV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걸었을 뿐 뭐 때문에 오고 갔는지는 좀체 떠오르지를 않는다. 퇴원하고 트럭이 코앞에 급정거 하는 걸 보고서야 시간의 제국으로 복귀했음을 실감했다. 그날부터 가위에 눌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악몽 때문이 아니었다. 사지가 뒤틀리며 해체되는 듯한 무중력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일주일을 뜬 눈으로 샌 끝에 깨달았다. 시간의 잠수병에 걸린 것이다. 시간이 정지된 곳에서 한 순간에 시간 속으로 던져졌을 때 발생하는 일종의 타임 래그였다. 며칠 전 심한 후유증을 겪고서야 완쾌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뱀에 물린 라오콘이 온몸을 비틀며 돌진해 왔다. 착시가 아니었다. 근육은 잔뜩 뒤틀렸고 고통의 신음소리가 귀를 찔렀다. 다행히 라오콘이 멈춘 덕분에 또 다시 병원으로 넘겨질 위기를 넘겼다. 시간은 나에게 질서와는 거리가 먼 존재가 되어 버렸다. 신은 다른 차원의 시간을 나에게 부여한 건 아닐까. 환생부터가 아이러니다. 전생의 삶에 집착하는데 나는 갈수록 나폴레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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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빌리파이 : 정신분열증 치료제

IP *.212.98.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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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2.02 08:36:11 *.10.44.47
그에겐 너무나 분명한 자기안의 위대함의 우물.
세상에 자기의 물맛을 알릴 수 있는 두레박이 없는 게 문제네요.
남일같지 않아요.

하지만 그가 정말 위대하다면 어떻게해서든 그 물을 세상으로 퍼 나를 방법을 만들어내겠죠?
나폴레옹이 스스로 해석한 우물의 용도와
그 물을 세상으로 퍼 나를 두레박 제조법이 궁금해집니다. 
ㅋㅋ 넘 보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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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2.02 19:23:30 *.121.243.156
두가지 생각이 떠 올랐어..

1. 스승님께서 상현에게 처음 하셨던 말씀..
"상현아, 장신구가 너무 많다."

2. 그래도, 그 화려함에 눈길 쏠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역시 중요한 것은 '중용? ㅎㅎㅎ

지금껏 쓴 것을 모아서 북페어에 넣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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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2.07 10:48:21 *.236.3.241
전반부의 은유로 구성된 문장들이 좀 느끼했나 보네요 ㅎㅎ
쓰면서 좀 께름직하긴 했습니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사변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 덕분에 배우는 것도
있으니 일단 질러 봤습니다. 다 써 놓고 찬찬히 훑어봐야죠~~

세심한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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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2 15:23:13 *.206.10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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