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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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54 - 급해서 이만 줄임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 봄날같이 아른하고 볕이 따뜻하다. 구 새해를 마중하는 기간이다. 이른 바 빨간 날, 달력에 빨간 색으로 표시되는 노는 날이다. 다만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될 뿐, 각자 맡은 역할을 무지막지하게 열심히 해야 한다.
이제 응애 칼럼도 막바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응애 54를 쓰면서 언제 끝을 내야할까 고심 중이다. 마음속으로 정해둔 목표는 있다. 일단 목적지에 다다르면 다음 목적지가 더 잘 보이겠지... 요즈음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여전히 똑딱거리면서 글을 쓰기 때문에 오탈자가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몇 번을 살펴보고 내보내지만 검열을 용케도 빠져나가 한참 후 다시 읽어볼 때에야 겨우 실수가 눈에 띈다.. 손가락도 늙어가나 보다. 할 수 없이 손가락을 제자리에 올려두는 연습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배워야할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제까지 자주 책제목을 칼럼의 제목으로 쓰며 즐겼다. 때로는 1120쪽을 한 칼럼에 다 구겨 넣기도 했고, 차마 한 페이지로 줄일 수 없어서 따로 노트를 해둔 사연도 많다. 이렇게 따로 갈무리해둔 이야기들은 언젠가는 글감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기도 한다. 요즈음엔 스토리텔링도 좋지만 짧은 글에 담긴 깊은 생각들이 마음에 와서 닿는다. 사색의 계절에 좋은 생각들을 많이 모았다가 겨울잠을 자려고 꿈을 꾸어왔다. 꿈속에서 가끔은 곰 발바닥 같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려고 한다. 음~음~잠꼬대인가? 이럴 땐 벌떡 일어나 샘터 찬물에 어지러운 꿈 헹구러 가야한다. 그러나 욕심만 앞서는 게으른 글곰 한 마리, 곰 같은 글을 써내려 갈 뿐이다.
내 소원의 하나가 나무에 해먹을 달아놓고, 읽고 싶은 책을 끝까지다 읽어보는 것이다. 아슬한 장면에서 멈추어야 할 땐 정말 신경질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한 번에 한권의 책만 읽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필요한 책을 읽기가 무섭게 무언가를 써야 한다. 그래야 겨우 팀이 되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폐가되지 않게 결과물을 내어 놓을 수가 있다. 그나마 이젠 속도가 좀 붙었다. 전 같으면 어김없이 밤을 새워야 했고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급하게 두꺼운 책을 보는 일이 부담스러워서 그 옆에 시집을 나란히 쌓아 두었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이 급하다. 급해서 시를 음미하지 못한다. “급해서 이만 줄임”이란 시는 없는데 “급해서 이만 줄임”이란 시 감상문은 있다. 메아 쿨파, 내 탓이다.
“급해서 이만 줄임” 한자로 쓰면 오직 한 글자 急(급)! 명절이어서 할 일이 많아서 칼럼을 이만 줄인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을 다듬고 또 다듬을 내공이 없어서 그냥 풀어쓰고 있다는 말이다.
장자가 이 急(급)에 대해서 한 말이다.
“자기의 그림자가 두렵고 발자국이 싫어서 그것으로부터 떨어지려고 달린 자가 있었다. 그러나 발을 들어 올리는 횟수가 잦으면 그만큼 발자국이 많아지고, 아무리 달려도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달리는 것이 늦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급하게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리다가 힘이 빠져서 죽고 말았다. 그늘에 있으면 그림자가 없어지고, 멈추어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아아, 급해서 이만 줄인 글은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언제나 급해서 이만 줄인 글만 쓰게 된다. 내 탓이다.이번에는 내 큰 탓이다. 내 큰 탓, 메아 막시마 쿨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