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 조회 수 244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심리 테스트를 하다보면 질문중 당신은 어떤 동물을 좋아 하십니까 라는 문항이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코알라라고 대답을 하곤 한다.
코알라는 외적인 귀여운 생김새와 함께 오랫동안 생존을 유지해온 동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느림의 미학이라 불리는 것이다.
어느 날 늑대 한 마리가 이른 아침 조깅을 하며 숲속을 거닐고 있었다.
나무위에 매달려 있는 코알라를 우연히 보게 된 그는 마침 배가 출출하던 차에 잘되었다는 심정으로 표적 감을 노려보기 시작한다.
내려올 찬스를 볼뿐더러 조금의 빈틈을 노리기 시작한 그였지만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좀체 코알라는 거동을 하질 않았다.
밤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과 사흘이 지났다.
늑대는 어찌할 수 없었다.
‘도대체 재는 뭐야. 죽은 것 아니야. 에이, 내가 대상을 잘못 골랐구먼. 일진 사납게.’
코알라는 죽은 게 아니었다. 살아 있되 너무나 천천히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게 느리게 움직이고 있음에 그 존재의 의미성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코알라의 생존 비법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입성해 출근길 지하철을 처음 탔을 때 생소하게 느껴졌던 점이 있었다.
발 디딜 틈 없는 승객의 인원에 입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행동이 그것 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냅다 뛰기 시작하는 그들. 무엇이 저리 바쁜지. 그들은 에스컬레이터며 계단이며 가릴 것 없이 구두굽 요란하게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천천히 양반다리를 휘저으며 훠이 훠이 걷고 있던 나는 어느새 뒤처지기 시작 하였고 종내 뒤에는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끌끌. 누가 잡아가누. 뭐가 저리 바쁜가.’
하지만 6개월 후 그 대열의 선봉에는 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뮤지션중 넥스트는 <도시인> 이라는 노래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회화한 가사를 발표 한 적이 있다.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fast food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바늘 보면서
…….
한손엔 휴대전화 허리엔 삐삐차고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 ‘
이를 대변하듯 매스컴에서는 빠름과 정보력이 무슨 화두라도 되는 냥 현대인들이 세상을 살아남기 위한 생존력의 비법으로 소개되고 있다.
덕분에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등으로 무장한 이들이 장소와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정보의 탐색 자가 되고 시공간을 넘나든다.
음악에 열중해 커다란 헤드폰을 장식처럼 낀 이들.
자기만의 세계에 탐닉한 이들.
혹시 이것이 디지털 유목민의 진정한 모습인지.
그래서인가. 그렇지 못한 이들은 세상에 뒤처지는 모습으로 내비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지루하게 걷기만 하는 지리산 및 제주도의 올레길에 열광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머나먼 이국땅인 산티아고까지 가서 순례 여행의 생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소셜 네트워크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삐삐를 사용하는 이들이 아직도 엄연히 존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장길 이따금씩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하다 보면 새로운 경험을 한다.
빠름의 대명사인 KTX에서는 느껴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곳곳마다 서는 간이역을 비롯해 차창 밖으로 슬며시 지나가는 우리네 삶의 풍경들.
산이며 강이며 들이며 골짜기며 내 가슴의 추억을 채우고 지나가는 그것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계란 한 알을 소금에 찍어 추억의 맛을 음미도 해본다.
그래서인가. 사람의 모습이 그제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
나른한 휴일 오후.
집안 청소중 묵혀 두었던 까만 다이얼식 전화기를 창고에서 발견 하였다.
애써 먼지를 닦아내고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조심스럽게 돌려본다.
짜르륵 짜르륵.
허허~
아직도 소리가 감기네. 그 소리에 애틋한 그때 그 시절도 감긴다.
몸으로 전해져 오는 촉감도 오래전 그대로다.
천천히 누가 뭐라해도 제갈 길을 가려하는 그 자태와 여유로움이 한낮의 시간을 비껴가며 크게 기지개를 편다.
아웅~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192 | [컬럼] 가끔은 기생이 되고 싶다. [5] | 최우성 | 2011.02.07 | 2520 |
2191 | 여행가기 [3] | 이은주 | 2011.02.07 | 2406 |
2190 | <소설> 우리 동네 담배가게 아저씨 나폴레옹(8) [5] | 박상현 | 2011.02.07 | 2532 |
2189 | 무제 [8] | 신진철 | 2011.02.06 | 2250 |
» |
단상(斷想) 49 - 느림의 미학 ![]() | 書元 | 2011.02.06 | 2444 |
2187 | 외식업의 비전 [1] | 맑은 김인건 | 2011.02.06 | 3198 |
2186 | 응애 54 - 급해서 이만 줄임 [5] | 범해 좌경숙 | 2011.02.03 | 2856 |
2185 | <소설> 우리 동네 담배가게 아저씨 나폴레옹(7) [4] | 박상현 | 2011.02.02 | 2413 |
2184 | 다시 시작하는 첫 책 기획안!!! [6] | 김연주 | 2011.02.01 | 2375 |
2183 |
[뮤직라이프 4호] 그림자마저 사랑할 수 있다면 ![]() | 자산 오병곤 | 2011.01.31 | 3966 |
2182 | [컬럼] 삶이 말을 걸어올 때 [6] | 최우성 | 2011.01.31 | 2256 |
2181 | 킁킁킁~ 인간의 잃어버린 마음의 한 조각을 찾아라. [4] | 이은주 | 2011.01.31 | 2612 |
2180 | <소설> 우리 동네 담배가게 아저씨 나폴레옹(6) [8] | 박상현 | 2011.01.31 | 2418 |
2179 | '사장의 일'이란 무엇인가? [1] | 맑은 김인건 | 2011.01.31 | 4299 |
2178 | 함께 한다는 것 [10] | 이선형 | 2011.01.31 | 3165 |
2177 | 라뽀(rapport) 40 - 교육을 말하다 | 書元 | 2011.01.30 | 2194 |
2176 |
단상(斷想) 48 - 겨울 오디세이(Odyssey) ![]() | 書元 | 2011.01.30 | 2368 |
2175 |
단상(斷想) 47 - 기억을 가슴에 담다 ![]() | 書元 | 2011.01.30 | 2497 |
2174 | 강에서 만난 인연-수원에 가면 그가 있다 [4] | 신진철 | 2011.01.30 | 2390 |
2173 |
욕실 드레싱 3 - 내 손으로 어디까지 가능할까 ![]() | 불확 | 2011.01.28 | 3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