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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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이동용 케이지에 갇혀 여행을 가는 신세가 되었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그 잠시 사이에도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가빠졌다. 흔들거리는 케이지에서 몸이 이리저리 밀리고 부딪히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곧 이루어질 큰 자유를 위해 입을 앙 다물고 꼬리를 바짝 말아 엉덩이 사이에 끼운 채 꾹 참았다. ‘그래! 사람들이 깨끗하지도 않은 손으로 귀엽다 머리를 만져대고, 한 번만 안아 보자고 졸라대는 아이들의 품속에서 애기처럼 굴어야 하는 것보다 이 안이 더 속 편안해.’ 속과 마음을 가라 앉히며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동시에 승객들은 나와 엄마를 번갈아 위 아래로 쳐다 보았다. ‘저 눈 빛은 뭐야? 스스로의 인격을 낮추고 있잖아, 상관없어. 쳐다 보는 것은 그들의 자유니까……’ 좌석에 앉기도 전에 스튜어디스가 규정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훈계하듯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개를 꺼내면 벌금을 내셔야 합니다. 의외로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스튜어디스의 예민한 반응으로 이미 나는 그녀가 개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목소리에서 냄새 맡을 수 있었다. “절대 케이지 안에서 꺼내시지 마시고 의자 아래에 놓으셔야 해요.” 난 그렇게 ‘절대’를 강조하며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서 쳐졌던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도전이니까….. 나 보고 이렇게 한 시간을 참고 가라고 절대 그럴 수는 없지. 나는 정말로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귀를 축 늘어트리고 눈에 힘을 풀었다. 혀를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내놔야 사람들은 더 가여워하고 귀여워 미치려고 한다. 가여움과 귀여움이 만났을 때 사람들은 자제를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어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엄마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 보았다. 일단 스튜어디스에게 접근하려면 엄마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엄마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때 헐떡헐떡 숨을 몰아 쉬며 옆으로 픽 쓰러져 누워 버리면 난 오분 안에 이 케이지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저기요’ 엄마가 스튜어디스를 불러 세웠다. 무언가 내 상태를 열심히 설명하는 것 같았다. 스튜어디스가 무릎을 구부려 내 케이지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을 주춤거렸다. 쥐보다 조금 큰 나를 보고 무섭다는 말은 그 아름다운 미모에 흠집이라 생각되어 말하지 못했고 들여다보기는 무서웠을 것이다. 그녀에게서는 ‘밥 먹고 살기 참 어렵다’는 깊은 사연의 한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조금 뒤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구부려 나를 들여다 볼 것이다. 나는 얼른 몸을 꽉 짜서 말린 걸레뭉치마냥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구석에 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휴 너무나 귀엽고 예쁘네요. 몸집이 작아 나와도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없을 것 같으니 살짝 꺼내 담요에 싸서 안보이게 안고 계세요.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라 걸리면 큰 일 나거든요.” 그녀는 자신의 약한 면을 들킬까봐 아주 관대한 조치를 취해 주었다. 드디어 창살 문이 열리고 나는 케이지를 빠져 나와 일등석 보다 더 아늑하고 편안한 엄마 품에서 비행을 즐기며 하늘을 날아 가고 있었다.
쪽빛 푸른 바다를 끼고 나는 가족과 올레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아이 귀여워!’ 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며 아랫 입술을 말아 혀로 잡았다 당기며 꽈리 부는 소리로 ‘어여어여’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여자는 얼굴이 없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스튜어디스가 내가 무서워 주춤거리듯 나도 주춤거렸다. 무서웠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가족이 부르지도 않았지만, 내 이름을 듣고 달려가는 충견처럼 막 뛰어갔다. 그 후에도 나는 몇 명의 얼굴 없는 여자들을 만나고야 그녀들이 태양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이틀에 걸쳐 올레 7코스, 8코스를 도는 일이 쉽지만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 못지 않게 숨겨져 있는 곳곳의 난코스가 나를 맞았다. 바닷물이 슬며시 밀려나가는 틈을 타서 바다의 징검다리도 건너야 했다. 가족은 이미 다 건너 손짓하고 있었다. 기막힌 타이밍을 요구하는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나는 나무 밑둥치에 영역 표시를 하다가 그만 엄마와 나는 가족과 떨어지게 되었다. 나를 찾아 안아 드는 시간에 타이밍을 놓쳐 바닷물이 엄마의 허리까지 밀려 들어왔다. 엄마는 내가 젖을 까봐 어깨까지 올려 안고 있었지만 밀려 나가는 파도의 힘은 엄마와 나를 쓸어나갈 기세였다. 한발도 움직일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젖은 바지와 젖은 운동화를 신고 언덕길을 오르는 걸음걸이가 너무나 무겁고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그 과정에 엄마의 인생을 그려 넣으며 나를 안고 다독이며 이야기를 했다. “오리오, 다리 아프지? 그 작은 발과 짧은 다리로 따라 오는 길의 끝은 네가 마음먹고 멈추는 그 지점이 되겠지. 하지만 너의 힘으로 되지 않는 곳에서 내가 너를 안아 주듯 엄마도 누군가의 힘으로 힘든 길을 편안하게 가는 일도 있단다. 아마 사람들은 이래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거일지도 몰라. 너처럼 말이야……. 여행은 여유가 있고 즐거울 때도 떠나지만,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스스로의 용기를 얻어 다시 살아 보기 위한 에너지를 얻으러 떠나기도 하는 거란다.”
해병대가 큰 돌을 주어 날라 만들었다는 ‘해병대 길’, 울퉁불퉁하지만 반질반질한 돌은 이내 가는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 주저 앉혔다. 젖은 목을 축이고 엄마의 젖은 운동화는 속까지 들어내어 햇빛에 널렸다. 엄마는 까진 뒤꿈치에서 나오는 피를 닦으며 가방에서 대일밴드를 뒤적이며 찾고 있었다. 그 틈에 나는 엄마의 까진 부위를 혀로 핥아 주었다. 엄마가 살아왔던 길이 오늘 길 같았다면 나의 작은 몸짓이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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