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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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기생이 되고 싶다 / [2-1 컬럼]
취하기 싶으면 술을 마시면 된다.
굳이 술에 대해서 공부할 필요는 없다.
음악을 느끼려면 들으면 된다.
굳이 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할 필요는 없다.
듣지 않고, 음악이 주는 그 감동과 황홀함에 취할 수는 없으니까..
대학에 갓 입학한 20대 초반이었다. 친구와 함께 라디오 녹화현장에 갔던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은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였다.
객석의 자리가 부족해서 무대 앞 맨 바닥에 앉아서 구경을 했다.
그 때 사회를 보던 별밤지기 이문세가, 방송에 처음 나온다는 신인그룹을 소개했다.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원시인 같이 생긴 이상한 남자와 몇 명의 뮤지션들이 나오더니
관객들에게 인사도 없이, 생전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첫 노래를 듣는 순간, 등이 저절로 세워졌다.
갑자기 등을 타고 전기가 흐르는 듯 하더니, 온 몸이 ‘찌리리릿~’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건 일종의 쇼크였다.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면서 벌어진 입이 다물지지지 않았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등에 흐르던 그때의 소름끼치는 전율은 잊히지 않았다.
그 신인그룹은 ‘들국화’였다.
야생동물이 울부짓는 것 같았던 원시적인 창법의 전인권!
그때의 노래는 20세기 불후의 명곡, ‘그것만이 내 세상’ 이었다.
담백하고 중독성 강한 기타와 드럼...
‘아, 저런 노래가 있다니....’ 폐부 깊숙한 곳에서 나오던 탄성같은 한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단 한번 듣고 음악의 감동과 황홀함을 느꼈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 순간부터 들국화의 마니아 팬이 되어, 모든 콘서트를 따라다니고, 포스터를 방에 붙이고 하는
그런 노력은, 물론 하지 않았다. (난 좀 게으른 사람이다.) 그저 가끔 음반을 들으며
그런 감동과 전율을 처음 느꼈던 것이 생경했을 뿐이었다.
음악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자신을 위무하지 못하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
어설픈 작곡을 하면서, 음악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대답한 내용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션들에게 ‘음악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우림의 김윤아는 말한다.
“음악의 원천은 불행, 단지, 저 자신을 위해서 노래하죠...“
그녀는 자신을 구원하기 바빴단다..
‘행복의 나라로’ 라는 노래로 유명했던 저항과 통기타의 상징, 한 대수.
그를 음악으로 이끈 것은?
‘마음속에 항상 고통의 지느러미가 꿈틀대기 때문‘ 이라고 한다.
그는 ‘욕망’이라는 음반에서 결코 채울 수 없는 끝없는 욕망과 결핍을 노래 속에 담고 싶어 했다.
산울림의 김창완 아저씨..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자유인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회의주의자’에 가깝다.
그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데 자기 시간의 90%를 쓰고, 나머지 10%를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며 웃는다.
치유와 자연, 영혼을 노래하는 작가주의 가수 이상은도 멋져 보이고
매력적인 중저음 보컬의 김동률과, 대중가수 같지 않은 이적도 좋아하지만
내가 진짜 가수로 손에 꼽는 사람은, 벌써 나이 62 세가 된 할배다.
이 할배의 노래를 듣고, 나는 한번 더 전율했다.
그건 전인권의 노래를 들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의 소리에는 통절한 삶의 희노애락이 묻어 있었다. 시원하면서도 구슬프고 애절하면서도 화끈했다.
아마도 그가 숱한 방황 후에야 노래를 통해 인생의 행복을 찾았기에 그런 소리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가수도 밥벌이를 우습게 알지 않는다. 그 또한 보험회사 사무직, 무역회사 사무직, 독서실 주인, 카센터 사무장 등을 전전하며 밥벌이에 매여 있었다.
그럼에도, 가슴 속 불같이 자리잡은 음악을 위해,
나이 마흔여섯에 생계를 접고, 결국 자신의 운명을 찾아 간 이 할배가 말한다.
“요즘처럼 나라가 어렵고 세계가 흔들릴 때 누가 위로해줘요?
우리 같은 기생, 무당, 굿쟁이가 해줘야쥬.“
내가 말하는 기생은 일어설 기(起), 인생 생(生),
생기를 넣어주는 사람“ 이지유....
자신의 사명을 찾아,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그는,
소리꾼 장사익 할배다.
몸의 상처
마음의 상처로
일어서지 못하는 이들을 대할 때,
특히,
쉽게 일어설 수 없는 환자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
그들에게 생기를 넣어주고 싶다.
가끔은 나도
기생이 되고 싶다.
p.s 그동안의 컬럼을 보니, 너무 내용이 무거운 것 같아서,
가볍게 가려다 보니, 글이 안써지고...
뭘쓸까 고민하다가, 보니...요로코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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