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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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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3일 10시 48분 등록

강진장에서 내딛다

 

음력 정월 초닷새, 명절 끝 강진장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이미 해걸음이 중천인데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환영 나온 인파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지만, 버스에서 내린 뻘쭘한 걸음이 망설이고 있었다. 터미널을 돌아 재래시장 쪽으로 접어드는 길, 스레트가 얹혀진 담벼락에 보청기 광고지가 눈에 띄었다. 제철이 아닌 까닭인지 녹슨 철장으로 얽힌 닭장 안의 계공들도 시름시름 졸고 있다. 마실 삼아 나온 할머니 셋이 볕드는 평상에 앉아 명절에 다녀간 며느리들 흉을 보고 있다. 빨간색 꽃이 새겨진 누비조끼를 걸친 할머니 입담이 제법 걸다. 허리 굽은 할머니 하나가 그 앞을 지나며 슬쩍 말인사를 건네곤 건어물 가게 앞에서 잠시 눈길을 판다. 느린 걸음이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물건 살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인사대신 풀리지 않은 날씨 탓부터 한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있다. 운암집.. 천담집.. 가게 간판들만 보아도 이곳 사람들 고향이 어딘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제법 머리가 벗어진 사내가 연탄재를 깨뜨리며,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구덩이에 디딤질을 해댄다.

 

전주에서 시외버스로 한 시간 거리지만, 한 삼십년쯤은 거슬러 올라온 것 같다. 월요일인지 조차도 기억하기 어렵다. 이곳의 시간은 5일 단위로 간다. 끝자리 2일, 7일에 맞춰 사람들이 모이고, 보따리 쌈지주머니 같은 한 줌 산나물들을 핑계 삼아 말씨름들이 오간다. 발걸음은 말소리보다 느리다. 전주에서 슬치재를 넘어 관촌, 임실을 거쳐 섬진강을 따라오는 17번국도 중간에 ‘강진’이 있다. 그렇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강진’보다는 ‘갈담’이라고 불린다. 갈담을 지나야 비로소 동계로 순창으로 숨이 트이고 남원으로 갈 수 있고, 예전에는 멀리 장흥, 벌교, 순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거쳐야 했던 길목이기도 했다. 회문산, 백련산이 만들어 낸 깊은 골짜기들을 따라 이름도 모를 물길들이 섬진강으로 흘러들 듯, 장날이나 되어야 세상 구경을 나오는 오지의 발길들도 있었다. 가까이 북쪽에서는 하운암, 청웅, 임실 그리고 남쪽에서는 순창, 동계, 사곡 사람들과 덕치, 옥정 정읍의 황토리, 산내면 사람들이 흘러드는 삶터였다. 1967년 섬진강 댐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산외와 칠보 쪽 사람들 소식은 끊겨 버렸다.

 

잘 들어보면 1.6장이 서는 임실, 관촌, 오수사람들 하고는 사투리도 다르고, 필봉농악으로 알려진 가락은 전라좌도보다는 세련되어 있으면서도 평야지에서 발달한 우도가락보다는 거칠다. 사람들 말투도 땅두릅 가시마냥 까시럽다.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낯선 외지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골짜기마다 숨겨져 있다. 그것은 멀리 회문산, 백련산이 품고 있는 섬진강만이 기억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따금씩 장터국밥집 솥단지의 육수국물이 닳아지고, 막걸리 사발이 비워질 때면 튀어나오는 해묵은 밑천들이다. 멱살 잡고, 주먹다짐이 나기도 하지만, 파장 즈음이면 툴툴 털고 돌아서서 다시 얼굴보고 살아야 하는 웬수같은 이웃들이다. 동학군의 대장이었던 전봉준이 쌍치면 휘노리에서 잡혀갔고, 한 때는 빨치산 본부가 숨어 머물던 곳이었다. 세상사람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낮과 밤을 달리 살았던 이들에게는 내놓고 자랑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누구는 소탕하는 국방군을 돕고, 또 아무개는 산사람의 자식이었다. 한 마을에서 같은 우물물을 길어다 먹으면서도, 입방아를 조심해야 했다. 관군도 물러가고, 토벌대도 사라졌지만 질긴 목숨들이 그대로 남아 피붙이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먼저 꺼내지 않는 아픔이지만, 일단 말문이 터지면 뼛속 깊이 새겨졌던 칼자국들이 드러나곤 했다. 그 상처에서 흐른 피들이 흘렀던 섬진강이었다.

 

물이 도는 회진리 물맛

 

갈담. 나는 거기서부터 길을 나섰다. 생각보다 일찍 장터를 벗어나 물이 흘러가는 길을 따라 섬진중학교를 지났다. 얼마 못가서 물이 잡아 돌았다. 회진리였다. 운암댐이 있는 하천과 합류하는 곳에서 길도 굽었다. 20년 만에 다시 걸어 오르는 길, 나는 회진리의 물맛을 기억해냈다. 대학 3학년 때였다. 농촌활동을 이곳으로 왔었다. 소값파동 때문에 자살했던 농민들의 이야기로 마당극을 했고, 막걸리 두어 사발에 신명나게 풍물을 쳤었다. 그렇게 땀을 쏟고, 남자들 서넛이서 시암터를 찾아 등목을 했었다. 물이 참 시원하기도 했었지만, 농활기간 내내 고생하던 땀띠가 한꺼번에 나았던 기억 때문에 나는 이곳의 시암터를 다시 찾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누군가에게 여쭐 요량으로 볕이 잘 드는 마을회관 문을 열었다. 복례가 둘, 순례, 판례도 있고, 순복, 순덕, 보덕, 옥자, 정자, 산순, 양순.. 마을 노인 21명의 이름표가 정수기 옆에 차림표처럼 붙어 있다. 얼핏 들어도 연세들을 짐작케 하는 이름들이다. 산자락을 타고 앉아 햇볕을 끌어안고 있는 마을 사이로 동네길이 나 있다. 굳이 시암터로 향하는 길을 묻지 않아도 길은 외길이다. 얼기설기 크고 작은 돌들을 쌓아 흙을 버무린 돌담. 아직 녹지 않은 길그늘 눈조각들이 사각사각 밟히고, 응달진 양철지붕 아래로 눈 녹은 물들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도리어 적막같다. 시렁처럼 얹힌 외양간 볏짚들이 겨울새 지친 몸을 데우고 있다. 어느 집 마당 한 켠에 내걸린 허름한 고쟁이 두어 장에 닳고 닳은 내복이 추워보였다. 할아버지가 안 계시나보다.

 

동네 길이라야 한 걸음이었다. 얼핏 마을 뒷산이 보이나 싶더니, 금새 동네길 맨 끝에 매달린 집이었다. 서너 평 남짓. 옴박하게 파들어 간 한 가운데 노깡을 묻어 물을 받았다. 수채로 흘러가는 젖은 자락에 진초록 물이끼가 끼어 있고. 누구일까. 금이 간 플라스틱 바가지를 가는 철사로 바느질 하듯 얼기설기 엵어 놓았다. 고작 1미터 남짓 깊지 않은 노깡 속 돌들에도 이끼들이 붙어 자라고 있다. 깨끗한 정수기 물만 고집하는 깐깐한 도시 아이들이 이런 물을 마실 줄 알까. 바가지를 들어 물 위에 떠있는 마른 낙엽 몇 장을 젖히고 살픗 퍼담은 물로 두어 모금 목을 축였다. 목젖을 넘어가는 미지근함이 탁 쏘는 광천수도 아니고, 이 시리게 시원한 음료수 맛도 아니지만 어머니 손에서 막 다듬어낸 봄나물 같이 풋풋했다.

 

“어디서 왔능감? 물맛이 좋제?”

아무리 동네 시암터 물 한모금이라지만, 소리도 없이 다가선 낯선 인기척에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냥 싶었다. 호미 한 자루로 뒷짐을 진 곱상한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예? 네--”

“바가지 물이 안 새는감?”

바가지 깨진 걸 묻는 것을 보니, 노깡 옆에 바가지를 둔 분인듯 싶다.

“네.. 좋은데요. 솜씨가 좋으시네요”

“엊그제 다녀간 우리 손주 놈이 퍼썩허고 내부치는 바람에 금이 갔는디, 그냥 버리기 아까서 철사로 엮은 것인디.. 다행이구만.. 거 하나 있으면 옴방져.. 빨래 헐 때 물퍼담기도 좋고.. 아직 쓸만허제?”

뭣이 쓸만하다는 것이지? 바느질 솜씨를 말하는지, 연분홍 색깔 바랜 금간 바가지를 말하는 것인지. 어쩌면 아직은 쓸모 있다고 말하고 싶은 할매 자기 이야기를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답할 틈도 없이 이어가는 할매의 말달리는 솜씨에 비긋이 웃고만 서 있다.

“참 신기허기도 허지.. 딱 정월 초하루 지나면 짐이 안나.. 한 겨울에도 따땃한 짐이 나고, 한 여름에는 이가 시려”

“알아요. 이십년 전에 제가 이 물로 등목하고 땀띠가 나았거든요. 얼마나 시원하던지.”

“전에도 왔다고? 어디서 왔는감? 장가는 갔어?”

이십년 전.. 그때는 오십 줄 아지매였을테고. 마을 잔치 때 풍장치던 나랑 양손 잡고 어깨춤이라도 춰봤을 인연일지 모른다. 그치만 깜깜한 여름밤이었고, 전봇대 아래로 희미하던 가로등 불빛과 마당 한가운데 피워놓은 모닥불에 비친 땀이 범벅된 얼굴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종종 들러 언제든 물 한 모금 마시고 가라는 인심을 남기고, 고추씨를 심기러 간다며 잠시 폈던 허리를 다시 구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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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었던 배낭을 다시 추어 매고, 할매 손길로 엮은 억지 인연 같은 바가지로 마저 한 모금을 더 들이켰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내려가다 회관 앞마당에 모인 어르신 몇 분들과 눈인사를 했다.

“그려.. 시암터는 찾았능감?”

“전주서 왔담서... 사진찍는 게벼? 젊은 양반이 이 동네 뭐 볼 것이 있다고..”

잠시 물 한 모금 마시고 나왔을 뿐인데, 소문은 초고속 인터넷 시대였다. 그제서야 시암길을 물으려고 잠시 말을 섞은 비료 푸대 나르던 아지매 생각이 떠올랐다. 강진 장에 나간다며 택시를 기다리는 이장님도 계셨다. 물자리보고 앉혔다는 이 마을 전설이 새로 이어지고, 고추밭 고랑같이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입춘을 지난 봄볕이 제법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덕치에는 짜장면 집이 없다

 

덕치로 이어지는 뚝방 길을 따라 잡았다. 편하기야 아스팔트 길이 낫겠지만, 왠지 길을 걷는 맛이 나지 않는다. 간혹 속도도 줄이지 않고 지나쳐가는 트럭들 때문에도 번거로운 일이다.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질척해진 길, 잔자갈 밟히는 대로 걸음을 떼어 보지만 신발 밑창에 달라붙는 인연들을 어찌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 큰 돌에 비벼 문대보기도 하고, 가볍게 툭툭 차보기도 한다. 신경질을 부리듯 바닥에 땅땅 굴러보기도 하지만 질긴 목숨들이다. 내가 선택한 길인데 어쩌겠는가. 결국 제풀에 지쳐 포기를 하고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찌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서 흙탕길을 지날 수 있을까.

 

강 건너편 비닐 축사 쪽에서 개들 짖는 소리가 난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만, 이내 컹컹 짖어대는 맞대꾸들이 꽁꽁 얼어붙은 계곡으로 울려든다. 낯선 발걸음 소리 때문이라기에는 너무 멀다. 아마도 지들끼리 싸움질이 난 모양이다. 강 건너 소란이 물을 건넜다. 이쪽 두터운 부직포로 덮여진 하우스에서는 닭들을 키우나 보다. 시름시름 앓아대는 닭들 소리가 환풍기 팬소리에 찢겨져 들린다. 강진장 한켠 쇠울타리에서 졸던 닭들 생각이 났다. 그들도 한 때는 초가지붕 위에서 당당히 홰를 치던 조상들을 가졌을테다. 기나 긴 어둠을 쫓고, 아직 이슬도 찬 새벽공기를 가르는 칼같은 홰소리를 기억할까. 집단 수용소 같은 곳에서 제 근본도 모르는 알로 태어나고, 빨간 알전등 켜진 부화기 속에서 껍질을 깨고 나온 제 어미 따뜻한 품조차 안겨보지 못한 운명들이다. 땅을 파헤쳐 지렁이를 잡아먹고, 흙이 섞인 모래도 주워 먹던 닭들이 아니다. 때가 되면 주어진 배합사료에 살을 찌우고, 혹시라도 질겨진 근육이 붙을까 노심초사하는 주인의 말에 고분고분 제 목숨 내어 맡기면 근심거리 하나 없을 삶이다. 날개 밑을 파고드는 억센 손마디에 저항한 번 못해보고 목이 비틀리고, 김이 나는 뜨거운 물에 털을 뽑히고, 하나씩 포장이 된다. 팔려 간다. 붉은 불빛으로 채워진 냉장고 속에 하나씩 진열된 벗은 모습들이 홍등가를 떠올리게 한다. 나무 도마 위에 발가벗겨진 육신 덩어리는 날선 식도질 몇 번으로 토막이 나고, 지글지글 끓어대는 기름 속으로 던져진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 썼던 고깃덩어리들이 노릿노릿 식탁에 올려 진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먹을 수가 없다. 여름철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리 밑 그늘을 찾고, 솥단지에 개다리 한 짝을 삶고 닭백숙을 끊이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 한 점도 남김없이 발라진 허연 뼈들이 물바닥에 비치고, 간혹 교각 한쪽에는 개를 그을린 불자국이 선연하다. 개는 때려잡아야 제 맛이 난다면서, 산내끼 거적을 뒤집어 씌우고 철사로 목을 매달아 두들겨 잡던 모습을 더 이상은 지켜볼 수가 없었다. 털 하나 남김없이 새카맣게 타버린 뻣뻣하게 굳어버린 주검. 재래시장을 한 귀퉁이를 지날 때면 이따금씩 노란 장판 위에 널려진 그들의 허연 이빨과 빨간 핏덩어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전국 어디를 가나 구제역 때문에 몸살이다. 검문 대신에 임시 포장을 치고 서서,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추위에 떨고 있기도 하고, 소독하고 지난 자리 도로도 꽁꽁 얼어붙었다. TV에서는 수의학 교수들과 정부의 관료들이 나와서 문제들을 토로한다. 방역의 허점과 약품 관리의 미숙함을 따지며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감독과 더 쏟아 부어야 할 예산들을 아끼지 말자고 한다.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자칫 말을 뱉었다가는 성난 농민들의 손에 몰매를 맞을 수도 있고, 애써 농촌의 희망이라고 키워온 축산단지들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인심도 잃고, 표도 얻을 수 없는 탓일까. 강과 하천들이 축산폐수 때문에 골치를 앓으면서도 사람들 눈을 피해 조금만 후미진 골짜기마다 축사들이 여전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무엇부터 풀자고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다만 여전히 아플 뿐이다.

 

어느 덧 덕치를 지나고 있다. 슬슬 배낭이 무거워지는 것이 주린 배 속에도 뭔가를 채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덕치면에는 그 흔한 짜장면집 하나 없다. 새로 지은 면사무소 건물과 종합복지센터 건물이 번듯하고, 우체국과 농협 그리고 파출소 건물까지 있는 곳이지만, 밥 먹을 곳 하나 변변치 않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 문을 열었던 식당조차도 문을 닫아버리고 도로변에 세워진 간판만 바람을 맞고 있다. 마침 면사무소 앞에 나와 계시던 면장님의 눈인사가 반겨든다. 3킬로미터쯤 더 내려가다가 강이 굽어지는 자리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어디쯤인지 알 것 같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래된 예쁜 교회가 늘 반겨 맞던 곳이었다. 아마도 ‘물우리’라고 했던 것 같다. 멀리 회문산을 배경으로 물이 굽어 돌던 자리였다. 허드레 걸음이면 한 시간이면 족히 닿을 것이다.

 

덕치 초등학교 오랜 벚나무 아래서 잠시 한눈을 팔았다.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목소리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강을 바라보고 앉은 학교는 울타리 대신 오랜 벚나무들이 지키고 있다. 아직 개학이 이른지 아이들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창문너머 교실 의자들도 비어 있다. 이제 얼마 후면 담장하나 없는 학교 운동장이 아이들 소란이 다시 채워질 것이고, 언제나처럼 늙은 벚나무의 꽃에 웃음도 피어날 것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아기 진달래를 먹고 산골아이들의 꿈이 커갈 것이다. 강물을 따라 봄이 오르면, 매화도 피고, 산수유도 노오란 꽃시절이 올게다. 그 물길 거슬러 은어도 살이 오를 것이고, 수박향 나던 회 한 접시에 다정한 벗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 것이다. 벚꽃 나들이 걸음들이 이어지고, 치맛자락 살랑거리는 가슴에도 꽃이 피겠지. 섬진강 꽃시절이 다시 오겠지. 언젠가 이 곳 아이들 속에 파묻혀 환하게 웃던, 검정태 안경을 했던 한 시인이 있었다.

 

섬진강 시인

어딜 가나 그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 이름 자체가 이미 섬진강이었다. 식당에서 만난 주인 사내와 또래 남자의 대화에서도 그가 끼어들었다. 전주에서 왔다고 하면, 용택이 만나러 왔냐는 질문을 되받곤 했다. 장산마을 앞을 지날 때도 그랬고, 구담마을에서 잠자리를 청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지나치는 마을의 구석진 자리에도 그의 시詩가 있었고,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도 그가 있었다. 기러기 아빠가 되어, 미국으로 떠나보낸 처자식 없이 외롭게 지낸다는 사연이며, 초등학교 선생이 무슨 돈이 있어 생활하는지 모르겠다며 부러움과 시샘이 반절씩 섞인 반응들도 있었다. 그와 얽힌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외지인들에게 풀어놓는 것이 그들에겐 자랑이었다. 식당을 하는 그는 “용택이형, 덕에 먹고 산다”며, 시인의 생가가 있는 장산마을까지 걷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그의 소개로 자기 식당을 찾은 윤도현의 싸인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았다. 봄이 되면 섬진강 시집을 몇 권 구입해서 식당 벽에 붙여도 놓고, 누구나 볼 수 있게끔 식당 한자리에 둘까 궁리도 했다. 그가 고향을 떠나지 않고, 한 평생 섬진강을 끼고 살면서 지어낸 시詩의 힘이었다.

 

누구는 그 때문에 장산마을 앞 길 포장이 안 되어 울퉁불퉁하다면서 인상을 구기기도 했다. 그 말을 받는 또 누구는 “사람들은 그런 길이 좋아서 오는 것 아니냐”며 반론을 펴기도 했다. 그는 섬진강 사람들에게 밥이었고, 술상에 안주로 올라 질겅질겅 씹히기도 했다. 자주 다니는 카페에서 간혹 그의 얼굴을 대면식하기도 하고, 그저 행사장 먼발치에서 가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만으로는 그가 섬진강에 내린 뿌리의 깊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시인의 시가 그냥 입에서 혀를 부리는 재주에 있지 않고 다섯 손가락 근력만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그 먼 길, 험한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시인을 찾아 나서는 이유가 삶이 시집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라는 것을. 강을 따라 걸어보고서야 알게 된다.

 

해질녘 여울이 내는 아우성, 얼음장이 녹아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슬픔. 겹겹이 얼은 강을 건너면서 억장 무너지듯 밟히는 설움, 돌다리 사이로 빨려들듯 몰려가는 어지러움, 꽁꽁 발이 묵인 채 부는 대로 흔들리는 배고픈 갈대들의 노래. 시인의 마음을 닮지 않고서는 듣지 못하는 강의 소리가 있다. 곁에 두고서도 보지 못하는 무심함을 탓해야 할까, 정신없이 돌아가는 부산한 세상의 흐름을 따져야 할까. 밥공기를 든든히 비우고, 손수 지었다는 식혜도 한 잔 얻어 마시고야 천담을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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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2.13 15:27:36 *.220.23.66
ㅎㅎㅎㅎ..
진철스러운 글이야..

오늘 아침에, 동네에 있는 전주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도서관에 왔어.
(제법 전주식대로 하는 집이라, 모주도 판다..)
니 생각 마이했지...

글이 마치,,아리랑 가락을 듣는 것처럼
김영동의 '어디로 갈꺼나' 를 듣는 것처럼
구비 구비, 잘도 돌아가는구나.....좋다..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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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2.13 17:29:45 *.105.115.207
해질녘 여울이 내는 아~~ 우성...
섬진강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스산해지는 바람결에 제 몸 맡기고 흔들거리는 갈대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그리운 사람들을 하나씩 꺼내
소담스런 강물에 담았지요..
형 생각 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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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2.14 03:11:41 *.10.44.47
이걸 들려주려구 새벽부터 자는 사람을 깨웠수?
그래도 새벽잠 설친 보람은 차고도 넘치니 더이상 시비는 않을라요.

쌉쌀한 겨울바람 냄새가 버터처럼 꼼꼼히 박힌
기지 촘촘한 패스츄리같은 글.

글에서 텁텁한 구들장 냄새를 털어내려면
바람 순해지기 전에 서둘러야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

바람처럼 자유로울 권리는 있으나
바람마냥 가볍지 않을 책임을 잊지 마셨음 합니다.
형의 손을 타고 흐르는 그들이..
굳이 형을 택한 고집이 우연은 아니라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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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2.14 17:08:54 *.236.3.241
까시랍다, 시암터, 옴방지다, 풍장....말들이 눌러붙어 구수한 누룽지맛을 풍긴다^^
말들을 따라가다 보니 말은 없어지고 이미지가 펼쳐진다. 말이 정서를 만든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고 놈의 말 덕분에 너는 전주 촌놈, 나는 서울 깍쟁이가 된 거구나. 

너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새 신 신고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임실 외갓집을 찾던 기억도 나고.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때 들길 따라 터벅터벅 걸아가는 영상이 절로 그려지곤 하는데 어린시절의
기억이 원형이 된 듯 싶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 쌓인 아궁이에서 불씨가 인다. 불씨가 커져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싶으면 어쩌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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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용지 5장 분량이면 읽는데 정독하는데 5분은 걸린다. 소재별로 이 정도 분량을 써야하니 연필자루에
박힌 흑심처럼 이야기를 든든히 받칠만한 모티프를 글 안에 잘 심어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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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4 20:29:20 *.160.33.89
아이고 진철아, 수리수리 잘도 넘어 간다만 손 아귀 속에 잡히는 것은 바람이구나.
너 아무래도 소설로 가야겄다.  덜렁덜렁 수필비스름한 것 같고는 속쓰려 안되겄다.
짠, 뭔가 재미있는 일이 곧 벌어 질 것 같은 데,  푸시시....
사랑도 만들어 놓고 격투도 만들어 놓고 탐욕과 음모도 만들어 놓고 배신도 만들어 놓고
야망과 절망도 만들어 놓고 성공도 만들어 놓고 그래야 쓰것다.   2번 째 책에서. 

강으로 가라.  강으로.   첫번 째 책은.  첫번 째 책은 두번 째 책의 강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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