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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옆에는 묘한 이름의 시장이 하나 형성되어 있다. 번개 시장.
주부들이 장보는 오후 시간에 맞추어 잠깐 개장 했다가 끝나고 나면 번개처럼 철수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까운 탓도 있었지만 나는 가끔씩 한가로이 구경을 다녔었다.
점포뿐만 아니라 길거리에 길게 늘어선 난전들.
할머니들이 땅바닥에 걸터앉으셔서 물건을 파신다.
농산물, 건어물, 잡화, 과일 등등.
생계를 위해서 하나라도 더팔려고 하고 고객들은 시장이라는 프리미엄을 이용해 한 푼 이라도 깎으려고 흥정을 한다.
“이거 하나 더주세요.”
“아이고, 그러면 남는 게 없는데…….”
그중 어릴 적 가장 신기하게 보았던 것은 뻥튀기 장사를 하는 점포였다.
새해 설을 맞아 오꼬시(밥풀과자)를 주문키 위해 누나와 나는 쌀을 한가득 들고 번갈아 가며 길게 늘어선 줄의 자리를 지키었다.
드디어 순서가 오면 주인은 마술사처럼 그 쌀을 둥그런 기계에 넣고 손으로 열심히 돌린다. 이윽고 가열과 혼합의 때가 적당히 무르익었다 치면 이렇게 외친다.
“터집니다. 귀 막으세요.”
그러면 우리는 옛날 6.25 피난 시절 중공군의 대포 소리를 회상하며 두 손으로 귀를 꼭막고 그 광경을 지켜본다.
“뻥이요.”
커다란 굉음과 함께 증기 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뿜어내듯 수증기와 함께 신기하게도 또다른 물질로 생성되어 뱉어져 나온다.
“누나야, 참 신기하데이.”
그랬다. 그때 당시에는 모든 것이 신기 하였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전셋집을 옮겨 다닐 때 짐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나는 먼저 주변 시장 탐방을 한다.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떤 가게가 있는지를 품평회를 하듯이 쭉 둘러보는 것이다. 그리고 단골이 되어간다.
떡볶이 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이런 장사를 하실 분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뽀사시한 백옥 같은 피부에 곱게 차려 입은 단정한 옷차림이 이런 가게를 경영하실 분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실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손님들이 사장님 보고 예쁘시다는 말씀 많이 하실 것 같은데요.”
사십대 후반은 되어 보임직한 그녀는 나의 이 말에 배시시 웃는다. 그래도 싫지는 않는 모양이다.
“겨울은 모르겠으나 여름에 이곳은 무척 더울 것 같은데.”
“아유, 왜 안덥겠어요. 비닐하우스라 더 열기가 가득하죠.”
조금 더 친해진 느낌으로 그녀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척척 해낸다.
“저도 고생 많이 했어요. 여기 이 장사까지 오는 동안.”
그랬다. 어디 고생안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그녀도 나름 자신의 과거가 있어 보임직 했다.
“그래도 자그마하나마 이 장사를 하면서 사업의 비법을 터득 했어요. 알려 드릴까요.”
비법이라? 침을 꿀떡 삼켰다.
“찌는 듯한 더위에 장사를 하면 땀이 절로 흐르고 무척이나 힘들지만, 그럴 때 더욱 일에 집중하면 어느새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요.”
그렇구나. 나는 공감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 앞에서 코흘리개 아이들을 주로 상대 하지만 그런 마인드로 점포를 운영하는 그녀.
그래서 그런가. 오늘 더욱 예뻐 보이심이.
다음으로 만두집에 들렸다. 이곳은 60대 노부부가 경영을 하시는 곳이다.
“김치 만두 있어요?”
자주 들리는 이곳은 할머니의 정겨운 손맛이 일품인 곳이다.
“아이고, 또 오셨네. 조금만 기다리이소.”
경상도가 고향인 그녀는 특유의 친근한 말투로 손님을 상대한다.
커다란 솥에서 만두는 또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 용트림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속살까지 익혀 나오는 만두를 맛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우리네 인생사가 그렇듯이 뭐든지 급하게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덜 익혀 나온 만두를 맛보게 되니까.
“좋으시겠어요. 이제 내일이면 명절인데.”
“좋다마다요. 이번에는 손자가 올라 올낍니다.”
주름이진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는 그녀.
근디 오늘은 왜이리 예쁜 여자들이 많은 거야.
큰맘 먹고 횟집에를 들렸다. 사시미 칼을든 주인은 시장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하게 외치며 손님을 유혹한다.
“자, 싱싱한 갈치 고등어 있어요. 어머니 오늘 횟감 좋은 것 들어 왔는데 한번 드셔 보세요. 매운탕 감도 있는데 국물이 끝내 줍니다.”
대형 마트보다 양을 많이 주는 관계로 가끔 이곳을 찾곤 하는데 내가 주로 사는 종목은 광어이다.
“이 한 접시 얼마예요.”
“1만 5천원 입니다.”
계산을 하는 동안 조선족 서빙 보는 여인은 상추와 함께 자그마한 석화 세 개를 서비스로 챙긴다.
“고맙습니다. 근데 한 개만 더주시면 좋겠는디.”
나의 눈웃음에 녹아 났는지 그녀는 큰거 하나를 인심 쓰듯이 더 얹어준다.
아싸~
어느새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두 손엔 까만 봉지가 행복 가득 다닥다닥 매달려 있다.
“아니, 승호씨. 오늘 떡볶이는 양이 왜이리 많아.”
“몰라. 내가 칭찬 한마디 드렸더니 더얹어 주시데.”
먼저 마늘님은 김치 만두 하나를 손에 쥐고 시식을 한다.
모락모락 따뜻한 맛을 한입에 베어문 그녀는 어느새 고민 하나가 사라진 듯하다.
오늘 나는 행복을 파는 시장엘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