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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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영양제
나는 오늘부터 ‘엄마’라고 부르던 그녀의 호칭을 ‘엔지’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NO GOOD(NG)’ 이란 뜻이 아니다. 그녀는 세례명인 엔젤라의 애칭으로 ‘엔지’라는 천사처럼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사람이 엔지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불러 주었을 때 엄마가 활짝 웃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여자들은 누구의 엄마나, 아내,어느 집안의 며느리라는 직함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오늘 그녀들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다.
오늘 엔지의 친한 동생들이 놀러 왔다. 긴 겨울을 엔지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눈도 많이오고 추운 날씨 때문에 산책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주 적었다. 활력도 떨어지고 밖의 세상이 궁금해질 무렵 손에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들고 우리집을 찾아온 그녀들이 너무나 반가웠다. 뚜껑 없이 올려 놓은 그릇에서 옥수수 알갱이가 튀겨져 팦콘이 되어 나오듯이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며 온몸으로 그녀들을 맞이 했다. 어라! 그녀들은 한결같이 짝에서 떼낸 꽁꽁 얼은 꽁치마냥 빳빳하게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인간들의 표현 방식은 참으로 어설프기만 하다. 좋을 땐 좋다고 온몸으로 표현 해주어야 상대방이 기분이 좋다는 것을 그녀들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잘 모르는 모양이다.
엔지는 벽난로에 불을 피웠고 그녀들은 크리스탈 와인잔에 보라빛 와인을 준비했다. 벽난로, 와인 그리고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은 그녀들을 더 행복해 보이기 위해 마련된 삼박자였다. 나는 어서 높이 잔을 높이 들어 챙~하고 부딪히는 크리스탈의 맑은 잔의 울림을 듣고 싶었다. 그녀들이 들고 있는 잔은 크리스탈 각도에 다르게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챙~ 그녀들은 소리쳤다. “우리의 친목계를 위하여” 삼박자가 모여 축복해 주는 이 아름다운 시간에 왜 건배사는 찌그러진 대접에 어울리는 막걸리 같이 걸죽한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저기 남자가 한 명이라도 같이 있었다면 ‘우리의 남은 멋진 생을 위하여’ 내지는 ‘우리의 꿈을 위하여’ 라고 분위기에 취한냥 약간은 풀어져 멜랑꼴리한 건배사를 했을 것이다. 해동된 꽁치처럼.
네 여자들의 수다가 한바탕 벌어졌다. 그녀들의 입은 정말 바빴다. 쉴새 없이 먹으며 살 빼기와 관련된 대화는 벽난로에서 나오는 열기만큼이나 후끈했다. 대화 속의 그녀들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저 상위에 놓여 있는 불량식품을 먹기 위해서는 개에 대해 제일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개에 대한 상식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 개에 몸에 나쁜지 알고 있고 또 상 앞에서 먹을 것을 주는 행동은 개의 버릇을 잘못 들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까지 주지 말라고 잘난 척을 하며 자기만 연실 먹어댄다.
오홋~ 그러나 오늘 모인 그녀들은 모두가 아무 음식이나 내어 주고는 선심을 베푼 양 흐뭇한 표정을 지을 것이 분명하다. 개와 이렇게 가까이 있어 본 적이 없다고 큰 경험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그녀들의 말에 안심까지 되었다. 나와 방울이는 그녀들이 잔뜩 사가지고 온 불량식품에 침이 고였다. 엉덩이를 바닥에 찰싹 붙이고 앞 다리를 가지런히 포갠 후, 끈질기게 한 사람의 입만 응시하면 저 불량식품을 먹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바로 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며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면 안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흐트러지지 않는 끈기있는 자세이다. 하물며 도를 닦는 사람도 가부좌 자세로 끈기 있게 앉아 있어야 깨달음을 얻는다는데 맛있는 불량 식품을 먹기 위해서는 이 정도야 기본이다. 말 없이 앉아 있다 한 번씩 하는 말이 통통 튀는 신선한 비타민 같은 그녀의 앞에 앉았다. “먹고 싶어? 이거 달라고?” 그녀의 반응이 시작 되었다. 조금씩 떼어 주는 금기된 음식은 침도 바르기 전에 꿀꺽 넘어갔다. 엔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손님 앞에서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방울이와 내가 더 못 먹게 강한 제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왜? 그녀의 집을 찾아 오는 사람들 정도라면 이미 우리를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라도 우아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가끔 우리들의 말썽에 참다 못해 소리라도 지르는 날엔 생리 이틀 전이라 예민해져서 그런다며 본인의 탓으로 돌리는 그녀였다. 이번엔 통 크고 마음씨 착하게 생긴 또 다른 그녀 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자자, 일단 먹고 보는 거야.” 먹을 것을 주어도 푸짐하게 주는 그녀는 마음도 넉넉했다. 대화를 잘 듣도 있다가 이야기의 뼈대를 만드는데 도윰을 주는 그녀는 칼슘 같은 존재였다. 마지막 그녀가 난코스였다. 혀끝을 아무리 빼도 닿지 않는 곳에 과자를 놓아주었다. “어머, 이 과자는 맛이 없어 안먹나봐” 하고 치우려는 순간 거리를 조절해 냉큼 주워 먹었다. 빠른 판단으로 각도를 계산하는 나의 행동을 보고 그녀들은 감탄을 하며 웃어댔다. 모든 것을 지탱시켜주는 근육의 주성분인 단백질처럼 그녀는 그 자리를 단단히 지탱하며 부드러운 화술로 웃음을 주었다.
각 성분이 다른 영양제 같은 그녀들의 만남은 활력이 되었다. 그럼 엔지는? 우리에게 탄수화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늘 먹을 수 있어 고마운 줄도 모르고 먹던 밥처럼 우리는 엔지의 사랑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마음대로 행동했다가 그날 먹은 것을 다 토하고 말았다. 속이 비고 배가 고파오니 그제야 엔지의 관심과 사랑이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에너지였다는 것을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