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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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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1일 11시 35분 등록

가족의 의미 / [2-3 컬럼]    


하늘과 맞닿은 바람의 나라!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광할한 땅! 몽골은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생을 마친다는 유목민들의 고향이다. 도서관에서 몽골에 관한 책을 찾아보니, ‘무한한 생명력과 잠재력이 꿈틀거리는 기회의 땅’ 이라는 설명과 함께, ‘어서 여행을 오시라!’ 며 손짓하고 있었다. 몽골은 한번 쯤 가보고 싶은 나라다. 몇 년 전, 스승님께서 홈페이지를 통해 몽골여행자를 모집했을 때, 신청했다가, 여러 사정으로 못 가 본 곳이었고, 변경연 1기 연구원이자, 동문회 회장인 오병곤이, 술자리에서 몽골 밤하늘의 쏟아질 것 같은 별들과, 장작불 마무리를 소변의 힘만으로, 꺼뜨렸던 애기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한 탓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 경험이 적은 사람에 속한다. 결혼 전에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새해를 맞아보겠다고 친구들과 봉고차를 타고 겨울산을 올라갔던 것이, 내가 경험한 여행의 최고치에 해당한다. 아..그래도, 해외여행을 가본 경험은 있다. 결혼할 때, ‘괌’이 제주도 보다 더 저렴하다는 말을 듣고, ‘야, 언제 해외여행 가보겠냐? 이 기회에 한번 가자!’ 고 했던 것인데, 말이 씨가 되었다. 저가의 신혼여행으로 피곤함만 느꼈던 괌 여행 이후, 14년 동안 아직까지 해외에는 가본 적이 없다. 제주도에도 가보지 못하다가, 3년 전 병원업무를 위한 세미나 참석을 위해 한번 가 본 것이 처음이었다. 괌으로 가는 비행기와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 본 것이, 내 비행기 경험의 전부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나, 세계지도를 짚으면서 “여기가 어떻다..이러하다.” 라며 척척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부러워 하곤 한다. 가끔 업무로 인해, 지방으로 1박2일 세미나라도 가게 되면, 마치 여행을 가는 것처럼 마음이 들뜨곤 했다.  

“청승 떨지 말고, 여행을 가면 될 것 아니냐?” 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돈이든, 시간이든, 가치관의 문제든 여하한 이유로든, 가고 싶지만 못가는 사람들도 있는 곳이 세상이다. 어쨌든 여행을 갈 것도 아니면서 몽골에 대한 책을 찾아보는 이유는, 몽골에서 온 환자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가족들이 보여준 특별한 모습 때문이었다.  

77세의‘테르비시’는 몽골에서 온 할머니다.
할머니라고 하기엔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이 고와서,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50대로 착각할 정도였다. 몽골인들은 외모가 우리와 너무 닮아서 마치 혈연과 같은 유대감이 든다. 그녀는 작년 11월 관광비자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딸의 집에 놀러 왔다가,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왔다. 중대뇌동맥 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거미막하 출혈과 뇌내출혈로 개두술과 동맥류 결찰술을 받았다. 수술 후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으나 좌반신 마비와 인지기능 저하, 기관절개 상태였다. 간병인이 필요했고 가족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몽골환자는 특별한 경우여서 자주 들러서 안부를 묻곤 했는데, 내가 감탄한 것은 가족들의 헌신적인 간병 모습이었다. 병실에 갈 때마다 여러 명의 자식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어머니를 간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술 후 회복기간이 길어지면서, 몽골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온 것이었다. 그들은 병원 근처의 모텔을 잡아놓고, 숙식을 해결하며, 매일 어머니의 병상을 지켰다. 어떤 날은 사위가 아이를 데려와서 의식이 없는 어머니의 눈 앞에, 아이를 들어 올려 정성껏 인사를 시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남들 눈을 의식하거나, 부모와 자식간의 지켜야 할 도리를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그녀를 몽골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고 싶어했다. 병원비 문제, 간병의 어려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인의 동승 없이, 의식이 없는 중환자를 비행기에 태울 수는 없다. 결국 몽골의 의사를 한국에 입국시켜서 몽골로 모시고 가기로 했다. 하루에 한번 운행하는 몽골행 비행기가 들어오면 앰블런스가 공항까지 가기로 일정을 맞춰 놓았다. 문제는 병원비였다. 총 3번의 큰 수술을 받았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가 4천만원이 넘었다. 사회사업과 연계를 하고, 사정을 들은 의료진도 선택진료비를 감면해서 1천만 정도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삼천만원은 큰 돈이 아닌가! 가족들은 돈이 없다고 울고 하소연을 했지만, 더 이상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가난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가족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으고, 주변의 친지들과 친구들에게까지 돈을 빌려, 모두 지불하더니, 지난 주 금요일 오전, 어머님을 모시고 결국 몽골로 돌아갔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비즈니스 관련, 전 세계를 자기 집처럼 돌아다닌다.
 

“야, 몽골 사람들은 가족에 대해 원래 그렇게 헌신적이냐?” 

“몽골은 빈부의 차가 심하고,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후진국에 속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순수함과 헌신이 남아있는 나라인 것 같아...얼마 전에 선교사였던 호주친구가 몽골처녀와 결혼해서 결혼식에 참석했었는데, 깜짝 놀랐어...먼 초원에서 살고 있는 가족과 친척들이 2~3일이나 걸리는데도 시내까지 와서 결혼을 축하해 주더라구..게다가 더 재미있는 것은, 결혼 피로연을 3일을 하는거야....3일 낮 밤을 같이 모여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돌아가면서 덕담을 하고, 파티를 하는거야..그 여유로움이 참 부럽기도 하고, 많은 걸 느끼게 해주더라고....”  

몽골 사람들을 무조건 칭찬하려는 것은 아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병원에서 몽골인들은 필리핀인보다 ‘특별 요주의 대상’ 이란다. 한마디로 '국민성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진료비를 할부해도, 꼭 납부 약속을 지키는데, 몽골인들은, 돈이 있으면서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입원했더라도 병원비를 떼어먹기 위해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가족들도 계속 돈이 없다고 하다가 담당직원이 강하게 완납을 요구하자, 결국 다 지불한 경우였다. 사람사는 곳은 어느 나라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몽골가족의 헌신적인 간병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것은 과거 우리사회의 모습이었다. 병들고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은 자식의 도리이고 당연한 일로 간주되는 것이, 우리 부모세대의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 병원 입원실에는 가족들보다는 간병인이 더 많아지고 있다. 요양병원이 아닌데도 그렇다. 과거처럼 가족들이 직접 간병을 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도 잠을 잘 수 있는 온돌방이었지만, 지금은 의자를 놓아 둔 대기실 형태로 변경했다. 과거에는 수술을 끝낸 중환자 보호자가 잠을 자면서 대기하던 공간이었지만, 핸드폰이 보급되어 연락도 쉽고, 간병인을 쓰면서 잠을 자야 하는 이용자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테르비시 할머니가 입원해 있던 병실의 아래층에는 두달 전, 연필깍이 칼로 손목의 동맥을 끊는 자해를 감행했던 할머니가 입원해 있었다. 자살미수였기에 병원에서는 응급처치를 하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가족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상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노인복지나 간병의 문제를 사회가 책임지는 안전망 시스템이 부족한 사회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순번을 정해 간병을 하고, 치료비를 분담한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많은 가족들이 갈등과 고통을 겪고, 때로는 치명적인 결론으로 치닫기도 한다.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그렇게 정의했다. 질긴 인연의 애증을 말하는 표현인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병원에서 만나는 가족들 중에는 다케시 감독의 주장이, 꽤 통찰력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떤 이에게는 가족이 구원이 된다. 자신의 인생을 구하고, 가족이 있어서 힘든 시기를 견뎌낸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가족이 힘이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가족이 상처다. 가족이 아니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도, 가족이기에 많은 기대를 하게 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미워하게 된다. 그럴 때 가족은 짐이 된다.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  가족은 우리를 남몰래 아프게 한다. 드러내놓고 아파할 수도 없기에,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가장 깊고 속수무책이다. 그런 상처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가족에 대한 많은 교훈들이 있지만, 가장 맘에 들지 않는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지켜야 하는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다. 관계를 지향하는 한국인들에게는, 그 말이 갖는 무게와 당위성이 자신을 더욱 옥 죄어,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피하도록 만든다. 동굴도 필요하다. 살다보면 상처받은 몸을 누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도 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가족은 우리의 삶에 터널이었으면 좋겠다. 상처받은 짐승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는, 출구 없는 동굴이 아니라, 어두운 동굴을 지나, 빛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터널, 겨울을 끝내고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수 있는 터널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르침은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의 글이다. 그는 월간 [샘터] 에‘가족’이란 제목으로 30 년간 연재를 해왔다.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 벤쿠버에서 일주일간 알래스카를 여행하는 크루즈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이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바로 이것이다.
 가족은‘가장 인내가 요구되는 대상’이다.
‘가족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과 무조건의 용서가 요구되는 상대’다.
 우리가 가정을 통해 진심으로 배워야 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IP *.30.2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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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12:15:07 *.230.26.16
아, 오빠... 참 좋은 칼럼이에요.
무거운 내용이긴 하지만... 한편 우리 삶이 좀더 즐거울 수는 없는지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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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13:29:02 *.30.254.21
고마워...
나도 컬럼이 좀 무겁다 생각했지만, 
날씨가 밝을 때도 있고, 비올 때도 있고..그런거 아닐까 싶어.
억지로 가볍게 쓰기도 어렵고..ㅎㅎ

즐거운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게 인생인거 같아...
아..졸업여행이 기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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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2.21 16:16:22 *.236.3.241
<가족의 탄생>의 감독 김태용이 인터뷰에서,
'가족은 혈연이기에 앞서 인간관계' 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통렬한 아픔 후에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밀려 왔습니다.
가족이기에 생채기가 나도 기어이 그 자리를 지키려고 했드랬죠 ㅎㅎ
희생과 용서 전에 연약한 인간으로 맞따이 뜨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 마음의 짐이 덜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홀로 있을 때 울컥하는  형의 아픔이 이기심의 발로만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의 무게를 좀 덜 수는 있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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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2 16:12:14 *.30.254.21
고마워...

지금보니, 앞부분의 몽골 얘기,
여행얘기는 삭제해야 할 것 같아.
사족이네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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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2.23 07:31:21 *.10.44.47
오빠 칼럼을 읽으며 다시한번 지난 1년의 엄살을 반성했어요.

'가족' .. 여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굴레..라고 믿었었나봐요.
모성의 씨앗이 발아하는데 필요한 양분과 시간도 주지 않고
'너는 엄마니까 어떻게든 해봐야하는 거 아냐?'하고 몰아붙이는 사회가 참 뻔뻔하다 생각했죠.


후~
모두 저마다의 몫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모두 가여운 존재라는 것
그래도 안스러운 그를 힘껏 안아주는 것정도는 나도 할수 있더라는 것
신기하게도 그 온기가 내 슬픔마저도 녹여주더라는 것
지난 일년 모두를 통해 제게 온 고마운 가르침입니다.

요즘 오빠 칼럼, 완전 총정리버전입니다.
깔끔한 정리까지 알아서 해주시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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