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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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57 - 진정성에 관한 한 연구
진정성, 누구나 간절히 원하지만 그 실체는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단어입니다. 지금 호랑이 철학은 그 뿌리를 내릴 토양을 찾고 있습니다. 개인 마케팅도 사람의 일이라 관계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계 또한 나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금세기의 탁월한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은 “모든 사물 속에는 온전성이 감춰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햇빛아래 내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정체성을 숨기게 되지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과 역할을 분리시킵니다. 사실 온전성이란 나의 전부를 인정함으로써 활기를 얻게 해주는 생명력입니다.
온전함과 완전함은 다른 개념입니다. 온전함은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온전성은 헛된 꿈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역할과 영혼이 분리된 삶을 관찰해 보겠습니다. 윤리의 문제로 까지 확산해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온전해지기를 갈망하나 쉽게 영혼을 따로 떼어놓고 역할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분명 세상의 진실을 느끼지만 뒤따라올 고통을 예상하고 피해갑니다. 좋은 일에 씌여질 나의 재능을 억압하지요. 그리고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들기도 합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순간에도 침묵하고 방관자가 됩니다. 때로는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하여 적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영혼의 정체성을 역할에서 분리시키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1. 맡은 일에 온 힘을 다하지 않고, 그 일로 도움을 받게 될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재 능과 능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2 꼭 그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기본적인 가치를 거스르는 일을 하면 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3. 영혼을 파괴하는 상황과 관계 속에 계속 머물러 있습니다.
4. 진실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득을 얻으려고 합니다.
5. 갈등, 도전 ,변화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숨깁니다.
6. 비판받고, 따돌림 당하고, 공격 당할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감추려고 합 니다.
이런 분리됨은 개개인에게 나타나지만 그 파장은 다른 이에게로 확산됩니다. 만약 교사들이 연단과 지위 뒤에 숨어 ‘건성건성’ 가르치면 그것은 곧 학생들의 문제가 됩니다. 의사들이 자기 방어적인 과학의 외관 뒤에 숨어 환자를 의술의 대상으로만 다루면 그것은 곧 환자의 문제가 됩니다. 관리자들이 인사고과표에만 온 신경을 쓰면 그것은 곧 고용인의 문제가 되고, 정치 지도자들이 ‘갈라진 혀’로 말하면 그것은 곧 시민들의 문제가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까요? 우리의 도덕적 기준을 높임으로써 이상에 따라 칭찬하고 처벌함으로써 양심에 속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잠시동안은 고상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만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분리된 삶은 윤리 기준의 실패로 빚어진 결과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삶과 분리되어 있어서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파장을 전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인 것이 우리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로 돌아온 일은 인류사에 그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전문지식을 배우고 고급 윤리학을 배우지만 그 지식은 모두 내면의 삶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세상을 조종할 능력을 주는 “객관적인” 지식입니다. 이렇게 배운 지식으로서의 윤리학은 우리의 내면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골격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마음속에 순수하게 간직했던 꿈과 희망이 있었지요.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아이는 그 꿈을 접고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성공을 거두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자기 영혼과의 접속을 끊고 가면을 쓰고 갑옷을 입고 어른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치루는 값비싼 비용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1. 삶에서 무언가 잃어버렸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찾아 세상을 헤매고 다닙니다.
2. 자신의 진정한 모습 그대로 세상에 있지 못하는 까닭에 자신이 세상을 속일 수 있다거나 심지어 세상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3. 내면의 빛이 세상의 어둠을 비추지 못합니다.
4. 세상의 빛이 내면의 어둠을 비추지 못합니다.
5. 내면의 어둠을 다른 이들에게 투사함으로써 그들을 적으로 만들고 세상을 위험한 장소로 만듭니다.
6. 거짓과 투사 때문에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므로 고독해 집니다.
7.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한 세상에 대한 공헌이 이중성에 의해 더렵혀지고, 생명을 주는 참 자아의 에너지마저 빼앗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중문화가 이런 현상들을 추앙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마음을 내 비치지 마라.”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은 우리가 가면을 쓰고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고 건전한 삶의 방식이라고 교육받아 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 결론적으로 말해서 자기의 영혼과 역할을 일치시키는 곳으로 우리의 주의를 기울여 보자는 것입니다. 속과 다르지 않는 겉을 보여줌으로써 불안하고 심각한 세상을 바꾸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가족, 친지, 친구, 낯선 이들과 만나면서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실제 모습인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겉모습과 내면의 진실을 얼마나 일치 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위험한 세상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일치된 삶을 살아가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모순된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내면과 바깥세상을 다시 조화시킴으로서 성숙한 호랑이가 될 것인지 선택을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실천으로 가는 길은 힘이 들고 또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있기까지는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빈 수레의 요란한 소리만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진정성을 일깨우고 그 가르침을 따르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이기 때문입니다.
*** 여기에 쓴 내용은 “신뢰의 서클”을 만들어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커뮤니티 활동을 했던 파커 파머의 생각입니다. 마케팅 장면에서의 진정성에 대한 개념정리를 이렇게 자기분석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응용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아직 완성된 글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