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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3일 12시 58분 등록

막막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어디 한곳이 막힌 듯 가슴이 답답하다.

첫 출장인데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반기지도 않을 터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보기에도 어수룩한 내가 영업부로 발령을 받아 맡은 첫 소임지가 강원도.

강원도라?

복잡 하였다.

그 먼 먼 곳을 어찌 가야하나 라는 한숨과 함께 경관 좋은 곳을 많이 다닐 수 있겠구나 라는 철모로는 마음이 공존 하였다.

 

추웠다. 멀리서 불어오는 동해의 바닷바람인지 내륙의 찬바람 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삼척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불어오는 기운 탓으로 옷깃을 추켜세워야 했다. 서둘러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 들어가 먼저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000사장님이시죠. 통화 드렸었던 본사 영업담당 이승호 라고 합니다. 지금 도착 하였는데 그쪽으로 넘어갈 예정 입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의 적막 후에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나의 체온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아니, 내말이 말 같지 않아요? 오지 말라고 했는데 부득불 방문하려고 하는 저의는 뭐예요.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요. 오는 건 자유인데 방문해도 내가 없을 것이니까 그리 알아요.”

“아니, 사장님…….”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겨진 가운데 택시를 타서 목적지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더욱더 무거워진다. 태어나서 이런 문전박대는 처음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게임은 시작된 상태인걸.

 

“처음 뵙겠습니다. 이승호라고 합니다.”

넉살좋게 꾸벅 큰 절을 올렸다. 목소리를 타고 들려왔던 그녀의 생김새가 궁금하였는데 역시 예상대로였다. 우람한 몸매에다 쭉 찢어진 눈매 두툼한 입술이 분위기를 더욱 살벌하게 해주었다.

“이 사람이 진짜~ 정말 찾아왔네. 알아서 해요. 사람이 한번 이야기를 하면 말귀를 알아들어야지.”

아무 표정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서울에서 이곳까지 장장 다섯 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찾아 왔는데 아무리 반기지 않아도 그렇지. 어떻게 물 한잔 주지를 않나. 좌불안석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차 그녀의 자그마한 사업장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 하였다. 몇 평 되지 않는 사무실 이지만 제대로 정돈이 되어있지 않았다. 언제 청소를 하였는지 모르게 제품 선반위에 뽀얗게 겹겹이 쌓인 먼지 두께가 그녀의 현재 영업 형태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시계의 초침만 하릴없이 흘러가는 중 무언가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재촉하기 시작 하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밀대를 발견 하고는 일어나 양복 윗옷을 벗어젖히고 와이셔츠 소매를 접어 올린 후 바닥을 밀기 시작 하였다. 쓱싹 쓱싹.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 하였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예요. 가뜩이나 사업이 잘되질 않아 마음이 심란해 있는데…….”

한 고집 하는 나는 그녀의 말에 아랑곳없이 이번에는 먼지떨이를 찾아 먼지를 털기 시작 하였다. 선반, 서재, 창틀, 창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상념들을 털어내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한올 한올 흩어지는 게 아니라 한 뭉텅이로 쏟아지는 먼지의 양이 그동안의 그녀의 심정을 말해 주는 듯하다.

다음으로는 걸레질을 하기 시작 하였다. 차가운 물에 걸레를 빨아 책상을 닦고 제품을 닦고 거울을 닦고 그녀의 냉랭하다 못해 식어있는 마음을 닦았다. 그러다보니 싸늘한 체온의 기운은 가시고 온기가 찾아왔다. 이마에 맺혀있는 땀을 훔쳐 내었다. 집에서 하지도 않는 청소를 안면일식도 없는 이곳에서 하다니 나스스로 웃음이 나왔다. 돌발적인 이 같은 나의 무언의 행동을 곁눈질로 지켜보던 그녀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지 한마디를 내뱉는다.

“여기 앉으이소. 젊은 양반이 고집도 세네.”

특유의 경상도 어투의 한마디가 울리자 그제사 나의 마음도 조금씩 데워지기 시작 하였다. 주전자에 물을 따르며 나에게 건넨다.

“차 한잔 하이소.”

다시 침묵이 흘렀다. 목구멍으로 물 넘어가는 소리가 외부로 꿀꺽 들릴 정도가 되자 그제사 그녀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너무 매정하게 생각하지 마이소. 영업만 잘되면 본사 직원을 이리도 모질게 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소. 그리고 본사도 그렇지. 영업담당 이라고 해놓고 꾸벅 찾아와서 인사만 올리고 그후로 콧베기도 보이지 않다가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면 담당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만 하고. 이것이 벌써 3년째요.”

그러했다. 강원도 지역은 누구도 선뜻 자청해서 소임지로 맡고 싶지 않는 당시 기피 지역 1위인 곳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의 거리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관리 지역의 광대함과 무엇보다 매출 실적이 전국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본사는 할 수 없이 신입 직원들의 묵시적인 OJT 코스로써 담당을 배정하곤 했던 것이다. 평균 3개월이 되질 않아서 바뀌는 담당 이었기에, 내가 사업자라도 본사와 파트너 관계로써 일을 해나갈려는 마음이 쉽게 들지 않을 상황 이었다. 그리하였기에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라도 머리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무언가 밥값이라도 하여야 했다.

 

“내가 사장님 입장이라도 당연히 답답하실 것 같아요. 외부환경도 그리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갑의 관계이고 기대어야할 본사가 이 모양이니. (차 한 잔을 다시 들이킨다)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초면에 찾아와서 사장님 잘해 봅시다고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담당이니 사장님께 인사는 드려야 되겠고 해서 겸사겸사 찾아 온 거죠.”

한 호흡을 멈추고 말을 이어 나갔다.

“사업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사업? 10년이 넘었지. 옛날에는 브랜드도 있고 해서 잘나갔었는데…….”

“우와. 경이 대단하시네요. 그에 비해 사장님이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신입사원입니다. 덕분에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미천한 경력을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사장님께 배워야할 입장이죠. 그런데도 본사가 저에게 이곳 소임지를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노련한 경험을 가지신 사장님과 함께 그래도 젊은 열정과 패기가 있는 이십대의 제가 적절한 궁합을 이루어서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겁니다. 처음에 사장님도 이사업을 시작 하셨을 때 여러 마음이 있으셨을 겁니다. 잘될까 하는 의구심 속에서도 오늘 저처럼 매장을 청소 하셨을 것이고 전단지를 뿌리며 가두 홍보를 이어 나가는 작업 등 아침마다 출근 하시면 그 각오가 남달랐을 겁니다. 제가 할 일은 아무래도 사장님의 그때 초심을 일깨워 드리고 제가 언제까지 이곳을 담당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으로 사장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저도 열심히 할 터이니 쌓아 오신 경험을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녀의 시선이 나를 구석구석 훏고 있음이 느껴진다. 무엇을 보는 것일까. 이 인간이 말은 청산유수처럼 하는데 과연 믿을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다시 어색함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는 마지막 말을 내어 놓는다.

“날도 늦었는데 그만 가소. 어쨌든 먼 이곳까지 찾아 와주어 이렇게 청소까지 해주니 고맙소. 여관은 저쪽이 좋으니 하룻밤 잘 쉬다 가고 본사 올라가면 전화 한번 주이소.”

 

점포 문을 나오니 하늘은 어느새 어수룩한 저녁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와이셔츠가 땀으로 젖은 상태에서 긴장이 풀렸는지 그제야 허기진 배가 애꿎은 주인을 찾는다. 처음보다는 그녀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듯하여 안심이 되지만, 아무래도 내일 아침 일찍 문을 열 기전 기다리고 있다가 인사라도 드리고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시큼한 바닷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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