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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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살아가는 법
지난 번에 살던 집은 아파트였다. 엔지와 그곳에 살며 매일 산책을 했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일은 나와 방울이에게 하루 최대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떠날 시간이다. 엔지는 이사 짐을 옮기는 사람들에게 쫏겨났다. 개들 때문에 일이 안 된다고 개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라고 했다. 엔지는 자기가 아주 좋아했던 집을 한 번 둘러보지도 못 하고 집을 나와야 했다. 보물단지나 되는 양 양쪽에 나와 방울이를 끼고 내려와 차에 앉았다. 엔지는 시동을 걸지 못하고 내내 집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아쉬워하는 것인지 느껴 보고 싶었다. 앞발을 창문 틀에 올리고 사람처럼 뒷다리로 서서 엔지가 올려다 보는 곳을 쳐다 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 동네 나무 밑둥지마다 내 흔적의 냄새가 있다. 이처럼 엔지도 자기의 냄새가 배어 있는 그곳을 떠나기 어려웠나 보다. 엔지는 입술을 앙 물고 큰 호흡을 한 번 내 쉬더니 시동이 걸렸다. 부르릉~ 천천히 내가 산책을 하던 그곳이 멀어졌다.
시동이 꺼진 장소는 동물 분뇨가 섞인 흙 냄새가 훅 끼치는 곳이었다. 엔지가 차에서 우리를 내려 놓았다. 목줄도 없이 말이다. 늘 목줄을 해야 밖의 세상을 구경 할 수 있었다. 구속이라 생각했던 목줄을 싫어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목줄을 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줄은 세상과의 소통의 연결을 해주는 자유의 끈 같았다. 그런데 이 곳은 어떤 세상이길래 그냥 우리를 풀어 놓았다. 목줄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했다. 잡아 당기면 목이 조여 가던 길을 되돌아 와야 했다. 아니면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면 땅에 앉아 저항하기도 했다. 사람들과의 신경전과 적당한 스트레스를 즐기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이 풀어 놓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까지 가야 할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자유는 구속이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이었다.
엔지는 아까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아~ 난 콧구멍으로 흙 냄새가 들어오는 것이 너무 좋아 애들아~” 하며 심호흡을 크게 한다. 그리고는 호미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엔지는 나하고 똑같다. 나도 바닥에 코를 끌며 맡는 흙 냄새가 좋고 앞발 두 개로 땅을 파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개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며 삶의 진정한 기쁨을 누리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있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들판은 이어가는 벼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저녁 무렵에는 나무나 벼의 향기가 선명해진다. 그래서 저녁 무렵에는 내 콧구멍 속은 산들바람이 이는 것처럼 간지럽다. 익어가는 벼의 향기는 두텁고 포근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 냄새는 오래고 친숙했다. 나에게는 이제 친숙해져야 할 냄새라고 느껴졌다.
내 발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발바닥에 새까만 굳은 살이 박여 있었다. 그 굳은살 속에는 내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 굳은살은 땅을 딛고 달릴 만큼의 단단했고 충격을 버틸 만큼 폭신했다.

근데..언니.
내가 언니를 알면 알수록 궁금해지는 게 있어요.
언제부터 언니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을까요?
그들은 왜? 언니에게 스스로 충성을 맹세하는 걸까요?
오리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겐 마냥 신기해보이는, 때론 이상해보이기까지하는
특별한 관계론이 있다는 게 저의 추측입니다.
언니가 스스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인도여행 전후의
관계들을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구요.
남들은 친부모님과 소통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게 보통인데
'양'부모님들까지 모시며 살 수 있는데는 분명히 뭔가 있는게 틀림없어요.
그걸 풀어주심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