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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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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9일 09시 21분 등록

 

이슬이 오고
메뚜기가 앉아있고
개구리가 뱀이 아이들이 나왔다
내가 보이고 성난 아버지와 무덤  조상들이 보였다
그렇게 막막한 세월이 선명해지자
풀을 베어 소에게 먹였다
그리고 때가 되어
도축장으로 향하는 소의 눈망울에 이슬이 맺혔다
길다란 울음이었다

(
조인선, '')

 

마지막. 도축장으로 향하던 소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자명한 것이라 생각해온 하루가 끝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 힘겨운 몸살증세였을 것이다. 근육통에 구내염이 겹쳐 입맛이 떨어졌을 테고 발에는 물집이 잡혀 제대로 걷지 못했다. 며칠 까라져 있으면 낫겠지 싶었는데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서 피를 뽑아 갔다. 아침에 몸을 일으켜 보니 여물통에, 못 보던 싱싱한 풀이 재워져 있었다. 먹지 않았다. 제사상 같았다. 주인 양반은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낯선 사람들에게 나를 넘겼다. 황망할 때가. 이건 그냥 감기라고. 주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코뚜레에 꿴 줄에 이끌려 트럭에 실렸다. 신작로 저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물체. 트럭기사는 맹렬한 기세에 눌려 갓길로 핸들을 돌렸다. 엔진소리가 코 앞에 다가왔다. 비좁은 신작로를 온통 차지한 채 다가오는 물체. 트랙터를 닮은 도살기계다. 기계 양 축에 달린 톱니바퀴가 순식간에 트럭을 산산조각 내고 간신히 버티고 선 발을 싹둑 잘라갔다. 사지에 이어 몸통이 살코기로 휘휘 저며져 나가는데 놀란 눈은 그 광경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조리개가 닫힐 만도 하건만 온 몸이 분해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나는 소입니까?  음메음메.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나오는 것은 목마른 울음소리다. 이건 꿈이다.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쟎나. 꿈이 아니면? 그럴 리 없어. 발가락에 힘을 줬다. 엄지발가락이 꼼지락거린다. 눈을 뜨는 거야. 하나. . .

어디 아프니?”

안쓰럽게 나를 내려다보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비스듬히 다리 부위를 비췄다.

몇 시에요?”

세수하고 아침 챙기면 교대시간이네.”

 

신문기사에 소개된 시 한 편이 고스란히 악몽이 되었다.

 

옷깃에 얼굴을 파묻고 가파른 언덕길을 종종걸음으로 내려가는 출근객들. 하루가 시작되었다. 집을 떠나 생활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그들. 다들 밥벌이의 지겨움을 얘기하지만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보고 싶다. 이 좁은 공간에서 하루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쇼윈도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차단해 주었다. 나는 냉동 건조된 오징어처럼 안온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늙어가면 그만이었다. 육체의 종말이 낯설지 않도록 이 곳을 영혼의 묘지로 차곡차곡 조성해 왔다. 밀봉 작업이 끝나갈 무렵 미풍이 불어왔다. 바람은 허약한 심장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었다. 이유 없이 얼굴이 달아오르고 불면증이 찾아왔다. 어떤 날은 한없이 꺼졌다가 거울에 비친 존재의 가벼움에 울었다. 밤에는 허연 대낮의 거리를 거닐었고 낮에는 적막의 집에 칩거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담 너머의 풍경이 언뜻언뜻 스쳤다. 좋아 보였다. 까치발을 했다. 풍경 한 켠에 그녀가 있었다. 빼곰히 얼굴을 내밀고 있으려니 그녀가 뜰에 심어진 나무에서 감을 따서 건넨다.

감 드세요.”

그녀가 내 얼굴에 두 손을 바싹 들이대고 좌우로 교차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늘 그리 멍해요?”

계산대 위에 홍시가 담긴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헤헤감사합니다. 출근하세요? ”

감을 살 필요는 없고, 저녁 때 잠깐 보실래요.”

그러죠.”

요 밑 커피숍에서 7 봬요.”

용건을 마친 그녀는 그새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김군에게 가게를 맡기고 서둘러 커피숍으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해 밖이 잘 보이는 1층 통창 자리를 잡았다. 앉은 자리에서 보면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거기서 그녀가 내릴 것이다. 버스를 셌다. 하나, , 기다림을 더 즐기게 그녀가 조금 늦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녀가 긴 다리를 드러내며 버스에서 내렸다. 커피숍을 향해 또각또각 걸음을 옮겼다.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넘기다가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손을 들어 답례를 할 찰나 패딩 점퍼를 입은 장정 두 명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 받는가 싶더니 막무가내로 팔짱을 끼고 오던 길로 그녀를 끌고 갔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잠깐 뒤돌아 보고는 순순히 그들을 따라 걸었다. 목에서 벌건 기운이 솟아 올랐다.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사내 두 명이 그녀를 도로가에 세워둔 검은색 SUV에 태우고 있었다. 냅다 달려가 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녀석이 쓰러지고 그녀의 왼편에 앉은 사내가 당황해 하는 사이 그녀를 끌어냈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정류장 쪽으로 몸을 트는데 '퍽'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뻐근해졌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땅이 하늘로 솟았다.

 

봉남, 김봉남, 봉남아.”

누군가 손가락으로 양 볼을 잡고 흔드는 통에 정신을 차렸다. 얼굴을 들었다. 눈이 부셔 오른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서서히 주변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이 없는 어두운 방에 백열전구 하나가 책상과 그 앞에 앉은 나를 비췄다. 책상 건너편에는 정류장에서 봤던 사내가 멍든 왼쪽 볼을 날계란으로 어루만지며 나를 꼬나보고 있었다. 거만한 미소를 띄우며 호기심에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김봉남씨 맞죠?”

.”

왜 그랬습니까?”

?”

왜 공무집행을 방해했냐구요?”

전 그저 그녀를…”

이분례를 아나요?”

동네 이웃입니다. 알고 지내는.”

알고 지내는 사이다그럼 걔가 밀수업자라는 것도 알고 있겠네. 그죠?”

밀수라뇨. 금시초문인데요.”

그건 차차 조사하면 나올테고. 당신 참 흥미로운 사람이더군. 당신 나폴레옹이라며?”

…....”

유럽의회에 난입해서 내가 나폴레옹이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그랬다가 정신병원에서 10년을 썩었다며.”

지난 일입니다.”

봉남이 형, 아니 레옹이 형. 사회에 더 이상 물의 일으키지 말고 쥐 죽은 듯 살아. 제 분수를 알아야지. 세계정복일랑 걷어 치우고 구멍가게나 잘 꾸리슈. 당신 보살피다가 반백이 된 어머니도 생각해야지.”

분례씨는 어떻게 되나요?”

분례씨라... 둘이 사귀어? 마음이 아프겠군. 걔는 당분간 사회에 나오기 어려울 거야. 요즘 것들은 참 맹랑하단 말이야. 갓 스물을 넘긴 얘가 어떻게 그런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냈지.”

저는 나가봐도 되나요?”

어딜. 이분례와 친분관계가 확인됐으니 당신도 며칠 조사를 받아야 해.”

 

날계란의 말과는 달리 나는 유치장에 갇힌 지 하루 만에 훈방되었다. 별다른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고 생계형 가장이라는 어머니의 읍소가 통한 덕분이었다. 풀려나고 그녀를 찾았지만 조사 중이라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가 거기 없을 것을 알면서 날마다 쇼윈도 밖을 응시했다. TV에서는 봄소식이 들려왔다. 불과 며칠 사이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오가던 공간은 시나브로 행인들의 동선으로 메워졌다. 그녀의 자취라고는 머릿속 몇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꿈인 듯 아닌 듯 봄이 그렇게 왔다.
IP *.201.237.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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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9 10:46:59 *.10.44.47
오빠!
진짜 재밌어요!! 완전!!   ^^
계속 기대할께요!!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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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3.20 08:58:35 *.34.224.87
스토리와 갈등관계의 힘이 이런건가?
허당이 남도의 꼬막을 후다닥 발라먹듯
몰입되고 재미있어...
 
나를 포함하여, 유끼들 모두 낑낑대는데
상현이 뒷심 끝내준다.  이거, 이거..아주 좋아.. 화이팅이다..
계속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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