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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9일 16시 47분 등록
그리고 그가 나이기를 원했기에.JPG


어제와 똑같이 오늘도 하나의 모습이 잠자리에 든다. 일상의 하루를 접고 마감을 하는 이 시간. 고민과 상념이 있음에도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보드라운 요에 발을 적시노라면 하늘거리는 느낌이 벌써 꿈나라의 문턱에 들게 한다. 아픔도 없고 누구를 위한 원망도 없다. 생각에 젖어 밤을 설친 적도 없다. 그렇다고 숙면을 취하는 편은 아니지만 잠자리에 드는 이 공간만큼은 한없는 자유감에 빠지게 한다. 오늘 일을 마쳤다는 것에서 무사히 끝냈다는 것에서 눈꺼풀이 그냥 잠긴다는 것에서 내일 다시 생각하자는 의미에서가 아닌 지금 만큼은 나는 자유로운 한 마리의 새가 된다. 어느새 눈은 천근만근이다.

 

나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모습은 온전한 그대로의 형태인데 주위의 환경이 심상치 않다. 모든 것이 여유로워 보이고 젖어들게 하는 모습.

성당에 오롯이 혼자 앉아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느낌.

고요한 정적의 느낌.

아무도 없다. 번뇌도 없다. 오직 고요한 시간만이 정지한 느낌.

바쁠 것도 없다. 재촉할 필요도 없다. 무언가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이대로 이 상황대로 주어진 대로 즐기고 편안하게 있고 싶다. 누군가 무어라할 이유도 없다. 여기에 그냥 누워 있다. 세상을 즐기고 있다. 푸르른 바다에 두둥실 요트에 몸을 실어 내가 가고 싶은 대로 한없는 망망대해로 그냥 파도에 몸을 싣고 한량없이 떠있다. 아마도 에게 해 크루즈 수영장의 물살에 몸을 맡기고 망중한에 취했을 때가 이런 느낌 이었으리라.

세상 한가운데 선 느낌.

변방에 서있던 나 자신이었다.

귀퉁이와 모서리의 주위에서만 돌던 주변인이 드디어 중심에 뛰어 들었다.

한가운데다. 얼마나 열망하던 자리였던가.

비주류인 세력이 주류 세력에 편입이 되었으니.

그렇다. 나는 한가운데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다.

병신같이 주위에 어슬렁거리던 입장에서 탈피하여 핵심 세력으로 우뚝 서고 싶었다.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싶었다. 박수를 받고 싶었다. 삶의 작품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이루고자 하는 걸어가고 있는 이 길에 대한 지지와 격려 그리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싶었다.

이순간은 나의 시간이다. 온전한 내가 주인공이다. 세상 한가운데 내가 존재한다는 세상 중심에 내가 서있다는 이 순간만큼은 내가 챔피언이다.

그렇다. 언제나 양보하고 언제나 괜찮다 하고 언제나 자기주장 못하던 나의 속마음은 링위의 챔피언으로 우뚝 서서 세상을 호령하고 나를 깔보던 나를 손가락질 하던 나를 보고 비아냥거리던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라고 자조를 던지던 그들 모두에게 복수의 칼날을 제대로 펼쳐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이다.

 

이불속에 빠진 느낌.

평화의 느낌.

고요한 정적의 느낌.

세상의 중심에 선 느낌.

사람은 순간순간 느낌 하나로 살아간다. 그 느낌 하나를 잡고 이 순간을 즐기며 몰입하며 성과를 내며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며 차 한 잔을 마시며 몽상에 잠기며 활동을 하며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 느낌 하나가 이 순간을 버티게 하고 목메게 하고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 느낌 하나가 세상 한가운데에서 버려진 이방인의 모습을 가지게도 한다.

현실은 변하지 않으므로 네가 생각을 고쳐먹어야지 하는 쥐뿔 섞인 소리는 하지 마라.

네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네 책임이라는 이야기는 던져 버려라.

순간에 취하고 순간에 살아가고 순간에 현실인 지금 새벽 시간에 쓰는 글에 대한 평가도 집어 치웠으면 좋겠다.

글이 좋냐 나쁘냐를 떠나 지금 순간 쓰고 있다는 자체를 향유 하였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페르소나의 가면을 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 한잔을 들이키며 글을 접는다.

열심히 썼다는 오늘도 한편의 초안을 그려 갔다는 그 자족감 하나로 오늘을 버틴다. 아니 버틴다는 표현 보다는 지금을 산다. 천진한 아이의 마음으로.

그러다 비수 같은 피드백 하나로 인해 온종일 하루를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되고 싶다는 그렇게 살고 싶다는 그렇게 취하고 싶다는 그렇게 빠지고 싶다는 나의 속마음을 외부로 드러내는 그림 이었기에.

그리고 그가 나이기를 원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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