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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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62 - 에잍, 호랑이 철학 8
“듣는 사람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말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 그것이 철학이다.” - 볼테르
떠나가는 배로 시작했다가... 시시하다고 해서 다시 쓰는 호랑이 철학이 이제 에잍, 호랑이 철학 팔(8)이 되었다. 호랑이 철학과 전면전을 벌린 탓에 떡 벌린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심정으로 지난 몇 달을 살았다. 이제 기가 쇠하여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 같다. 그만 목이 댕겅 잘리던지, 전략을 바꾸던지 드디어 죽음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철학자 김용규 선생이 말해주었다. “옛날 아주 먼 나라에 꽃을 아주 좋아하는 임금이 있었다. 임금은 궁궐 안에 많은 화단을 만들고 수천가지 진귀한 꽃들을 구해 심었다. 매일 물을 주고 정성껏 가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임금이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임금은 꽃들이 무척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신하들 가운데 가장 충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골라 각각의 꽃들에게 물을 주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방법들을 일일이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물을 주고 자식처럼 잘 돌보라고 명령하고 여행을 떠났다. 충직한 신하는 임금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꽃들에게 물을 주고 갖은 정성으로 돌보았다. 그런데 이 나라에 우기가 되어 날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충직한 신하는 매일같이 화단에 나가 비를 맞으며 정성껏 물을 주었다. 어느 날 마침내 임금이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 임금은 화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귀한 꽃들이 모두 뿌리가 썩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금은 크게 노하여 그 신하를 엄하게 벌하고 궁에서 내쫓았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사람들이 어떤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을 과학이라고 한다. 자연과학적 지식, 사회과학적 지식은 그런 연구의 결과들이 쌓인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그 지식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죽는다는 현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과학이다. 그러나 그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내는 것은 철학이다. 그래서 철학은 지혜를 탐구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과학지식의 진보로 얻은 물질적 풍요는 분명 우리를 더 잘살게 해주었지만 먹이와 황금에 시간과 정력을 다 바쳐서 얻는 결과는 황폐해진 인간관계와 지독한 외로움뿐이다. 정보 기술과 생명공학의 진보는 보다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간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되지만 문명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우고.... 지구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의 이 진화한 호랑이에게는 어떤 길이 남아 있는 것인가? 철학의 범위를 너무 크게 펼쳐놓으니... 갑자기 햇볕이 드는 통나무가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대답이 나오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알렉산더 대왕에게도 무덤에서 더 주무시고 계시라고 부탁을 드려본다. 이제 시장에서 한판 걸지게 활약했던 철학자를 불러와야 겠다. 과연 누가 있을까? 연암 박지원? 장님이 길을 가다 갑자기 눈을 떴다. 그러자 그는 자기 집을 찾을 수가 없어서 길에서 엉엉 운다. 길 가던 사람이 까닭을 묻고는, 도로 눈을 감으면 찾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래 호랑이의 본분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다. 그래 , 그럼 고기를 잡으러 시장으로 가야지. 호랑이 마케팅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웬만한 전략은 모두 예측이 가능하다. 적이 예측할 수 없는 전략을 짜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략을 구성하는 전술 과정 속에 모험적인 요소들을 끼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적은 이따금 판단이 혼란스러워지면서 이쪽의 전략을 해석할 수도, 전략의 바탕이 되는 논리를 발견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면 상대는 끝내 이쪽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철학 에잍, 8 을 마친다. 에잇, 꽃밭에 물주러 가야겠다.
그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했다. 이 신하는 수천가지 다른 종류의 꽃들에게 물을 주는 까다로운 방법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화단으로 나가 그 방법에 따라 물을 주었다. 지식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행하는 행위가 지닌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도 화단에 물을 주었던 것이다. 지혜가 없었던 것이다.
호랑이 철학은 일인 기업가로서 마치, 드넓은 초원에 홀로 선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이 세상에 어떻게 자기를 알리고 먹이를 구해 몸을 지탱하는 지, 그 방법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보다 한발 앞서 세상으로 나아간 선배 호랑이들의 삶을 보니 그 면면이 시시하기 짝이 없다. 이 새 호랑이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고기 맛만 보고 그깟 고기 한점 때문에 고귀한 호랑이의 삶을 마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호랑이가 진화했다. 아니다. 지식이 진보했을 뿐이다.

깊고 실체가 보이지 않는 철학을 맡으셔서 넘 고생이 심하신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이번에 호랑이 실험을 직접 행해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 몇가지가 있어 적어보겠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과연 철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부족한 제 생각으로는 판단이 되질 않습니다.
샘의 깊은 사유의 세계에 판단을 맡기고, 몇가지 말씀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여쭙니다..
1. 호랑이 철학은 나를 알아가는 철학이다.
무슨 의미인가하면, 실험을 하는데, 제가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제 세상과 시장에서 바라보는 저는 많은 차이가 있겠구나..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늘 제 안의 세계에서 꿈꾸는 것과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는것에는 분명 괴리감이 존재한다는거죠.
그러므로, 저희 호랑이 프로젝트의 철학은 우선 "너 자신의 현재를 깨우치자.." 머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너의 미래를 좀 더 명확히 그려가자
철학이란것이 어쩌면 인간들에게 세상을 회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찾는거이라 한다면, 저희 호랑이 철학에선 그것을 미래에의 내 세계를 보다 명확히 그려보는 것으로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의 나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그 현실선상에서 보다 나에 가까운 (그러니까, 모두가 호랑이 세계를 꿈꿀 필요없이, 표범이 맞으면 표범으로 실현가능한 꿈을 꾸며) 미래를 꿈꾸고 다가가도록 노력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3. 작가에게 삶이 글이라면, 1인 기업가에겐 삶이 비즈니스가 되는것일까..?
김용규 선생님 인터뷰 글을 보며 힌트를 얻었습니다.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그려보았다면, 이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기 위해
매일의 삶이 곧 비즈니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1인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꿈을 현실과 연결하고자 하기에
단순히 수익성이나 매출액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 비전 혹은 이상을 매일 추구하며 현실로 불러들이는 것.
그것이 저희들의 철학이 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결국 저희들의 <네이밍= 우리들의 철학 혹은 이상을 담고 있고=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삶.
바로 1인기업가들의 철학이자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호랑이 프로젝트의 철학을 만들고 표현하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선생님이시기에 가능할거라 믿고 있습니다. 혹여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될까 써보았지만
혼란만 더 드린건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일본 잘 다녀오세요^^

범이 되고나서도 어흥~ 하고 눈 부릅뜨지 못하고....
강아지마냥...맨날 깨갱깨갱 엄살부리면서 살고있단다. ㅋㅋ
요즈음은 뭔가 글을 뒤집어 써보는 방법이 없을까....별짓별짓 다해보는데....
애니메이션이 젤 재밌는것 같다. 시간이 좀 모자랄 뿐이네.
네가 말해준 건 1. 어디에 서있는가(좌표)
2.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우표)
3. 시장은 어디에 (좌충우돌)
이렇게 요약하면 되는거니? 코멘트 고맙다.
다녀와서 김용규 선생님 사례를 표범론에 구체적으로 대입해보면 좋을 것 같으네.
그럼 모임 잘하고 크레피오가 사주는 밥 잘먹고... 힘내고 있어......경주갈 때 만나서 얘기 더 나누자..

철학은 잘 모르겠는데, 좌샘의 글은 늘 재미납니다. 마치 20대 초반의 청년이 쓰는 글처럼 느껴집니다.
내용에는 비록 깊은 지식과 사유의 고뇌가 담겨 있지만 그 뉘앙스는 거냥 툭툭 던지는 20대 청년인게죠...
그게 참 좋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도 거냥 툭툭 던집니다. 용서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호랑이 철학은 그저 단순합니다.
직장 생활 15년 넘게 하면서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세상이 나를 알아 주지 않는구나'라고 한탄하는 것은 부질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내가 세상을 버려도, 세상이 나를 버리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조직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긴 단련의 시절을 거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농업혁명의 시대를 지나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개인에게 직접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산업화 시대만 하더라도 개인이 그 변화를 느낄 때까지는 엄청난 시간의 간격이 있었는데, 지금은 개인이 더 빠르게 느낍니다.
그래서 호랑이와 같은 존재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거대한 페러다임과 밈의 변화가 호랑이 철학의 배경이 된다고 봅니다.
농업 사회에 없던 기업이 산업 사회에서는 주축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런 기업이라는 존재에게도 철학이 필요한 것처럼 앞으로 미래의 주축이 될 1인 창조기업 호랑이에게도 철학이 필요할 것입니다.
호랑이는 여러가지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청년 실업의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어떤 경제평론가라는 사람이 TV에 나와서 마치 강남좌파인양 대기업이 장사가 잘되서 돈 많이 벌면 그 때만이라도 젊은 사람들에 대한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풍선의 오른 쪽이 너무 뚱뚱하다고 거기를 손을 눌러서 가라앉히려고 하는 그야말로 '대증적 처방'일 뿐입니다. 근본원인, 사회의 거대한 구조적 변화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호랑이'의 융성과 진화일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고령화에 대한 해결책을 줄 수 있습니다. 고령화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함정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 고령화는 젊은 사람의 부양 없이 살기 힘든 소위 '뒷방 늙은이'라는 개념이 큽니다. 하지만 미래의 고령화는 다릅니다. 신체 나이는 40대이고 경제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에도 주민증 나이가 60-70인 '늙은 청장년'이라는 개념이 더 커질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 국민연금은 대안이 아닙니다. 이들이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가 중요합니다. 호랑이는 거기에도 한 몫을 합니다.
또 인간의 삶, 기호, 소비 등의 다양화, 다원화라는 거대한 변화도 호랑이로 대응가능합니다. 과거 인구통계학적으로 유사한 집단을 대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마케팅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미래에는 어쩌면 개인 한명 한명을 대상으로 세상에 유일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거기에 맞는 마케팅을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소비의 personalizing에 대비하는 방법에 여러가지 있지만 공급의 personalizing, 즉 '소수에게 맞추는 1인 기업' 도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부님이 언급하셨듯이 향후 10년 후에 1인 기업은 대세가 될 것이라는 말은 매우 통찰력있는 지적입니다. 호랑이가 왜 탄생하 수 밖에 없었고, 어떻게 진화해 나가겠는가.... 그 역사적 배경과 배경의 근저에 흐르는 철학의 변화... 이런 것이 '호랑이 철학'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쓰다보니 '제 생각은 단순합니다.'라는 명제가 참이 아닌 것 같네요...
내용은 단순한데 표현이 복잡할 뿐이라는 변명을 늘어 놓으며... 그만 물러갑니다.
조심해서 일본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