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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7일 14시 27분 등록

저 사람이 이소라 맞아?

오랜만에 TV 브라운관을 통해 만난 그녀는 내가 예전에 보아왔던 모습이 아니었다.

약간은 익숙한 볼륨 넘치는 몸매를 생각 했었는데 훨씬 더 날씬해진 모습 속에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가수라는 호칭에 어울리지 않게 개인적으로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써만 만났었던 그녀였기에 노래로써 마주친다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신선해 보였다.

솔직히 나는 그녀의 노래에 대해 모른다. 그러했기에 모방송국의 서바이얼 프로그램으로써 대면하게 된 그녀에게서 어떤 노래가 나오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입장을 하여 무대 중간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녀에게서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외부로 확연히 드러나는 떨리는 얼굴의 근육과 표정이 공연이 시작되기 전 비장감마저 느껴지게 만들었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들과 스타트 라인에 서서 출발 총성을 기다리는 스프린터의 모습이 이와 같을까.

뭐지. 무엇이 그녀를 저토록 긴장하게 만드는 것일까.

내면을 갈무리 하는 자신만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일까. 아니면 가사를 음미하고 있는 걸까.

 

피아노 건반이 눌러지자 한 갈래의 심호흡과 함께 첫 소절이 세상에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바람이 분다’ 라는 곡목의 노래.

밑바닥에서부터의 묵직한 소리가 조용히 터져 나오자 자그마한 떨림이 시작 되었다. 조금씩 나의 시간의 삶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가락을 타고 울리는 그녀의 노래는 남다른 것 같다. 무언가 달라 보였다.

어찌 보면 인상을 쓰면서 부르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 안쓰럽기까지 하였지만 노래에서 만큼은 자신만의 깊음과 내공이 건져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턱하니 내 마음의 한구석을 들이 밀었다.

뭐지. 이게 뭘까.

그동안 살아온 만큼 많은 노래를 들어 왔었지만 이를 통하여 이런 감정이 들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게 하는 것이었다.

언제였었지. 그랬다. 그때도 이러 하였었다.

소년의 티를 갓 넘어선 대학교 입학식 오리엔테이션. 반주가 시작되자 노천강당을 가득 메운 모든 학우들이 일제히 일어나 손을 잡고 노래 하나를 합창하기 시작 하였다. 뭐지. 이게 무슨 노래야.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지만 세상에 이런 노래도 있구나 라는 전율이 온몸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양희은님의 ‘아침 이슬’ 이라는 노래였다. 청아하고 흡인력 있는 목소리와 함께 긴밤 지새우고로 시작되는 가사가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과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함께 라는 명제와 희망을 상징하는 표징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게 하였다. 노래 하나가 남남인 사람들을 이렇게 하나로 만들 수도 있는 거구나 라는걸 처음 느끼게 하는 순간 이었다.

 

그녀의 노래도 그러했다. 호기심이 동해 보게 된 프로그램 이었지만 가사가 이어지는 동안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 밑바닥에서 뽑아 올리는 노래에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랬다. 내가 그녀에게 이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노래의 말과 감정에 전심으로 몰입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연극배우나 탤런트 분들이 대본을 받고 자신에게 역이 주어질 때 철저히 맡은 배역에 대해 분석하고 동화가 되려고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가수도 그렇게까지 하는 줄을 몰랐었다.

프로로써 불리는 가수는 곡이 주어지면 그 가사의 의미와 행간을 충분히 해석하려고 한다고 한다.

어떤 기분과 느낌으로 흐름을 타야 할지를 판단 한다고 한다.

비련의 여인이나 희망의 메신저로 혹은 첫사랑에 가슴 뛰는 설렘으로 그들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주인공이 된다.

배우가 온몸으로 연기를 한다면 가수는 목소리로써 연기를 한다. 밝게 슬프게 조용히 묵직하게 자신의 악기인 성대와 얼굴표정과 무언의 바디랭귀지로써 연기를 한다.

묵묵히 갈고 닦고 연습해온 과정을 주어진 단3분여의 짧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연주하여 대중의 호흡과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한다.

그녀는 그러하였다.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그녀의 늪에 점점 더 빠져 들어갔다. 뭐지 이게 뭘까.

메말랐던 서러움이 치밀어 오른다. 가슴에 무언가 응어리졌던 것이 터져 나온다.

아! 이 사람은 프로구나 라는 느낌이 절로 들게 만든다. 그녀의 말대로 노래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경험케 해주고 있었다.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는 가사 말에서는 내 꺼진 바닥에도 바람 한 점을 불어오게 하였다.

그녀에게로 시작된 바람은 내 가슴을 흔들고 내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눈물이 흐른다의 마지막 가사의 여운구가 나오자 내 마음의 눈물샘은 터져 나왔다.

가사 하나 하나를 읊조리면서 그것과 일치가 되는 그녀.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노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잡아당길 수 있는 것이구나.

그녀의 바다에 뛰어든 여정은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감정에 흡입된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형식적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는 박수.

하나의 작품이 끝나고 나자 그제야 그녀는 내질렀던 숨을 고른 후 본연의 표정과 모습으로 돌아왔다.

 

깨달음 이었다.

노래는 이런 거구나 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나의 글을 돌아보았다.

내 글에는 이성만 있고 감성은 없지 않는지. 쭉쟁이만 있고 알맹이는 없지 않는지. 글을 통해 세상과 대화 하려는 나 자신의 기대치가 한량없이 부끄러워졌다.

글에도 감정이 담겨야 한다는 논리를 깨우쳐준 그녀의 공연은 오래 오래 메아리친다.

나의 글을 통해 사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지지해 줄려는 나의 편협한 생각은 바닥을 친다. 이게 글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노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울려 주듯이 내가 하는 강의와 코칭과 써내려 가는 글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글에 나의 강의에 나의 코칭에 내가 먼저 빠져야 한다. 그 빠짐의 공간에 사람들이 초대되어 만찬을 즐기고 디저트를 맛보아야 한다. 와인 한잔을 마시면서 여유로움과 담소도 있어야 한다. 배부름과 넉넉함과 향긋한 레몬 홍차의 향기가 배어 나와야 한다.

 

다시 한 번 자문해 본다.

나는 강사인가? 어떤 강사인가.

나는 글 쓰는 사람인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가.

나는 코치인가? 어떤 코치인가.

 

세상을 울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북이 되어 그 두드림의 연주를 시작해야 한다.

둥둥둥 내가 치는 북소리가 올곧게 터져 나올 때에야 세상이 나를 향해 귀를 기울인다.

연주의 가락을 탈 때 그것과 내가 하나가 되고 일치가 되어야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몰려든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하나이다.

내가 거기에 몰입을 하고 침잠해 감정의 바다에 감정의 바닥에 감정의 느낌에 물결져올 때 나의 노래는 그의 노래가 되고 대중의 노래가 된다.

 

가수 이소라.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인간 이소라가 아닌 가수라는 타이틀의 이소라에게.

그리고 꽃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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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08:43:39 *.190.114.131
음,,,,,,,,,,,,,,,,,,,,,,,,,,,,,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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