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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3일 16시 47분 등록

사람의 관계란 것은 그런 것 같다. 다가 설려는 노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만남의 끈이 형성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관심과 애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결이 좀체 되질 않는 그런 경우. 그녀는 후자의 경우였다.

 

딩동댕.

“여보세요.”

“201호죠.

“네.”

“택배 찾아 가세요.”

배달 될 것이 없는데 무슨 택배람? 경비실에서 박스 하나를 찾아와서 열어 보니 안에는 정성어린 선물이 가득 하였다. 누구지? 아! 그녀가 보낸 거구나. 제주도에서의 행사날 늦게까지 시간을 할애하며 대화를 나눈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아마도 나에게 마음의 선물을 보낸 것 같다. 따뜻한 사람의 정이 묻어오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영업부 매니저 시절에 만난 그녀는 관할 지사의 직원으로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다가 얼마 후 사업자로 탈바꿈 하였다. 선한 인상에 하얀 피부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 그런 그녀를 제주도에서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웠다. 다음날 행사가 남아 있음에도 새벽녘까지 살아가는 이야기의 안주를 벗 삼아 소주를 기울인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 이었다.

 

선물을 받고나니 부담이 느껴져 무언가 식사 한 끼라도 대접을 해야 할 터였다. 나의 인지상정으로는 그것이 당연한 논리였기에. 그런데 일상사의 현실로 복귀한 다음날부터 연락이 되질 않았다.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인데 전화를 하여도 받지를 않는 거지. 답답한 마음에 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그럼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오해 아닌 오해가 생기기 시작 하였다. 참 웃기는 사람이네. 스스로가 마음을 열고 접근할 때는 언제고 막상 내가 그에게 다가서려고 하니까 문을 닫는 건 뭐람. 그렇게 해가 바뀌었다.

 

그녀가 사업 운영과정에서 여러 문제에 의한 커다란 상처들을 받고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한다는 이야기를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대인 기피증을 겪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큰 데미지를 입을 수 있는 상황 이었다. 그러자 나의 오지랖 넓은 직업병이 또 발동을 하였다. 어떡하든 그녀를 만나 혹시라도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렵게 통화가 연결이 되어 미팅 일자를 잡았으나 그녀는 다음과 같은 SMS들만 날리고 몇 번이나 약속을 펑크 내었다. 일부러 나를 피하는 건가라는 짜증 아닌 짜증도 일어났다.

 

‘통화 대신 문자로……. 이번 주엔 일들이 좀있어 힘들 것 같고요. 자주 문자할게요.’

‘아~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요. 친정 엄마가 올라 오셨다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해야 해서 지금 병원에 와있어요. 와인 챙겨 났는디. 우리 만남은 설 지나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절대 핑계 아님. 매번 신 없는 사람 되는군요. 이해해 주시고 문자 주셔요.’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전화 하겠습니다.’

‘늘 핑계 같지만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검사 받고 치료받는 일정이 이번 주에다 잡혀 있네요. 의욕상실……. 정말 미안하구요. 통화 가능할 때 연락드릴게요.’

‘아이고. 문자 이제 봤어요. 지금 시골 가는 중이니 날짜는 보고 꼭 연락할게요.’

‘물리치료 중입니다.’

‘정말 미안해요. 부장님. 다음에 뵈면 아니 되올지…….’

‘못내 붙들고 있는 소인입니다. 늘 마음과는 다른 현실이 (물론 그 현실도 내 자신이 만든 거지만) ……. 쩝~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무슨 이런 사람이 다있나? 이렇게 관심을 보이고 나름 노력을 나타내면 사람 성의가 있지 어찌 이리 매번 퇴짜를 놓는가. 그러다보니 한편으론 나의 욕심으로 그녀를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일까. 나의 개인사 덕분인가. 그러던 차에 그녀가 우울증으로 심화되어 병원을 다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그런 느낌에서인가. 그래서 내가 더욱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서 이었던가.

 

누구나 그러하듯 나의 결혼생활에서도 위기 하나가 찾아왔다.

마눌 님의 우울증.

우울증이라? 남의 일로만 여기던 그것이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일어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늦은 저녁 퇴근을 하고 피곤에 절어 집으로 들어섰더니 웬일인지 밝혀 있어야할 전등들이 꺼져 있었다. 무슨 일일까 의아하며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더니 그녀가 우두커니 거실 귀퉁이에 앉아 있다.

“불을 꺼놓고 무얼 하는 거야.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마음이 좀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그냥 아무 일도 아니려니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그녀의 똑같은 행동은 계속 되었다.

불을 꺼놓은 거실에 혼자 우두커니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이 된 것이다. 무얼 하는 걸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왜 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고민을 하며 끙끙대는 걸까.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함께 사는 부부가 일이 있으면 대화를 나눠야지. 아무 반응이 없는 그녀가 점점 야속해지기까지 하였다.

“이야기좀 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

주저하던 그녀는 어렵사리 말을 털어 놓았다.

“승호씨. 나 우울증 인가봐.”

“우울증?”

우울증이 뭐지? 당시 제대로 된 상식이 없던 나는 궁금증에 못 이겨 인터넷을 뒤적이기도 하였다. 그렇구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구나. 그럼에도 소갈머리 없는 나는 한편으론 그녀가 못내 아쉽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렇지. 남편이 지방 출장 등을 다녀와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면 의식적으로 반가운 표정이라도 지어야지 라는 철없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개도 주인이 들어오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떠는데 하물며 마누라가 말이야. 그래선 안 되는데 생각 하면서도 날마다 자신의 동굴 속으로만 숨어 들어가는 그녀의 행위에 점점 지쳐갈 무렵 어느 하루는 참다못해 정말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내뱉고 말았다.

“그럴수록 밖으로 뭔가를 해소해야 하는거 아니니. 남들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면 운동을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어떤 방법을 찾는데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허구한 날 집구석에 처박혀 질질 짜기나 하고 내가 들어와도 반기기는 고사하고 본체만체 하고. 본인이 우울증 이라고 생각이 들면 무언가 노력을 해야 될거 아냐.”

그녀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깊고 깊은 울음을 밤새 토해 내었다. 아마도 연애시절 이후로 가장 많은 속내의 울음을 본 것 같다. 이크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했구나 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임에도 불구하고 알량한 그 남자의 자존심으로 위로 한번 해주질 못했다.

 

며칠 후 TV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우울증에 시달리던 가정주부가 아파트 12층 베란다에서 추락해 자살 하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혀를 끌끌 차던 나에게 한마디를 한다.

“승호씨. 나 저 여자가 뛰어내린 것이 이해가돼.”

이해가 된다고? 이 여자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솔직히 그때까지도 가볍게만 여겼었던 그녀의 질병이 그제야 더욱 심각하게 받아 들여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일이구나.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어떡해. 어떡하지. 우울증은 햇볕을 많이 쬐어야 한다는데 억지로라도 야외 활동을 시킬까. 아니면 정말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가야되나. 별의별 생각이 드는 가운데 무언가 방책을 강구 하여야 했다.

“우울증에 빠져 있으면 잡생각을 많이 하고 한 가지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기에 일부러라도 바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나름의 생각으로 그만 두었던 예전의 일을 시작하게 만들었고 하나의 건수를 일부러 만들었다.

“대학원 원서야. 이력서에 내가 대충 당신의 신상은 써놓았으니까 본인 소개서만 써줘.”

서류봉투를 내밀자 그녀의 눈은 휘둥그레진다.

“무슨 원서라고? 그리고 내가 무슨…….”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어차피 일을 계속 하는 이상 전문성을 가지는 게 향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현재 여러 가지 심란한 상황이긴 하지만 한번 지원해봐.”

부담이 된다는 그녀를 부득불 설득해 억지로 마감일 원서 창고에 서류를 들이 밀었다. 합격발표가 나고 입학금을 납부하고 나자 현실로써의 피부 체감은 돋아났고 예정에 없던 그녀의 대학원 공부가 시작 되었다. 그로인해 팔자에 없던 주경야독이 이루어 졌지만 나의 꼼수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낮에 일을 하고 밤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말 그대로 쉽지 많은 않았지만 한학기가 넘어가자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갔다. 물론 덕분에 주말마다 이어지는 리포트로 인해 나도 골머리를 앓았고, 과제 발표와 시험으로 인해 심적 부담감은 커져 갔지만 그럼으로 인해 마눌 님의 우울증은 자연 치료가 되어져 갔다. 물론 너무 힘이 들 때면 쏟아지는 서슬 퍼런 푸념이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긴 했지만.

“승호씨가 대학원 가라고 했으니 졸업 논문까지 어떡하든지 책임져.”

 

안타까웠다. 그녀에게 무언가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선물을 받아서라기보다 그녀를 그 무언가에서 끄집어내게 하고 싶었다.

“00님. 많이 힘드신 것 같네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들이 있겠지만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함께 나눠요. 그렇게 피해만 다니시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이어가고 더욱 속으로 쌓여만 가실 것 같아요. 그럴수록 일부러라도 사람을 만나고 털어놓고 그래야 할 터인데. 그러고만 있으면 점점 더 깊은 나락 속으로 향할 것 같아요.”

나의 멘트에 그녀의 현재를 반영하듯 여러 가지 상념의 골이 수화기를 타고 멀리서 전해져 왔다.

“나도 알아요. 그런데 용기가 나질 않네요. 어째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머릿속은 이렇게 넋을 놓고 있으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니까 몸이 움직여 주질 않아요. 염려해 주는 건 고맙지만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나중에 제가 통화 드릴게요.”

안타까웠다. 그녀와 마눌 님이 오버랩 되었다. 점점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그녀가 가슴이 아팠다. 웬만하면 한번 만나기라도 하지라는 생각이 불을 지폈다.

 

누군가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 당신을 위해 작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그 점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만의 어둠, 혼자만의 방황, 혼자만의 절망에 빠져 있더라도 한구석 누군가 당신에게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한 귀퉁이의 여백은 남겨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당신의 아픔과 고민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다고 여기기에.

내가 건네는 손을 내가 줄 수 있는 손길을 받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더라도 세상의 끝을 놓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시간이 아니라면 당신의 문이 열리길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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