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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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프롤로그
2년간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어떤 방향, 어떤 관점, 어떤 테마의 칼럼을 쓸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 몇 가지 결론에 도달 했는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2년간 매주 쓰게 될 100여 개의 칼럼은 나의 첫 번째 책의 초고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인바, 내가 현재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 '개인의 변화와 성장'의 관점에서 다양한 테마들을 바라볼 것이다.
이렇게 거창한 결론을 하나 내고 나니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서 부담감을 줄이고자 또 다른 결론을 하나 냈다. 부담감 가지지 말고 내 글을 쓸 것. 내 첫 번째 책의 첫 번째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잘 알지도 모르는 미사여구, 인용구로 떡 칠한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글은 쓰지 않는다. 내가 몸소 체험한 것, 제대로 삶에 녹여낸 온전한 나의 것만을 글 속에 담도록 하겠다는 두 번째 결론을 내렸다.
세 번째 결론은 '실험정신'을 담은 글을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내 글을 읽게 될 타깃 고객과 글의 형식 그리고 주제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한 다양한 변화를 실험해 보고자 한다. 다만 글의 양식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변화와 성장'이라는 큰 테마로 수렴되어야 한다.
매 주 쓰게 될 나의 칼럼을 평가하는 세 가지 품질 기준을 정했다. 먼저 변화와 성장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매주 읽게 될 고전 도서들의 주제가 직 간접적으로 담겨져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자 역사를 통해 입증된 올바른 가치를 담고 싶다는 내 의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변화와 성장을 이끈 '기술적인 방법'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변화와 성장에 이르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변화'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품질기준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한 이야기는 담지 않을 것이다.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이 된 글은 자신감을 가지고 쓸 수 있고, 그렇게 쓰여진 글만이 강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
이렇게 세 가지 정신, 세 가지 품질기준을 통해 내가 담고자 하는 칼럼의 작은 제목을 '평범한 영웅의 변화이야기'로 정했다. 물론 더 좋은 제목이 생기면 언제든지 그 제목으로 바꿀 수 있다. 명치를 콕콕 찌르는 지금의 이 부담감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나와 세상 중간 사이에 놓이게 될 이 글의 씨앗들은 이미 내 가슴속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때로는 화려한 꽃으로 만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들시들한 꽃으로 피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읽고 쓰고 사색하는 데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춤추며 즐길 것. 이렇게 모인 글들이 모여 나의 첫 책이 되어 도착하는 2년 뒤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을 감고 떠올려 본다.
자발적 빈곤과 의례의 힘
"독한 놈 같으니라고! 도대체 어떻게 15kg을 뺀 거야?"
요새 들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다. 불과 5개월 전만해도 85kg의 비만이던 몸이 지금은 69~70kg 사이를 오간다. 체중 감량의 비결은 누구나 알다시피 식이요법과 운동 이 두 가지다. 두 가지에 대한 비결은 도처에 정보가 널려 있으므로 굳이 내가 보태지 않아도 될 것이다. 비결을 물어오는 분들께 굳이 한 말씀 드린다면 체중을 감량하는 것보다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유지하고 있는 체중은 감량하기 시작한지 100일여 만에 달성했고 그렇게 감량한 체중을 3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이제부터 그 비결을 이야기 해볼까 한다.
지난해 10월 나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저자이자 변화경영 사상가인 구본형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2박 3일 간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주된 커리큘럼은 현재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읽어내어 자신의 기질과 강점을 찾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 미래의 직업을 설계하고, 향후 10년간 자신이 이루고 싶은 10개의 미래 풍광을 그려내는 것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2박 3일 간의 프로그램이 레몬 단식을 하며 진행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끼만 굶어도 큰일이 나는 것 마냥 호들갑을 떨던 내게 단식 체험은 아주 '굉장한 일'이었다. 단식을 통해 내가 얻은 값진 배움은 하루 이틀 굶더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는 것이다.
올 초 새해 계획으로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을 '자발적 빈곤의 날'로 정하여 일일 단식을 하기로 했다. 과연 제대로 실천이 가능할지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시작 했지만, 13주째 빠짐없이 이어오고 있다. 아마도 이 '자발적 빈곤'이 아니었더라면 요요 현상으로 인해 체중은 금새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처음엔 사무실 책상 아래 둔 두 통의 레몬액을 30분 단위로 홀짝홀짝 마시는 나를 우습게 바라보던 사람들도 이제 더는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다가와 그 비결을 묻는다. 그들에게 구구절절 비결을 설명해 주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요즘 들어 단순히 감량된 체중을 유지하는 것 외에 '자발적 빈곤'이 내 삶에 주는 어떤 저력 같은 것에 놀라게 된다. 어쩌다 한 번이면 몰라도 매주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자발적 빈곤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자기 통제감 같은 것을 느낀다. 이러한 '자발적 빈곤'을 가능케 하는 숨은 비결은 바로 하루 전날 거행되는 '자발적 빈곤을 위한 의례'에 있다. 의례는 이렇게 거행된다. 우선 직접 과일가게를 찾아가 신선한 레몬 6개를 구입한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식초를 몇 방울 담아 물을 채우고 그 물로 레몬을 깨끗이 씻어낸 후 정성스레 껍질을 깐다. 칼로 위 아래 꼭지를 잘라내고, 껍질 가운데를 가르고 교차로 4등분을 하면 손쉽고 깔끔하게 껍질을 깔 수 있다. 그렇게 깐 레몬을 믹서로 갈아주고 생수를 타 묽게 한 다음 거름망으로 걸러내면 자발적 빈곤을 위한 레몬 원액이 완성된다. 껍질은 가위로 잘게 썰어 작은 쟁반에 담아 방향제로 사용한다.
이 의례는 아내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나 홀로 거행한다. 혹자는 레몬 껍질 까고 믹서로 가는 것 따위를 무슨 '의례'라고까지 거창하게 이름 붙여 가며 호들갑 떠느냐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굳이 이 행위를 '의례'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 행위를 할 때의 정성되고 성성한 나의 마음가짐과 순수한 몰입 때문이다. 비록 언어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그 행위를 통해 나는 다음날 있게 될 '자발적 빈곤'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염원한다. 나는 이러한 내 삶의 아주 작은 의례 행위가 교회나 절에서 거행되는 종교적인 그것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님을 안다.
유명한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그의 저서 <신화의 힘>에서 "신화는 아직도 어떤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리고 '의례'가 바로 이 에너지를 촉발한다.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날마다 의례를 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 잡아준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즉 의례를 통해 나는 나의 무의식 혹은 나의 내면의 우주를 향해 염원을 던지고, 다시 길어 올려진 그 염원은 어떠한 신성한 에너지, 저력이 되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바로 이것이 나의 '신성한 레몬즙 만들기 의례'를 통해 내가 매주 깨닫는 신화의 교훈이자, '매주 자발적 빈곤의 날'을 실천할 수 있게 하고, 감량한 체중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