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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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콴인(관음)이 현현했는데, 마침 그 마을에서는 아무도 깨달음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경.마 같은 남자다운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콴인은 매우 아름다운 처녀로 변신해서 마을에 내려와, 강에서 잡은 생선을 팔았다. 생선이 다 팔려서 바구니가 비면 처녀는 곧바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이 예쁜 생선장수 처녀는 다시 마을로 왔다가 또다시 사라졌다. 이렇게 계속하다 보니 온 마을의 청년들이 이 처녀에게 홀딱 반해 버리고 말았다."
<신화와 인생, 340p, 조지프 캠벨>
아름다움은 신의 매력적인 속임수다. 식물이 벌을 유인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름다운 꽃을 만드는 것과 같다. 벌은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에 반해 꽃을 쫓지만 결국 얻는 것은 꿀이라는 생명의 양식이다. 위의 이야기에서는 마을에 사는 스무 명 가량의 청년들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고, 그 중 <관음경>을 암송하고, 해석하고, 경험한, 한 명만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할 자격이 주어진다. 결국 처녀는 사라지고 그 청년은 세상 만물이 바로 그 처녀임을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을 쫓아가는 과정이 청년에게는 깨달음을 향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청년이 처음에는 깨달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처녀의 아름다움을 쫓았을 뿐이고,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결국 그가 얻은 것은 그가 바라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조지프 캠벨은 "여러분만의 희열을 따르라."고 말한다. 비슷하게도 명상가인 다릴 앙카는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고 말했으며, <신>의 저자 김용규는 "삶을 기뻐하는 삶"이 되라고 얘기한다. <희열을 따르는 삶, 가슴뛰는 삶, 삶을 기뻐하는 삶>은 '아름다움을 쫓는 삶'의 다른 말이다. '그래 그렇게 살아보자'라고 결심한 후 나에게 떠오르는 질문 하나는 "도대체 그렇게 살면 결국 어떻게 될까?"라는 것이었다. 파올로 코엘료는 소설 <연금술사>에서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고 썼다. 나를 매혹하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들이 나를 돕게 된다. 대학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주변 동네가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어 철거가 시작되었다. 동아리 연합회가 '세입자대책위'와 적극적인 연대에 들었 갔고, 자그마한 동아리에 속해있던 나도 자연스럽게 철거지역에 들어가게 되었다. 1,2학년 동안 공부방 자원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 지역에 빈집을 활용하여 공부방을 만들기로 했다. 내가 주축이 되었다. 처음엔 그저 강하게 끄는 힘을 따랐었다. 어떻게 그게 이루어질지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십 여명의 자원교사들이 들어왔고, 타학교에서도 자원자들이 생겼다. 공간은 세입자대책위 아저씨들과 함께 꾸몄다. 보일러도 손보고 장판에 도배도 새로 했다. '옹달샘공부방'이라는 현판도 달았다. 수업의 전문성 부족은 다른 단체의 선생님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옹달샘공부방은 많은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동네의 쉼터, 놀이터, 울타리가 되었다. 여름이 가고, 후배들 중 든든한 후임자를 정한 후 10월에 군대에 갔다. 다음해 여름휴가는 공부방 캠프에 맞춰서 나왔다. 아이들은 청량리역 한가운데서 소리치며 뛰어와 나를 반겨주었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다. 이날 내 기억속에 찍힌 사진 한 장은 나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내 인생의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가슴 뛰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 일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깨달음을 준 것이다.
아름다움을 쫓는 과정에는 시험이 따라온다. 위 우화에서 청년이 암송하고, 해석하고, 경험하는 시험을 거친 것처럼 말이다. 예수가 광야에서 쾌락과 탐욕의 시험을 넘어선 것과 붓다가 보리수 밑에서 권력과 쾌락의 시험을 물리치는 장면을 떠올려도 좋다. 그 시험들을 통해 우리가 우려했던 세속적인 걱정들은 떨어져 나간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시험을 넘어서지 못하고 멈추거나 돌아간다면 우린 아름다움 속에 갇히게 된다. 아름다움이 이끌려고 했던 깨달음의 절정을 맛보기는커녕 아름다움을 욕하거나 외면하게 될 것이다. "아, 그거 내가 다 해봤는데 별거 아니더라구", "그거 해서 뭐할 껀데?","그냥 시키는 대로나 해!" 당신은 이런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을 믿지 마라. 이런 말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시험을 경험하지도 못한 자들이 하는 넋두리에 불과하니까.
아름다움과 손잡고 가야할 이유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사진은 1955년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 '인간은 하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열린 <인간가족전>이라는 사진전시회의 가장 마지막 작품인 유진 스미스의 <낙원에 이르는 길 A Walk to Paradise Garden>이다. 전시회는 40개의 작은 테마로 나뉘어져, 우주창조, 사랑, 결혼, 출산, 육아를 거쳐 인간생활의 단면과 아울러 질병과 죽음의 과정을 보여준다. 평범한 인간사가 여기서 끝나는것 같지만 다시, 고독, 종교, 전쟁, 굶주림, 등을 표현한다. 다음으로 UN총회의 장면이 뒤를 잇고 세계 각국 부부들의 기념사진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바로 이 사진, 유진스미스가 자신의 두 자녀들이 숲을 빠져나가 새로운 길로 빠져나가는 느낌을 주는 이 사진으로 대막을 장식한다. 아름다움이 현실적인 고통과 부조리를 은폐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는 있지만 아름다움과 손잡고 가다보면 결국 우리가 지금은 알지 못하는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진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로 인류에게 강하게 전해졌다. 이 <인간가족전>은 세계 85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회를 가져 약 7백만명이 관람했다. 한국에서도 1957년 경복궁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하자. 아름다움과 손잡고 가자.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비록 아름다움이 환상이며 속임수일지라도.
<W. Eugene Smith, The Walk to Paradise Garden, 1946 >
특히 도입과 마무리 부분이 매력적이에요~
"아름다움은 신의 매력적인 속임수다. / 결국 그가 얻은 것은 그가 바라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 아름다움을 쫓는 과정에는 시험이 따라온다. / 그 시험들을 통해 우리가 우려했던 세속적인 걱정들은 떨어져 나간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시험을 넘어서지 못하고 멈추거나 돌아간다면 우린 아름다움 속에 갇히게 된다. / 아름다움과 손잡고 가야 할 이유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 아름다움과 손잡고 가자.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비록 아름다움이 환상이며 속임수일지라도."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였어요. ^^
하나의 주제를 적절한 예화와 인용문 그리고 자신의 경험으로 잘 버무리신 것 같아요.
아.. 이렇게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멋져요 형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