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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7일 09시 53분 등록

전기밥통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릿한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중에서

 

 

먹어야만 산다는 것은 비극인지 모른다. 간밤에 마신 술이 채 깨기도 전에 억지로 밥 몇 술을 까칠한 입에 넣고 집을 나서 본 적이 있는가? ‘그래, 넘겨야 일을 하고 그래야 또 넘길 수 있다고 다독이며 힘겹게 밥을 넘겼다.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다가 문득 내가 넥타이로 조금씩 나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나의 숨통을 조금씩 죄고 있다는 이 당혹스럽고 비참한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나도 모르게 벼랑으로 내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날의 무리한 회식으로 속은 정확히 일분 간격으로 부글부글 끓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호흡을 최대한 가지런히하고 복부에 힘을 준 채 전철에서 하차한 후 조신한 몸짓으로 화장실로 걸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화장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맥빠지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저희 역의 화장실은 공사 중이오니 다음 역에서 하차하여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나는 괴로움을 무릎쓰고 직장에 출근을 하는가? 밥 때문이다. 직장은 우리에게 밥벌이를 제공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고정된 시간에 출근하여 일정한 시간을 지불한 대가로 밥을 얻는다. 그러나 사람은 밥만으로 살 수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오직 밥벌이의 수단으로만 인식될 때 우리는 지겨움을 느낀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내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휑한 느낌이 드는 건 밥벌이만으로는 삶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김훈은 인간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것은 식물들과는 달리 엽록소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 밥벌이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밥벌이를 해서 얻은 밥을 제대로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부려야 한다는 데 있다. 밥벌이도 힘든데 밥을 넘기기도 힘들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하는 아침의 밥상을 보면 슬픔이 절정에 다다른다.

 

때가 오면 어김없이 먹어야 하는 밥. 밥 먹는 시간은 리드미컬하게 반복된다. 밥을 먹어야 밥심으로 일을 할 수 있다. 특별히 밥을 먹고 싶을 때 먹고 먹고 싶지 않을 때 먹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는 쉽지 않다. 다이어트를 하거나 스트레스로 밥맛이 뚝 떨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숙제처럼 먹어야 하는 게 밥이다. 내가 먹지 않아도 자식 새끼 입에 풀칠은 당연히 챙겨줘야 한다. 직장 동료 문상을 가서도, 병문안을 가서도 꼭 챙겨야 하는 게 밥이다. 상주도, 중환자도, 문상객도 잠시 슬픔을 밀어 놓은 채 삼켜야 하는 게 밥이다. 그러니 밥보다 더 슬픈 것이 어디 있을까? 도리가 없다.

 

얼마 전 30대 젊은 여류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사건을 신문 기사에서 읽었다. 그녀는 며칠 째 굶은 상태에서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그녀는 쪽지를 통해 그 동안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고 이웃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기사를 읽는 순간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밥의 숙명 비슷한 게 식도를 타고 두 눈위로 떨어졌다. 밥은 누구나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밥만이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다. 밥은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인 것이다.

 

이제 밥은 예전처럼 자연에 있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굴러 다닌다. 내 밥, 네 밥이 서로 뒤엉켜 있다. 치열한 경쟁을 무릎쓰고 내 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니 밥벌이가 기분좋을 리 없다. 고통스럽고 지겨운 일이 되었다. 밥벌이를 할수록 점점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밥벌이를 통해 노동의 신성함과 일의 재미를 잃어버린 지는 오래되었다.

 

밥벌이가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다. 삶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밥벌이는 당연히 존재할 뿐, 밥벌이가 끝내 목표는 아니다. 밥벌이를 해결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이 욕망이 실현되어야 밥벌이의 모순이 해결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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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8 07:29:47 *.160.33.89

뱅곤아.  이 봄에는  네 몸 구석구석에서 파란 엽록소가 생겨나기 시작하면 좋겠다. 
그러면 햇빛 쏟아져 내리는 거리로 나와   그저  팔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봐도  밥이 만들어 질텐데. 
엽록소를 키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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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11.04.11 12:38:06 *.124.233.1
어제 진각사 앞 학소대에서 혼자 잠깐 두 팔 벌려 햇빛과 산들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보았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없는 십오초가 흘러갔습니다.
나머지 삶에 대한 불안도, 출간을 눈 앞에 둔 책의 절반을 다시 써야 겠다는 잠재의식의 스트레스도 모두 날아간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초점이 쇼생크 탈출처럼 두 팔 벌려 비를 맞는 자유의 몸부림이었다면
이제는 학소대 앞에서 내면의 평안을 가슴에 담아두고
내 안의 엽록소를 키워
따뜻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쬐면서 광합성을 해보겠습니다.
늘 감사하며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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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4.08 20:37:07 *.34.224.87
절절하고
절실하고
공감가는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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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1.04.11 12:39:37 *.124.233.1
댓글이 그대와 나의 삶의 모습을 표현한 거 같네.ㅎㅎㅎ
오이먼과 최펑클의 공연은 좀 더 호흡을 맞춰 다음에 정식으로 데뷔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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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크림
2011.04.11 23:12:27 *.111.206.9
그 여류작가 일로 오해가 생겨서, 소설가 김영하도 인터넷상에서 절필을 했지요. 

저도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해서, 몇몇 작가분들 만나보았습니다. 그 분들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한 것 같더군요. 그저 돈은 굶지 않을 정도로만 벌고, 나머지는 자기 작업에 몰두합니다. 돈은 없지만, 영혼은 충만하고, 건강하지요. 

저는 몇년째 같은 시도를 해요. 아직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돈은 그저 그렇고, 영혼은 허기지고. 

사회 구조가 아니라, 저의 기질이 문제라고. 

더 용기를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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