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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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본 건 작년 봄, 꿈벗 소풍 때였다. 앳된 얼굴과 가냘픈 몸매로 아이들에게 라인댄스를 열심히 가르치는 그녀가, 나는 대학원에서 생활체육을 공부하는 학생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나름 성깔도 있었다. 사람들이 아이들이 보여줄 라인댄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그녀는 흥분해 펄쩍펄쩍 뛰었다. 아이들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는 그 누구보다 기뻐하며 다시 한 번 팔짝팔짝 뛰었다. 큰 딸 아이는 댄스 선생님과의 공연이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두고두고 말했다. 다음에 또 그 선생님에게 춤 배울 거라며 꼭 다시 오자 했다. 하지만 가을 소풍은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연구원 면접여행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그녀가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자세히 보니 눈과 입가에 애교 주름이 잡혀있다. 그래도 3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얼굴이다. 몸은 군살이라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날씬하다. 애를 둘 낳다 보니 살이 붙었다는 나의 변명이 무색하다. 그녀는 6기 웨버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긴 속눈썹에 묻어 있는 카리스마가 보인다. 남자 동기들을 메치고 엎어 치고, 예비 7기들에게는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음악이 바뀔 때 마다 현란한 댄스를 선보이며 놀던 그녀가 사부님과 블루스를 추는 모습이 보인다.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해 보이는 그녀와 어린 아이를 재우듯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하시는 사부님이 오르골 인형처럼 빙글빙글 돌아간다. 눈치 없이 아침에 늦게 나타난 여자 예비 7기 6명에게는 ‘아침 일찍 와서 준비한 남자 3명은 모두 합격이다’라는 말로 일침을 놓는다.
어찌 어찌하여 7기 웨버가 된 나는 그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사부님께서 멘토를 정해 선배 연구원 탐구를 해보라고 하셨을 때 나는 그녀가 떠올랐다. 나와 그녀는 공통점이 많다. 여자이고, 두 아이의 엄마이고, 달콤 살벌한 형님이다. 그녀는 지금 대학에서 요가명상을 공부하고 있다. 젊은 날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그녀는 지금 하는 공부가 더 재미있다고 한다. 그녀는 스물 셋이란 어린 나이에 결혼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미국에 갔다.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돈이 필요해 신부님 복사 노릇도 했다. 말 많고 탈 많은 그 곳에서 마음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곳에서 기른 마음 근육 덕분에 더 단단해졌다. 이제 훌쩍 자라 멀리 있는 아들들이 그녀는 항상 그립니다.
그녀는 3년 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참여하면서 사부님과 인연을 맺었다. 그 후 연구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요가 명상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의 시각으로 바라본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쯤인 글을 쓰고 있다. 방울이와 오리오는 그녀에게 가족이다. 유기견 이었던 둘은 그녀의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다. 그녀의 글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파르르 떨리는 여린 감수성이 보인다. 호탕한 여걸의 가죽 안에 숨어 있는 한없이 따뜻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자기가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내려는 욕심이 보인다. 그녀의 꿈은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얼굴엔 약간의 주름이 더 늘어나겠지만 할머니가 된 그녀는 여전히 예쁠 것 같다. 그 때에도 음악이 나오면 유연한 몸놀림으로 최신 댄스를 보여줄 것 같다. 조금은 힘이 빠진 목소리겠지만 여전히 호통을 치고 있을 것 같다. 몸과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다.
입학 여행 내내 그녀는 달콤 살벌했다. 버스에 늦게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요강은 10분 안에 비워야쥐잉’ 호통을 쳤고 휴게소에서 산 호도과자는 한 사람 앞에 세 개씩 나누어 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숫자 관념이 희박한 내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호도과자를 나누어준 후였다.) 혼자 늦어 버스 출발을 연착시킨 동기에게 ‘죄송합니다’ 인사를 하게 했고, 도로변 노점에서 산 사과를 괴력을 발휘해 양손으로 쪼개 주었다. 나에게 반으로 쪼갠 사과를 건네 주면서 ‘아들 둘이 나에게 수그리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야’했다. 버스 기사님이 무료할까 봐 중간중간 올라와 그에게 애교 섞인 농담을 건네기도 했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식사할 곳과 일정 등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