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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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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3일 08시 12분 등록

점순이는 어찌 되었을까

계곡을 따라서 강길로 접어들었다. 산자락이 흘러내려 강물과 만나는 구불구불한 치맛자락 같은 길을 따라갔다. 벌써 사월이고, 남도에서는 꽃소식이 한창이라지만, 이곳의 봄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소나무 숲이 막 연한 빛을 머금기 시작하고, 싸릿골로 가는 골짜기 사이사이로 이깔나무들 흔들림이 제법 여유있어 보인다. 낯선 걸음에 놀란 듯 퍼더덕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지만 이내 강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노랗다. 아니 연두빛처럼 알싸한 노란 향기였다.
코끝으로 번져들었다. 생강나무였다.
아니다. 강원도에 왔으니, 이곳 사람들 말마따나 노란 동백꽃이라 불러야 지대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그만 땅이 꺼지는 듯이 아찔하고 말았다.
분명 혼자였다.
누군가 어깨를 떠밀어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마묻혀 버릴 사람도 없는... 분명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도 후끈하니 얼굴이 달아 올랐다.

점순이 생각이 났다. 나무를 해서 지고 내려오던 때를 맞추어 제집 쌈닭을 시켜 남의 집 수탉을 쪼아놓던 그 못된 계집애... 누가 마름집 딸년이라 아니랄까 그깟 봄감자 몇 알 턱밑으로 불쑥 내밀며 “느집인 이거 없지”라며 아닌 위세를 부리던 열일곱 동갑내기...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위돌 틈에 끼여 앉아서 청숭맞게시리 호드기를 불던 그 가시내...

당췌 부끄럼이라곤 모를 것 같던 고 망할 놈의 계집애 입술같이 알싸한 노란 동백꽃이 바윗돌 틈을 비집고 피어 번지고 있었다. 봄이었다.

노란동백꽃-1.bmp

IP *.1.1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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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3 09:08:01 *.166.205.131
'감자'같은 근대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 드네요.
토속적이라는 유끼동기들의 말이 글을 통해 확 느껴집니다.
아이고 가시내...ㅋ 정겨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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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14 08:26:41 *.1.108.49
실은 이번 주 김유정 단편 소설집을 들고 지냅니다.
동백꽃.. 생강나무.. 점순이 생각에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있지요..
몸은 무주의 칠연계곡 골짜기에..
맘은 구비구비 정선 아리랑 같이 굽어 흐르는 동강을 따라
뗏목지기들을 따라 황새여울 된꼬까리를 지나
들병장수 전산옥이 따라주는 술 한잔
정선아리랑 한가락에 녹아나고 있구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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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4.13 10:36:12 *.219.84.74
봄 처럼 풋풋합니다.
동백꽃 속으로 쓰러졌던 점순이의 해피앤딩 장면이 계집애의 입술을 통해서 오버랩됩니다.
멋스럽습니다. 봄과 어울리는 심상이 여유롭습니다.

선배님, 봄입니다. 두루두루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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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14 08:08:43 *.1.108.49
겨울지나.. 봄이 되면 좀 편해질까 싶었는데...
몸은 더 나른하고, 맘은 이미 꽃바람을 타고..멀미나게 너울거리니
가벼워진 처녀들 치마자락처럼 설레이기만 하네요..
당췌 가슴이 벌렁거려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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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4.13 13:19:52 *.236.3.241
진철아, 이것이 뭐시다냐.
소설이냐,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네 주위에 점순이를
들은 적이 없는데
여기 점순이는 풋풋하고 생초롬한 게
진짜 사람이믄 진철이 여자복 없었다는 야그는
다 거짓뿌렁이여
지어낸 거면? 시작이 좋아. 다음 야그 언제 나와~~

- 뜬금없는 그러나 섹쉬한 점순이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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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14 08:07:05 *.1.108.49
소설이든..에세이든.. 난 상관않는다.
그냥 땡기는 대로 나를 끌어가는대로 끌려가볼 따름이다.
아무래도 조만간에 '아우라지'에 가지 않으면.. 아플 것 같다.
벌써 나흘째.. 아우라지..동강..정선아리랑.. 김유정.. 동백꽃..점순이..
들병장수에.. 황새여울 된꼬까리 생목숨을 집어삼키던 어라연 계곡을 해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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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3 13:34:54 *.10.44.47
저도 이 점순이 좀 땡겨요.
우짠 영문이던간에 점순이 소식은 끝까지 다 전해주시는 거에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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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16 08:51:04 *.1.108.49
아마도.. 소가 점순이따라 강몰고 가는 이야기가 될지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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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5 09:21:12 *.10.44.47
그것들을 한 줄에 꿰어보면 우떨른지?

점순이가 강따라 소몰고 가는 이야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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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14 08:03:23 *.1.108.49
땡긴다고.. 여기저기 다 한 눈 팔아주면..
소는 누가 키우남? ㅋㅋ
그냥 또 뭔가를 시작해볼 따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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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4.14 22:58:03 *.34.224.87
어찌나,
햇살이 지랄같이 좋은지..
눈물은 가끔 왜 나는지?
나, 이거 병 아니여?
봄 타는 겨?

나도 모르게 담배한갑을 사서 이번주에 피고 있다.
여행은 바닷물인지..갔다오면,  갈증만 더 나고...
니 말대로 마음이 벌렁 벌렁 한게
죽갔다. 우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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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5 09:29:27 *.10.44.47
배터져서 더이상 못 먹겠다 싶을 만큼
벌컥벌컥 들이켜보는 수 밖에 없을걸요.    ^^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면 꿈속에서라도 실컷!!
그 꿈을 디자인하는 직업이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오빠가 먹고 싶은 그 물, 자판으로 콸콸 만들어 맘껏 마셔보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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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4.16 08:52:31 *.1.108.49
형.. 야속하게 생각마슈..
북페어 앞두고 생기는 직업병 같습디다.. ㅋㅋ 한번 견뎌보슈... 재밌습디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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