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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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순이는 어찌 되었을까
계곡을 따라서 강길로 접어들었다. 산자락이 흘러내려 강물과 만나는 구불구불한 치맛자락 같은 길을 따라갔다. 벌써 사월이고, 남도에서는 꽃소식이 한창이라지만, 이곳의 봄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소나무 숲이 막 연한 빛을 머금기 시작하고, 싸릿골로 가는 골짜기 사이사이로 이깔나무들 흔들림이 제법 여유있어 보인다. 낯선 걸음에 놀란 듯 퍼더덕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지만 이내 강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노랗다. 아니 연두빛처럼 알싸한 노란 향기였다.
코끝으로 번져들었다. 생강나무였다.
아니다. 강원도에 왔으니, 이곳 사람들 말마따나 노란 동백꽃이라 불러야 지대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그만 땅이 꺼지는 듯이 아찔하고 말았다.
분명 혼자였다.
누군가 어깨를 떠밀어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마묻혀 버릴 사람도 없는... 분명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도 후끈하니 얼굴이 달아 올랐다.
점순이 생각이 났다. 나무를 해서 지고 내려오던 때를 맞추어 제집 쌈닭을 시켜 남의 집 수탉을 쪼아놓던 그 못된 계집애... 누가 마름집 딸년이라 아니랄까 그깟 봄감자 몇 알 턱밑으로 불쑥 내밀며 “느집인 이거 없지”라며 아닌 위세를 부리던 열일곱 동갑내기...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위돌 틈에 끼여 앉아서 청숭맞게시리 호드기를 불던 그 가시내...
당췌 부끄럼이라곤 모를 것 같던 고 망할 놈의 계집애 입술같이 알싸한 노란 동백꽃이 바윗돌 틈을 비집고 피어 번지고 있었다. 봄이었다.
노란동백꽃-1.b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