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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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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8일 01시 25분 등록

"도깨비는 왕자의 도착에 즈음해서 제 몸을 키웠는데, 키는 종료나무만 했고,
머리는 종형의 뾰족탑이 있는 큰 집만 했으며 눈은 바라문이 탁발하는 바리, 두 개의 송곳니는 굵은 기둥을 방불케 했다.
 도깨비의 입은 매의 부리 같았고, 배는 부스럼으로 덮여 있었고, 손발은 푸르뎅뎅했다."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제1부. 1장. 출발 중 -
 

   당신에게 추하고, 불쾌하고, 끔찍하며, 역겨운, 더럽고, 무서우며, 기분 나쁘고, 괴물 같으며, 혐오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위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끈끈한 털을 가진 도깨비 같은 것을 만난 적이 없는가? 이 이야기에서 왕자는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다섯 가지 무기를 사용해 도깨비를 공격한다. 하지만 다섯 무기는 아무 효용도 없이 끈끈한 털에 붙어 버린다. 마지막으로 온 몸을 던져 공격하지만 자신마저 털에 붙은 채 도깨비 몸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먹으면 자기 안의 벼락이 너를 죽게 하고 말 것이라고 큰 소리 치며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질겁을한 도깨비는 왕자의 말을 사실로 믿고 왕자를 보내 준다. 왕자는 도깨비에게 지혜를 가르쳐 숲에서 보시를 받는 정령이 되게 했다. 이로써 도깨비는 신적인 존재가 된다. 영웅은 자아를 끈끈이 털에 붙여 두고 제 갈 길을 갔다. 결국 추한 것이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 자아는 추했던 것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도깨비의 겉모습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동물이나 식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고슴도치는 날카로운 털을 온몸에 갑옷처럼 두르고 있다. 고소한 알밤은 뾰족한 밤송이 안에 들어있다. 노린재나 스컹크는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때죽나무는 열매를 빻아 물에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해서 때죽나무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자연의 보호 장치들은 상대방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보호장치들이 그것의 본질은 아니다. 보호장치 때문에 고슴도치를 두려워하고, 스컹크를 역겨워하며, 때죽나무를 증오하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3년 전 즈음 천안에 있는 명상센터의 주말코스에 들어간 적이 있다. 처음 접하는 자비명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자비명상이란 간단히 말해 평화와 고통의 소멸을 기원하는 명상이다. 명상을 지도하는 법사님이 계시고 하루에 한번씩 그분과 인터뷰를 가지며 명상의 어려움을 풀어간다. 어떤 어려움을 말해도 지도 법사님이 하는 말씀은 똑같다. 떠오르는 그대로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하루종일 자비명상을 하게 되면 내 안의 수없이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불쑥 불쑥 거품처럼 올라와 힘들게 한다. 구체적인 주변의 대상을 떠올릴 때, 처음에는 존경하는 분을 떠올린다. 그래야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휩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이미지들이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자비명상을 통해 내가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나타나면 나타나는 대로 바라보고 흘려보내는 것뿐이었다. 쥐나 바퀴벌레에 대한 공포, 귀이개가 귀를 뚫을 것 같은 끔찍한 기분, 날카로운 칼에 대한 두려움, 상사에 대한 분노,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할 것 같은 수치심, 상대방과 겹쳐 떠오르는 괴물같은 얼굴들 등 내 속에 이렇게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나온다. 그것은 나조차 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도깨비들이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가면서 결국 그 형상들은 옅어지게 되었고 평화스러운 마음은 커졌다. 한번 없어졌다고 부정적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청소를 한번 했다고 영원히 깨끗함이 유지되지 않는 것과 같다.

   아름다움이 환상이 듯이 추함도 환상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을 따르기는 쉽지만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라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이다. 몸속에 자기도 모르게 고통의 호르몬이 흐르게 된다. 넘어서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과 마주앉아 자신안의 두려움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1960년대에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 1923-1971)의 작품이다. 그녀는 불구자, 난쟁이, 기형아, 성도착증자, 기인 등과 같은 비정상인들에게 사진기를 들이 대었다. 그녀는 대낮에도 일부러 후레쉬를 터뜨렸다고 한다. 아버스의 작업은 세상의 어두운 비밀에 빛을 비추는 작업이었다. 아버스는 비정상인들에게서 신비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기형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상처받고 있다. 그들은 이미 인생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삶을 초월한 고귀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녀의 충격적인 사진들은 비평가들로부터 혹독한 악평을 받았다. 자신의 삶과 유리된 사진으로 피사체를 이용했다는 비판이었다. 자신의 순수성을 호소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녀는 1971년 자살을 했다. 살아생전 해보지 못했던 자신만의 전시회가 1972년 추모전 형태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 전시회에는 관람자가 석 달 동안 25만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그녀는 사진계의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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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아버스, Diane Arbus, 1923-1971>

   끝으로 당신과 나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피하고 싶은 도깨비가 있는가? 매일의 삶에서 그것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 도깨비의 추함, 끔찍함을 넘어서 내 길을 가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도깨비를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무서운 도깨비도 지혜의 신이 된다. 힘들겠지만 그것에게 끊임없이 지혜의 빛을 비추어주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도깨비는 더이상 도깨비가 아니다. 나는 그에게 먹히지 않고 내 길을 갈 수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도깨비의 무서운 겉모습은 환상이다. 두려움은 본질을 알게되면 사라진다.





IP *.11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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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4.18 04:56:49 *.23.188.173
도깨비를 한 번 찾아봐야 겠군요~
항상 빠지지 않는 사진의 이야기가 오빠의 칼럼과 잘 어울려요
그 이야기들에서 칼럼을 끄집어 내는 것도 오빠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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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2:45:07 *.111.51.110
어때 잘어울리는것 같아?
첫번째 칼럼의 형식을 따라해 보느라 좀 어색한 느낌도 있어,
아름다움과 추함의 의미를 같은 형식으로 대비되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깊이도 좀 부족하고, 주제도 흐릿한것 같아.
루미야~ 날카로운 비판도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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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4.18 05:28:09 *.35.19.58
나는 대체로 긍정적인 사람인데 작년 한 해 동안은 아무도 모르게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곤 했지.
그건 아마 사람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 같아.
맞다. 물위를 걷는 것 보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해방되는 것이 더 힘들지.
너의 칼럼은 부드러우면서도 뚝심이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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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2:47:08 *.111.51.110
너무 밀어부친 느낌도 있어. 절대적인 것은 없는데 말이지.
더 부드럽게 잔잔하게 파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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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4.18 06:22:19 *.246.71.33
아버스란 작가. 아깝다.. 정말...ㅜㅜ..
통찰과 깊이가 느껴지는.. 양갱 오라버니 보면서 나도 많이 배워야징..ㅎ.

조금씩조금씩, 서로에게 배운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글과 그림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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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2:49:22 *.111.51.110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는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하는 것도 쉽지않네.
한번 뿐인 인생인데 말야.
서로에게 배우면 좀더 잘 알 수 있겠지.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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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늑대
2011.04.18 09:27:21 *.219.84.74
길의 끝만 생각하고 가니 중간에 핀꽃을 자세히 보지 못한다.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다.
나는 책을 빨리 읽고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듯 서두른다.
콴인의 이야기가, 도깨비의 이야기가 이렇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법을 모르고 간다.

충청도 발걸음으로 천천히 읽어야 하는데, 서울 지하철 타듯 나는 그렇게 읽었다.
너의 통찰을 배우고 간다. 나도 다음주는 너와 같은 통찰을 모방해볼까? 될런지 모르겠다.
가끔 전화로라도 안부를 묻도록 하자.
너의 전화는 언제 스마트해지니...루미는 이번주에 아주 스마트해졌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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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2:52:16 *.111.51.110
저또한 시간에 좇기는 압박이 있었답니다. 완전공감.
지방에 와서 사니, 좀 단순해지는 것 같긴 해요.
아직 스마트한 전화도 절실하지 않고...ㅋ
이제 미선과 나만 남은건가요?
미선아 제발 가지마라. 스마트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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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8:06:22 *.124.233.1
계속해서 제 곁을 떠나지 않는 <추함과 두려움>이라는 화두네요..
저 또한 결국 두려움은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그러나 참 얄궃게도 앎과 행동이 물과 기름처럼 유리되어 조화를 이루지 못하네요.
또 한 수 배웁니다. 고마워요 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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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9:23:28 *.166.205.131
이제 시작인데 뭐~
차분히... 가자.
네 말대로 한걸음씩 가면 히말라야 산봉우리도 넘을 수 있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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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9:17:31 *.166.205.131
마지막 문단을 다시한번 읽어보며 수정을 했다.
김용규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이게 최종본 인 듯이... 마치 작가가 된 듯이 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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