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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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시간의 혁명, 그 300일 간의 대장정을 마치며 (2부)
<입 문>
4. 시련과 돌파
기상, 잠, 관계 사이의 무게중심 찾기
우선은 제 시간에 깨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휴대폰을 비롯하여 세상이 떠나갈 듯한 소리를 내는 알람까지 2중 3중으로 제때 기상을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처음 며칠은 결사의 의지와 긴장감으로 기상 시간 이전에 눈이 떠졌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피로가 누적되면서 알람 소리도 희미해지고 간신히 일어나 초를 다투며 허둥지둥 출석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 운이 좋았던 것이 가장 이른 시간대 기상이라 첫 글을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기상할 수 있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제때 기상하는 것을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불규칙한 취침시간에 있었다. 평소 밤 12시에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4시로 기상시간을 조정할 경우 그 전날 밤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우들은 취침시간은 그대로 유지시키고 기상시간만을 앞당겼다. 시간이 흐를 수록 피로가 누적되고, 피로가 누적될 수록 잠에서 깨어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결국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투를 벌여야 했던 것은 단순히 새벽기상과 기상후의 2시간만이 아닌 하루 전체였던 것이다.
밤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9시 반 전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8시 이전에 퇴근을 해야 했다. 새벽 2시간은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불필요한 시간들을 제거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하루를 이루는 요소들에 우선순위를 매겼다. 내가 제거해야 하는 것은 불필요한 야근과 술 약속이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를 다니는 내게 9시가 되기 전에 남아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두고 홀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은 고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 주에 적어도 2~3번 가졌던 저녁 술자리에 불참하는 것은 동료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화에 대한 저항과 일탈을 선언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유연하지도 영리하지도 못했던 나는 위축되었고 방어적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에 비해 상황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새벽기상'과 '취침시간' 그리고 '관계' 사이의 무게 중심을 찾는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시간의 질적 가치
내게 찾아온 또 다른 시련은 새벽 2시간의 질적 가치를 찾는 일이었다. 처음 100일 동안은 눈을 뜨고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간신히 일어나 출석 글만 남기고 다시 잠들기 일쑤였다. 목표로 했던 개인사 작성은 거의 꿈도 꾸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도 새벽 기상을 습관화 하시는데 100일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에 힘입어 2시간 동안 깨어 있는 것을 습관화 시키는 것으로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2가지 방법이 내겐 주효했는데, 한 가지는 능동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는 것, 둘째는 즐겁고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필휘지로 휘갈겨 쓸 수 있는 자유로운 형식의 모닝페이지를 썼고, 나머지 시간은 수락산에 가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고 돌아오거나, 중랑천을 걷기도 했다. 두 가지 활동 모두 내가 내 마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200일 차가 되자 시련은 최고조에 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벽기상은 안정화 되었는데, 아무런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모닝페이지는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글이라 마음은 편했지만 남는 게 없었고, 연구원 지원서인 개인사 작성은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잘 쓰여지지 않았다. 그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이 '단군 일지'였는데, 나는 단군일지를 나의 은밀한 내면 세계와 바깥 세상의 중간지점에 위치시킬 수 있도록 노력했다. 형식에 구애 받고 자유롭게 쓰되 외부에 공개 할 수 있을 만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자유롭되 형식을 갖춘 글을 쓰는 연습을 해나가자 개인사 작성에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300일 차의 관건은 높아진 질적 가치로 2시간을 꽉 채우는 일이었다. 게다가 300일차의 경우 시기가 겨울과 맞물려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새벽 활동을 시작한지 한 시간도 못 채우고 따뜻한 이불 속으로 도망간 적도 많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벽활동을 위한 성소를 바꾸기로 했다. 기상 후 20~30분 간의 모닝페이지는 그대로 서재에서 썼고, 다음 활동인 개인사 작성은 사무실에서 하기로 했다. 첫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여 회사에 도착하면 6시 반에서 7시 사이,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는 8시 반까지 최소한 1시간 반에서 2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사무실에서의 약간의 긴장감과 통제된 환경은 갖춰진 글을 쓰기에 안성 맞춤이었다. 이 방법은 연구원 2차 레이스와 더불어 본격적인 연구원 생활을 시작한 지금까지 하루 중에 꽉 찬 2시간을 내게 선사해주고 있다.
자만과 방심
무너지는 일은 언제나 한 순간에 찾아 온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에서 안내자 페트루스는 “적은 우리에 대한 승리를 점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싸움을 시작합니다. 자만심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무적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때지요. 싸움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자신의 약한 면만을 방어하려고 하지만, 막상 적이 공격하는 곳은 우리가 방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가장 믿고 있는 곳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패배하고 마는 겁니다. 패인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적에게 싸움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죠.” 라고 이야기 하며 자만과 방심을 경계한다. 100일차의 경우 초발심의 단단한 마음과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출석률 100%를 달성했지만, 200일차 때는 무려 9번의 지각을 했다. 잠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피곤해서도 아니었다. 긴장을 늦추고 마음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300일차는 1번 삐끗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출석에 성공했다. 과도한 자신감에 차오를 때 혹은 나태해질 때 페트루스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5. 여신과의 만남
영웅의 모험에서 가족은 양날의 검과 같다. 모험을 위한 강한 추진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발목을 붙잡는 장애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함께 했던 사우들 중 배우자와의 관계 불화와 육아로 인하여 고충을 겪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만약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애당초 이 모험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300일 간의 여정 동안 아내는 언제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나의 새벽활동에 대해 단 한번의 불평 불만도 하지 않았고, 4시도 안 되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소리에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단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때론 오히려 먼저 새벽 기상을 챙겨주기도 했고, 출석에 실패하면 위로 해주고, 출석만하고 돌아와 이불 속으로 숨었을 때에는 혼내며 다그치기도 했다.
'먼 별 샤먼 - 수희향' 그녀는 처음 나를 이 여정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여정 내내 아름다운 글로 내게 통찰력과 영감을 주었고, 날카로운 직관은 나를 꿰뚫었다. 언제나 배려하는 따뜻한 조언과 필요하다면 따끔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처음 100일을 완주하고 <전설의 영웅상>을 수상했을 때 그녀는 나보다 더 기뻐해주었고, 내 단군일지에 슬픈 일이 적혀 있으면 어김없이 댓 글을 통해 함께 슬퍼해 주곤 했다. 연구원이 되어 사부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삶의 얼마나 큰 가치인지 알게 되었던 것도 모두 그녀를 통해서였다. 처음 사부님을 만난 삼성동의 북 콘서트 자리에도, 스승과 함께 한 늦가을의 새벽에도, 그리고 밤을 지새우며 거닌 경주의 벚꽃 길 위에서도 그녀는 함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지혜의 여신이 되어 내가 어리석음의 늪 빠지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귀 환>
6. 깨달음과 귀환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출사표를 던지고 출정한 2010년 5월 24일부터 300일차 마지막 날인 2011년 4월 19일까지 총 331일 중 열흘을 제외한 321일을 새벽 4시 전에 깨어났다. 1만시간의 정확히 1/10인 1천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투자했다. 4부 10장으로 구성된 60페이지 분량의 개인사를 써냈고, 500페이지이상의 모닝페이지와 200페이지이상의 단군일지를 수련의 흔적으로 남겼다. 늘 염원하던 내 깨달음의 경지를 이해해줄 스승을 만났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평생 함께 할 꿈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동지를 여럿 얻었다.
새벽 2시간은 내 삶의 또 다른 혁명을 이끌었다. 10여 년간 피워온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85kg의 뚱뚱한 비만이었던 나를 70kg의 정상체중으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50권의 책을 통해 50명의 스승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고, 걷기와 등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했으며, 아내와 가족 그리고 사람들을 더욱 더 사랑하게 해주었다. 나에게 있어 새벽 2시간은 내 삶 자체다. 그 2시간을 통해 나는 나의 꿈과 내면의 우주에 접혀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접속할 수 있었고, 앞으로 그 2시간을 통해 나의 꿈과 가능성을 펼쳐나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1년 전 출발했던 바로 그 지점, '시작의 끝, 끝의 시작'에 서있다. 1만시간 게이지의 두 번째 1/10을 채우기 위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더 큰 괴물, 보다 깊은 심연, 보다 가혹한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했던가? 난세는 바깥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내면 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난세 속에서 나는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나의 영웅 신화의 또 다른 한 페이지는 이미 쓰여지기 시작했다.
Special Thanks to 단군의 후예들..
우리가 싸워야 했던 건 새벽 2시간이 아닌 타성에 길들여져 익숙해진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지난 300일 동안 함께 새벽을 맞이한 나와 그대 사우들은 그 긴 여정을 통해 작지만 위대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평범한 영웅'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비록 나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로 맺음 짓지만, 곧 이러한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웅장한 '우리의 신화'로 거듭날 것이다. 그대들의 앞날에 언제나 아름다운 삶의 광휘가 비춰지길 바란다.

그 3백일동안 누나는 그대야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든든했는지 말이야..^^
경인아. 이제 그대야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3백일이 그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이 내일이 되도록, 오직 오늘만 생각하는 300일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대야는 그럴거라고 믿어..^^
다만, 가끔은 쉬면서 가야 해. 오래 가려면. 가끔은 투정도 부리고, 가끔은 졸기도 하면서..
웃으며 잔치하듯 걷는 길이라는 말씀.. 우리 조금씩 마음에, 삶에 녹여내며 함께 걸어가자^^
무튼, 누나야가 동샹 복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야~
정말 고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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