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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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설 전날 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설날을 하루 앞둔 까치까치 설날. 현관문에 엄지손가락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리도 나오지 않을 만큼의 통증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아마, 그때까지 마시고 있던 술기운이 통증을 완화시킨 것이리라.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다음날 아침, 손도 까닥거릴 수 없었다. 엄지손톱은 새까맣게 멍이 들었고,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냥 있어도 아팠다. 겨우 겨우 손톱을 잘랐다. 조금 길어있는 손톱이 어딘가에 닿을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찾아와서 잘라야만 했다. 손톱을 보는 순간 엄마가 한 마디 한다.
“야, 그거 빠지겠다.”
그 순간 통증보다 더한 공포가 엄습해온다. 손톱이 빠진다고? 그럼 손톱이 있던 자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손톱이 없으면 어떡하지? 자라날 때까지 없는 채로 있어야 돼? 이건 물리적인 통증보다 더한 통증이었다. 그때부터 필사의 나의 손톱 보호기가 시작되었다.
우선 부드러운 손수건으로 손을 감쌌다. 어딘가에 부딪히면 아픈 것도 있고 빠질 염려도 생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대한 왼손을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나 엄지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검지 손가락의 사용도 자제했다. 은근히 둘은 한꺼번에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운전할 때에도 엄지손가락을 들고 운전대를 잡았으며, 왼손을 사용해야 하는 병따기 등은 전혀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왼손을 사용하는 일은 많았다. 특히 옷입기는 엄청난 신경을 필요로 했다. 세수할 때에도 엄지손가락의 사용을 자제하고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기도 힘들었다. 며칠 째 무사한 나의 손톱을 보며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동안에 나를 아프게 했던 통증 역시 잠잠해진 터였다. 이제 멍든 것만 나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손톱의 뿌리(?) 부분이 영 빠질 듯한 모양인거다. 얼마나 조심해서 이제 통증도 없어졌는데 손톱의 느낌이 이상하다. 이제 멍만 빠지면 된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또 하나의 공포가 시작되었다. 이거 이러다가 정말 빠지겠는데?
확실했다. 나의 손톱은 빠지고 있었다. 새로운 손톱이 나와서 예전의 손톱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다시금 투명한 손톱이 올라오면서 멍이 잔뜩 든 손톱들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었다. 며칠 째 시간만 나면 손톱을 관찰했다. 이건 정말 빠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가 보다. 이럴까봐 얼마나 조심했는데 나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새로나고 있는 손톱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이 4월말이다. 2달이 넘게 자라난 손톱이 이제 겨우 2mm정도 보이는 수준이다. 손톱은 대략 1.5cm 아무리 빨라도 일년은 있어야 정상적인 손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동안 손톱을 바라보던 나는 무언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손톱도 그렇구나. 새로이 나기 위해서는 예전에 것들을 모두 다 빼어내는 구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구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은 후 칼럼을 쓸 때, 나는 갑자기 책 읽기에 관한 소재가 스쳐갔다. 무슨 연관이 있나 하며 생각도 해보았지만 왜 갑자기 그것을 쓰려고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찾아온 생각을 그냥 흘러가라고 보내버리긴 싫었다. 그래서 조금 억지스럽더라도 글을 썼다. 책과 관련이 없다고 뭐라고 하시지는 않을까 걱정 하면서. 책읽기를 썼더니 어린 시절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를 보내고 다시금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엄지손톱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결국 내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 변화, 가장 밑둥 부터 흔들어 놔야 하는 것이 변화라고.
손톱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 순간부터 이미 빠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만 제 안에서 제 나름대로 낡은 손톱을 버리고 새로운 손톱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분주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은 전혀 보지 못하고 예전의 손톱을 지키기 위해 버둥거렸다. 수선스레 손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누군가 내 손을 잡을라치면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프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는데 나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전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켜지지도 않는 것을.
신체는 그렇게 알고 있다. 몸은 그렇게 반응을 한다.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그것이 나를 괴롭히는 원인이 된다. 지키려고 하는 내 마음이 생활을 제약하고 남들이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게 하며,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게 한다. 그럼으로 인해 내 생활은 통증이고 고통이 되어버린다.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내 마음으로 인해서.
변화의 시작은 우연히 시작될 수 있다. 실수로도 시작될 수 있다. 그 변화는 나의 부분을 밑둥부터 흔들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란 그런 것이다. 혁신이란 그런 것이다. 우연히 새해 첫날부터 다치게 된 손톱 하나가 나에게 이런 사실을 가르쳐 준다.
손톱이 다 자라나 예전의 모양을 갖추게 되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 동안에 내가 먹은 것들과 내가 숨 쉬는 것들이 나의 손톱을 새로이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 새로운 손톱이 자라는 모양을 나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단 하나도 예전의 것을 남기지 않고 새로운 손톱이 형성되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나의 손톱은 새로운 탄생의 순간을 맞은 것이다. 나 역시 손톱과 같은 일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손톱처럼 예전의 것들을 남기지 않고 허물을 벗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 안에서 시작되어 아주 자연스레 나의 손끝 발끝까지 퍼지게 될 것이다. 내 가장 안에 있던 것들이 내 몸의 가장 자리까지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새로 나는 손톱은 대개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한다. 못나게 자라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마 왼쪽 엄지손톱을 가장 예뻐하게 될 것이다. 조금은 못나게 자라나더라도 나에게는 이 손톱이 나와 함께 자라난 보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