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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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누가 나에게 답을 알려줬으면 좋겠어란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사람이 관계를 떠나서 살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서점에 가보면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처세’라는 단어는 익숙하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나 스킬skill정도로만 알고 있는 ‘처세’의 본뜻은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내가 주체가 되어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처세의 참 뜻이다.
그런데 방법적인 것에만 매달려 나를 맞추려다보니 방향을 잃고 우왕좌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에 억지로 나를 맞추려고 하다 보니 결국 나는 사라지고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을 채 어정쩡한 모습으로 삶은 방향을 잃고 나와는 맞지도 않은 방법에 이끌려 흘러가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삶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엉뚱한 것에 나를 끼워 넣은 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보편적으로 통하는 진리는 있어도, 보편적으로 통하는 처세술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고 그에 반응하는 행동 또한 다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첼리스트 초청 연주회가 있었다. 마침 미사 직후에 연주회가 있어 연주를 듣게 되었는데 내 앞줄 대각선에 앉아있는 한 아줌마가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 카메라 셔터 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한두 번 찍고 말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연주 중간 중간 끊임없이 찍어대는 것이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가서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연주회와는 멀어져 있었다. 한편으론 그 아줌마를 씹어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쉬는 시간에 가서 어떻게 말을 할까? 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연주하는 분이랑 관련 있으신가요?, 혹시 부인이라도 되세요?”, “연주회에서 사진을 찍지 않는 건 기본 에티켓인거 모르세요?”, “공연장 안 가보셨어요?,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에 사진 찍게 하는 거 보셨나요?” 등등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근데 어떻게 얘기하지? 저렇게 얘기하면 본전도 못 건질 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기열전>에서 보았던 유세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내 의도를 전달하면서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그 아줌마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생각하는 것도 지쳐 되도록 신경을 안 쓰는데 노력을 하고 연주를 들으려고 애쓰다 보니 조금 덜 거슬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연주회 중간에 내가 그 카메라 셔터 소리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는데도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연주보다는 아줌마가 카메라를 드는 순간에만 더 집중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한 일이다. 그 아줌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 순간 우리 모두의 목적은 연주를 감상하는 것이었으니깐. 하지만 나는 연주가 아니라 저 아줌마가 카메라를 또 들려고 하나, 젠장 사진을 또 찍네, 무식한 아줌마 같으니라고...로 마음을 채우고 있어 아름다운 음악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건 순간이었고 연주는 그보다 훨씬 더 길었으니 잠깐의 거슬림을 참았다면 나는 좋은 음악에 흠뻑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슬리기로 치자면 나보단 그 바로 앞에, 뒤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더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도, 뭐라고 타박을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 아줌마의 행동으로 보아 말을 해도 소용이 없고 그 위치가 연주자의 바로 정면이었으며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괜한 말을 꺼냈다가 연주자에게 방해만 줄 뿐이라는 생각에 가만히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어쩌면 나와는 달리 전혀 신경이 안 쓰이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 내 생각일 뿐이다.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 거라는 것이다. 이렇듯 혼자서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같은 상황에 단 한 두 사람만 더 모여도 그 생각이 얼마나 많아 질 수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그에 반응하는 행동 또한 다양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에 연주자는 작품의 소개와 함께 이런 말을 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좋은 음악이란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자신은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나는 시대를 능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시대의 음악을 한 단계 높여주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약 보편적인 처세술이 존재한다면 이런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하지 않을까?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서고, 의식을 한 단계 높여주는 것이 진정한 처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얄팍한 수법에만 길들여져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된다면 약삭빠르게 당장 자신의 이득은 취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섬에 살게 된다면 이득을 취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전히 한편으로는 상황, 상황에 맞는 정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서점에 널려있는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들춰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엔 나에게 꼭 맞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알맞은 처세술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보단 모든 상황마다 맞아 떨어지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진정한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 아줌마는 내가 뭐라 말할 기회도 가질 수 없게 연주도중 반대편으로 가서 연신 셔터소리를 내가면서 사진을 찍더니 사라져 버렸다. 과연 그 아줌마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들 내가 가서 한 마디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마 나는 직접 가서는 얘기는 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뒤에서 제발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큰 소리로 몇 마디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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