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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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p210(사기열전, 사마천)
사람의 마음에 대한 목마름이여…
항상 사람들을 만난다. 매일 무척이나 다양한 사람들-회사 동교, 거래처 사장님, 친구들, 학교 선후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식당 직원분 등-을 만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이들 중에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고, 썩 반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나 역시 내가 만나는 이들 중에 몇 년만에 봐도 어제 본 것처럼 편하고 좋은 사람도 있고, 거의 매일 얼굴을 봐도 항상 거리감이 느껴지고 불편한 사람이 있다. 내가 타인에게 어떤 마음인지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유독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내게 던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와의 대화 중에 '너 그때 좀 오버했어.'라는 말을 던졌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그때부터 혼자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때의 상황이 어땠는지,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내가 왜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인지,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 받은 사람이 더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지금이라도 사과해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라는 사람은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얻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가보다. 그래서인지 이미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무언가 부족하고 더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 모두에게 마음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람의 마음에 목말라 있다. 주변에 사람들이 참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풍요 속 빈곤.
나는 지금껏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아는 사람이 참 많다.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정작 외롭고 힘들 때에 연락을 할만한 사람이 없다. 비가 오기 전, 잿빛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나 일이 조금 일찍 끝나서 왠지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울 때가 있다. 평소에 그 흔하던 약속 하나 없는 그런 날. 맥주 한잔만 시원하게 마시면서 수다 떨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이럴 때면 핸드폰을 꺼내 든다. 그리고 연락처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을 쭉 훑어본다. ‘내가 지금 연락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지?’라고 생각하며 연락처를 열심히 찾아보지만, 막상 편하게 연락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다. 겨우 용기 내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을 1-2명 찾아 연락을 해 보지만, 이런 날은 꼭 바쁘다. 이상하게 늘 사람들 틈에 있지만,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게 많은 이들 중에 내가 정말 외롭고 힘들고 왠지 모르게 센티멘탈해 질 때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수박 겉핥기식 인간관계
사실은 만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나,만나서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몇 명 안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뜬금없이 술마시자고 연락을 했는데, 고맙게도 누군가가 바로 내게로 달려와 주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내게 물어본다. ‘무슨 일있어? 왜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은거야?’ 사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용기가 없다. ‘요즘, 이런 일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이러한 감정이고, 그 감정으로 인해 관계도 이렇고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라고 나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나 말할 용기가 없다. 지금까지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온 방식을 되돌아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초,중,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매년 학년이 바뀌었다. 그래서 소수의 몇 명의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매년 바뀌었다. 1년동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바뀌게 마련이다. 내게 친구의 유효기간은 ‘1년’이었다. 1년간만 즐겁게 생활하면 된다. 웃으면서 학교에 있는 그 시간동안 잘 지내면, 친구도 나도 서로에 대해 적당히 알게 된다. 적당히 알게 되는 것에서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는 타이밍에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학창시절의 이런 짧은 유통기한의 관계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대학에 오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많이 변하게 되었다. 관계의 유통기한이 좀 더 길어졌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유통기한이 길어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유통기한이 짧은 관계에서의 소통에 익숙해져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의 모습도 적당히-내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는 것. 그래서 내가 만나는 이들과의 관계들 중에 언제든 내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막상 외롭고 힘이 들 때 전화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유리벽 만들기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는 내게 편안함을 준다.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모임 등에서 오래간만에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이다. 이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어 주는 유리벽이 존재한다. 이 유리벽이 상대방에게는 보이지 않아, 내게 한걸음 다가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한 걸음 뒤로 간다는 것을 상대는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가오려고 하면 나는 계속 도망치는 느낌이 든다. 뒷걸음질로 계속 도망가다가, 절벽에 이르러 더 이상 뒷걸음질 칠 수 있는 공간조차 없을 때가 있다. 이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절벽 아래로 떨어져 관계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 유리벽을 깨고 다가가는 것 혹은 그냥 그 자리에서 멈춰 더 이상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대부분 관계를 정리하거나 혹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거나, 그 자리에 멈춰서서 숨죽이고 기다렸다. 유리벽을 깨고 다가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주 가끔 유리벽을 깨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내가 외롭고 쓸쓸할 때 연락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심리적 거리가 있으면, 나는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 또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은 감출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관계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감추고 싶은 나.
'내면의 감정', 혹은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이 어렵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내 감정과 나의 욕구를 쉽사리 얘기 해 본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맏이인 나는 어릴 적부터 말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매 학기마다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통지표에 선생님은 항상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말을 적어 주셨다. 친척들은 내게 늘 '착하다'라는 말을 했다. 큰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고, 항상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면 군말 없이 다녀오고, 어린 동생들을 잘 봐주는 그런 착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 흔히 또래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떼를 쓰는 것처럼, 나는 특별히 뭐가 먹고 싶다거나, 가지고 싶다거나 해서 떼를 써본 기억이 별로 없다. 분명히 먹고 싶은 것도 있었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 어린 아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애어른 같다’라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는 다툼이 잦았다. 어린 나의 눈에는 아무 잘못도 없는 엄마에게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걸고 싸움을 붙이는 아빠는 나쁜 사람이었고, 엄마는 그런 아빠랑 아이들 때문에 헤어질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되’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엄마에게 칭찬 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했던 행동과 생각들이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을 이끌어 가는 커다란 기준이 되었다. 내 감정을 솔직히 얘기하면 들어주는 사람에게 왠지 짐이 될 것 같아서, 나의 감정은 되도록이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쓴다. 혼자 해결을 하다 보니,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도망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거나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 싶으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다시 세상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그래서 나를 아는 주변이들은 내가 별 고민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진짜 힘들 때, 투정부리는 소수의 몇명을 제외하곤 말이다. 이 때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고 성인군자와 같은 이상향을 기준으로 삼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감정노동에 빠진 사람-’의 시작이었나보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어릴 적, 늘 가지고 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 덕분에 늘 내 감정을 누르고, 가족들의 감정에 눌려 살면서 쌓이고 쌓인 캐캐묵은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들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족들과 심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어쩌면가족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편안한 느낌을 가지게 된 경험 덕분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두기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덕분에 그 동안 사람의 마음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 덕분에 사람들에게 마음을 더 많이 열지도 못했다. 이제는 타인의 마음을 구하기 이전에 ‘나의 마음’을 구하고 싶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기 전에, 스스로 편안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고 싶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에 부합하며 사는 삶이 아닌 나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갈 것이다.

다음주부터는 홍대나 가회동쪽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 것 같습니다.^^(홍대 언저리에서 벗어나질 못하는.;;ㅋㅋ)
선생님이 전화주시면 열일 마다하고 번개처럼 나가야죠!!! ㅋ 그런 날이 오면 저는 생각하겠쬬? "천하의 선생님도 만나고 싶은데 아무도 못찾을 때가 있구나...(라며 위안을 삼을지도.ㅎ)"
누군가에게 누군가가 되는 것이 함께 산다는 것이다.
이 말씀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고 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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