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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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웃음
엔지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급하게 일어난 그녀의 의자는 뒤로 넘어갔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엔지는 신고 있던 실내용 슬리퍼를 오른손에 들었다. 천천히 그러다 조금은 빠르게 그녀의 몸동작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엔지는 혼자서 베란다 이중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신나는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나비처럼 가볍고 우아한 몸 동작의 춤은 생소했다. 그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괴롭히던 똥파리가 내 눈앞에 떨어졌다. 도시와 다르게 문만 열면 고공제트 하강하는 속도로 엥~ 하고 들어오는 것이 파리들이다. 게다 어찌나 큰지 아주 징그러웠다. 파리가 들어오면 목을 사방으로 돌리며 그들을 쫓느냐 잠을 포기 해야 했다. 죽은 파리를 휴지에 싸서 변기에 꾹 누른 후, 엔지는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니며 말했다. “자신의 삶의 하루하루를 춤을 추며 보내라. 비록 그 춤의 마지막 파트너가 죽음일지라도.” 그녀가 파리 잡는 모습이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삶을 살아가는 역동적인 춤이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춤과 웃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무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녀가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생각도 멈춰 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돌고 또 돈다. 방울이도 앞발을 모아들고 인간들처럼 두 발로 서서 그녀의 옆을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사랑하지 말아야 할 상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털에 부채 모양의 꼬리, 아주 발랄하게 춤을 추고 있는 방울이가 아니라, 가늘고 하얀 발목을 가진 엔지였다.
나는 그녀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장 얼굴로 뛰어가 뺨과 턱 부위를 핥아 주고 싶었다. 우리들은 인간들의 살갗에 있는 소금기나 입 주변의 음식 냄새로 핥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너무 좋아해 퍼붓는 애정의 증표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녀에게 진한 사랑의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엔지는 근처에 내 혀가 가까이 오면 질겁을 하고 얼굴을 뒤로 빼는 바람에 뽀뽀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 그러면 그녀의 품에 안기는 일을 시도해야 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귀여운 자세가 필요했다. 한 발을 코 위에 올려놓거나, 다리를 맥없이 위로 올리고 발라당 누워 목을 15도 꺾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눈빛이었다. 눈에 힘을 풀고 그녀를 쳐다 보아서는 안 된다. 이 방법은 십중팔구 성공하기 마련이다. 귀여운 자세를 제대로 취하기만 하면,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작업하는 것을 잊어 버리고 가슴에 나를 안아 들었다.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내려다 보는 세상은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엔지가 방울이와 나를 차에 태웠다. 창문을 조금 열고 음악을 틀었다. 방울이와 나는 앞발을 나란히 포개 차 문턱에 걸쳤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훈훈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달리는 속도에 방울이 귀는 뒤로 제쳐지고 눈은 반쯤 감고 있다. 혀를 길게 늘이고 흥분해서 나온 침은 혀끝에 매달려 뒤쪽으로 바람을 타고 있었다. 내가 앞 자리에 있길 망정이지 아니면 완전 방울이의 침 세례를 받을 뻔 했다. 나는 코를 벌름 거리며 신선한 공기와 속도를 즐기고 있었다. 아니 엔지와 음악을 들으며 꽃 길을 달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방울이만 없었으면 분명 엔지는 나를 무릎에 올려 놓고 체온을 느끼며 드라이브를 했을 텐데 문제는 항상 방울이다. 내가 엔지의 무릎으로 가는 동시에 그 커다란 몸집으로 운전하는 엔지를 덮쳐 나를 밀어내고 눈을 껌쩍껌쩍 하며 이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고 앉아 있을 것이다. 나와 엔지와의 둘만의 데이트를 위해 방울이를 떼 놓는 작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 왔다. 애들아.” 드라이브를 자주 할 기회는 없지만 즐거운 놀이 중의 하나이다. 일상의 지루함과 세상 밖과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그 햇살은 나뭇잎에도 작은 돌멩이 위에도 머물렀다. 엔지는 산책을 멀리 나갔다. 목줄이 풀어진 개가 없는 곳으로 쥐약이 없는 곳으로 말이다. 나는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엔지와 나란히 걸으며 방방 뛰는 방울이와 산책을 즐겼다. ‘자유’ 그 자체였다. 길을 사이에 두고 벚나무 꽃이 활짝 피어서 환한 빛을 품어내고 있었다. 코를 끌며 땅 기운의 흙 냄새를 즐겼다. 떨어진 벚꽃이 나의 코 끝을 간질였다. 축축한 코 끝에 벚꽃 잎이 하나 찰싹 달라 붙었다. 머리와 몸통을 털어 보아도 그 꽃잎은 내 코끝에 달라 붙어 있었다. 엔지는 한바탕 웃었다. 나는 붙은 꽃잎 한 장도 엔지의 도움 없이는 뗄 수 없었다. 나는 엔지에게 웃음을 주고 엔지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며 살아간다. 엔지가 벚꽃 잎을 모아 하늘로 뿌리며 “오리오, 너도 춤을 춰봐. 자 이 꽃잎을 따라 뛰어 보라고…. 나는 인생을 춤을 추듯 순간에 몰입해서 느끼며 살고 싶어. 그리고 많이 웃으며 사는 거야.” 그녀는 비장한 각오로 자기의 삶을 다시 정리하며 다짐을 하는 모습이었다. 눈처럼 날리는 꽃잎 사이로 엔지는 손바닥을 벌리고 꽃잎을 잡겠다고 뛰어 다녔다. 덩달아 뛰는 방울이의 발 끝에 하얗게 핀 민들레 홀씨들이 작자 제 갈 길로 날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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