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이은주
  • 조회 수 2393
  • 댓글 수 14
  • 추천 수 0
2011년 5월 3일 09시 54분 등록

춤과 웃음

 

엔지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급하게 일어난 그녀의 의자는 뒤로 넘어갔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엔지는 신고 있던 실내용 슬리퍼를 오른손에 들었다. 천천히 그러다 조금은 빠르게 그녀의 몸동작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엔지는 혼자서 베란다 이중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신나는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나비처럼 가볍고 우아한 몸 동작의 춤은 생소했다. 그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괴롭히던 똥파리가 내 눈앞에 떨어졌다. 도시와 다르게 문만 열면 고공제트 하강하는 속도로 엥~ 하고 들어오는 것이 파리들이다. 게다 어찌나 큰지 아주 징그러웠다. 파리가 들어오면 목을 사방으로 돌리며 그들을 쫓느냐 잠을 포기 해야 했다. 죽은 파리를 휴지에 싸서 변기에 꾹 누른 후, 엔지는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니며 말했다. “자신의 삶의 하루하루를 춤을 추며 보내라. 비록 그 춤의 마지막 파트너가 죽음일지라도.” 그녀가 파리 잡는 모습이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삶을 살아가는 역동적인 춤이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춤과 웃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무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녀가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생각도 멈춰 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돌고 또 돈다. 방울이도 앞발을 모아들고 인간들처럼 두 발로 서서 그녀의 옆을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사랑하지 말아야 할 상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털에 부채 모양의 꼬리, 아주 발랄하게 춤을 추고 있는 방울이가 아니라, 가늘고 하얀 발목을 가진 엔지였다.

 

나는 그녀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장 얼굴로 뛰어가 뺨과 턱 부위를 핥아 주고 싶었다. 우리들은 인간들의 살갗에 있는 소금기나 입 주변의 음식 냄새로 핥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너무 좋아해 퍼붓는 애정의 증표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녀에게 진한 사랑의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엔지는 근처에 내 혀가 가까이 오면 질겁을 하고 얼굴을 뒤로 빼는 바람에 뽀뽀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 그러면 그녀의 품에 안기는 일을 시도해야 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귀여운 자세가 필요했다. 한 발을 코 위에 올려놓거나, 다리를 맥없이 위로 올리고 발라당 누워 목을 15도 꺾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눈빛이었다. 눈에 힘을 풀고 그녀를 쳐다 보아서는 안 된다. 이 방법은 십중팔구 성공하기 마련이다. 귀여운 자세를 제대로 취하기만 하면,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작업하는 것을 잊어 버리고 가슴에 나를 안아 들었다.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내려다 보는 세상은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엔지가 방울이와 나를 차에 태웠다. 창문을 조금 열고 음악을 틀었다. 방울이와 나는 앞발을 나란히 포개 차 문턱에 걸쳤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훈훈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달리는 속도에 방울이 귀는 뒤로 제쳐지고 눈은 반쯤 감고 있다. 혀를 길게 늘이고 흥분해서 나온 침은 혀끝에 매달려 뒤쪽으로 바람을 타고 있었다. 내가 앞 자리에 있길 망정이지 아니면 완전 방울이의 침 세례를 받을 뻔 했다. 나는 코를 벌름 거리며 신선한 공기와 속도를 즐기고 있었다. 아니 엔지와 음악을 들으며 꽃 길을 달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방울이만 없었으면 분명 엔지는 나를 무릎에 올려 놓고 체온을 느끼며 드라이브를 했을 텐데 문제는 항상 방울이다. 내가 엔지의 무릎으로 가는 동시에 그 커다란 몸집으로 운전하는 엔지를 덮쳐 나를 밀어내고 눈을 껌쩍껌쩍 하며 이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고 앉아 있을 것이다. 나와 엔지와의 둘만의 데이트를 위해 방울이를 떼 놓는 작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 왔다. 애들아.” 드라이브를 자주 할 기회는 없지만 즐거운 놀이 중의 하나이다. 일상의 지루함과 세상 밖과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그 햇살은 나뭇잎에도 작은 돌멩이 위에도 머물렀다. 엔지는 산책을 멀리 나갔다. 목줄이 풀어진 개가 없는 곳으로 쥐약이 없는 곳으로 말이다. 나는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엔지와 나란히 걸으며 방방 뛰는 방울이와 산책을 즐겼다. ‘자유그 자체였다. 길을 사이에 두고 벚나무 꽃이 활짝 피어서 환한 빛을 품어내고 있었다.  코를 끌며 땅 기운의 흙 냄새를 즐겼다. 떨어진 벚꽃이 나의 코 끝을 간질였다. 축축한 코 끝에 벚꽃 잎이 하나 찰싹 달라 붙었다. 머리와 몸통을 털어 보아도 그 꽃잎은 내 코끝에 달라 붙어 있었다. 엔지는 한바탕 웃었다. 나는 붙은 꽃잎 한 장도 엔지의 도움 없이는 뗄 수 없었다. 나는 엔지에게 웃음을 주고 엔지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며 살아간다. 엔지가 벚꽃 잎을 모아 하늘로 뿌리며 오리오, 너도 춤을 춰봐. 자 이 꽃잎을 따라 뛰어 보라고…. 나는 인생을 춤을 추듯 순간에 몰입해서 느끼며 살고 싶어. 그리고 많이 웃으며 사는 거야.” 그녀는 비장한 각오로 자기의 삶을 다시 정리하며 다짐을 하는 모습이었다. 눈처럼 날리는 꽃잎 사이로 엔지는 손바닥을 벌리고 꽃잎을 잡겠다고 뛰어 다녔다. 덩달아 뛰는 방울이의 발 끝에 하얗게 핀 민들레 홀씨들이 작자 제 갈 길로 날아 올랐다.

IP *.42.252.67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1.05.03 10:19:03 *.30.254.21
은주야.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입에 착착 붙어...
춤이 나와서 그런가?
암튼, 좋다. 너 다운 글이다.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1.05.03 10:36:19 *.42.252.67
심각해도 한 세상, 웃고 살아도 한 세상.
너는 늘 웃지. 그래서 좋아.
웃음은 무심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문 중의 하나이지.
또 하나는 춤이지.
고마워 ^^ 우리 웃고 살자.ㅎㅎㅎ
프로필 이미지
햇빛처럼
2011.05.03 10:34:34 *.169.188.35
춤선생님이셔서 이런 글을...
그 때 그 시간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1.05.03 10:38:54 *.42.252.67
안녕하세요? 오늘 햇빛이 햇빛처럼님 처럼 밝은 날입니다.

ㅎㅎㅎ 어찌 제가 춤 선생이 되었는지......

이참에 신바람 춤여사로 전업을 해 볼까요?

그 시간 저도 그립네요. ^----------------------------------^

프로필 이미지
상현
2011.05.03 11:16:38 *.236.3.241
오리오의 시선이 참 차분합니다.
그래선지 풍경 하나하나를 좀더
세심하게 들여보고 있네요. 사물
의 소소한 면들이 들어온다는 건
바라보는 이에게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일테니~ 기쁘기 그지 없음이오 ㅎㅎ

개인지 아닌지 낯가림이 없어진 글
편하게 잘 읽었슈^^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1.05.05 10:27:15 *.42.252.67
후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기쁘기 그지 없다하니 나도 기쁘네.
그냥 계속 쓰는거야. 무조건 쓰고 정리는 나중에 할거야.
그래서 아주 소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쓰고 있어.
프로필 이미지
2011.05.03 12:02:15 *.230.26.16
글의 분위기가 좀 바뀌었어요 ^^
떨어져 버린 벚꽃 다음에는 또다른 꽃들이 활짝 피어나겠죠?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신나게,
그 글들이 두고두고 우리를 기쁘게 할 것을 믿어요 ^^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1.05.05 10:29:07 *.42.252.67
너무 아름다워 햐~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5월이야.
아침부터 개 두마리를 거느리고 텃밭에서 열무파서 저녁 국거리 장만 해놓고
아욱씨 뿌리고 신나게 놀다 들어와 컴에 앉았다.
아주 기분 좋고 기쁘네.^^
어린이날 아이들과 즐겁고 기쁘게 보내, ^^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1.05.03 12:23:56 *.10.44.47
오리온지 엔진지 구분이 없어진 거 맞아요.
그게 사는 거겠죠?

나인지 너인지, 우린지 너흰지
스스럼없이 무너지고도 또 무너지지 않는 힘.
언니의 글에서 또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고마워요. 언니. 
그리고 힘내요!! 고지가 머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언니..나 믿죠? ^^ 
프로필 이미지
2011.05.04 06:23:25 *.111.206.9
'많이 웃으며 사는거야'

오늘 아침, 이 문장이 해처럼 떠올라요.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1.05.05 10:30:05 *.42.252.67
하지만 이론만 알고 안 웃으면 그 문장은 달처럼 져버리는 거 알지?
많이 웃자 . 하하하하 이렇게. ^^
프로필 이미지
양갱
2011.05.05 06:57:14 *.166.205.131
선배님을 생각나게하는 사진전이 있네요.

yks_2015_inline0_1304545508479626000.jpg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1.05.05 10:37:08 *.42.252.67
내가 인도에 가서 완전 반한것이 저 사진같은 장면이야.
쪼만한 담요 헌 자락이면 지나가던 개, 고양이 원숭이가
사람과 같이 웅그리고 쉬고 있다. 물론 그들의 주인도 아닌데 말이야.
너도 가봐서 알지?
가까우면 당장 뛰어가서 보련만 15일까지이니 날 잡아 올라가야 겠다.
그냥 보면 마음이 아주 평화로울 것 같아. 정보 고마워. 갱수야~~^^
프로필 이미지
2011.05.05 22:26:25 *.230.26.16
시간 맞으면 같이 가요 ^^
연락주세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72 칼럼. 두친구 그후 - 겁나는 반성문 [14] 연주 2011.05.03 2396
2371 사랑과 우정을 넘어 [10] 2011.05.03 2076
2370 방사능비를 어찌할까 [11] 박상현 2011.05.03 2109
2369 [01]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18] 최우성 2011.05.03 2103
» 춤과 웃음 [14] 이은주 2011.05.03 2393
2367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스트레스 [13] 달팽이크림 2011.05.03 2050
2366 칠연계곡 다녀오던 길 file [18] 신진철 2011.05.03 2185
2365 [호랑이] 시장성 진단에 대한 설명 crepio 2011.05.03 2126
2364 사물열전 (사물에게 말걸기) file [14] 사샤 2011.05.02 2125
2363 자식은 태어 난지 삼 년이 지나면 부모 품을 벗어난다 [14] 루미 2011.05.02 2435
2362 05. 마음 구하기 [14] 미나 2011.05.02 3069
2361 그 별들은 다 어데로 갔을까 [8] 신진철 2011.05.02 2326
2360 [양갱4] 맞선 자, 거스른 자, 비껴간 자 file [16] 양경수 2011.05.02 3896
2359 5. 상황에 대처하기 [16] 미선 2011.05.02 2019
2358 나비No.5 - 보스열전 [9] 유재경 2011.05.01 3761
2357 [늑대5]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10] [1] 강훈 2011.05.01 2133
2356 [평범한 영웅 005] 떠나거나 아니면 새로운 철학을 찾아라 [12] 김경인 2011.05.01 3801
2355 라뽀(rapport) 49 - 마음의 혹 [3] 書元 2011.04.30 2052
2354 단상(斷想) 62 - relax & relax file [3] 書元 2011.04.30 5879
2353 [호랑이 실험 11- 세미나 후, 4장 구성 재정리 및 향후 호랑이 스케쥴] [3] 수희향 2011.04.28 2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