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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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넘었다. 잠잠하던 삶의 고민들이 일시에 침범해 오고 그것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린다.
잘 가던 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어린애처럼 걸음이 엉키더니 제 걸음을 찾지 못한다.
"보이스 비 엠비셔스"하며 스스로 달래보지만 쉽지가 않다.
인생이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아질지도 의문이고, 살아지지 않았을 때 감내하여야 하는 많은 것들이 나를 두렵게 한다.
수급은 지루하게 이루지지만 상실은 삽시간에 이루어진다. 여태껏 마음 다스리며 쌓아온 것은 걱정과 두려움에게 너무 쉽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삼국유사를 읽는다. 역사 속 인물들은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로 나를 구원할 거라 기대하며 단서를 발견해보려고 애쓴다. 역시나 처음부터 기대에 부응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곰과 호랑이가 있고, 하늘님은 이들에게 백일 동안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라 한다. 하늘님의 얼굴과 사부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나는 곰과 호랑이의 어디쯤에 나를 이입시킨다. 곰은 햇빛을 보고 싶고, 벌통을 빨고 싶고, 뭔가를 물어 뜯고 싶었겠지만 이것을 견디어 내고 드디어 신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전율을 맛본다. 호랑이는 고기 맛을 잊지 못해 뛰쳐나가고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호랑이는 오늘도 직장에서 바둥거리는 나의 친구들이요 나는 신의 약속된 미래를 위해 오늘도 마늘과 쑥을 뜯고 있는 곰이라는 위안을 얻는다.
더 나아가 이 느낌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곰이 맞이하였던 그 아침을 상상해 본다. 효과가 있다. 필이 온다.
어둠을 견디고 이긴 자만의 아침, 고난의 길고 긴 어둠을 깨치고 곰이 맞이한 희열과 전율에 찬 아침을 생각한다. 나는 동굴의 고치 속에서 벗어나 환한 대낮 하늘로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나방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 속 지녀온 희망들이 다시 대들보처럼 버티어 선다.
단군 신화가 이런 자기성취적 혹은 영웅적 스토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더불어 이런 것을 읽어 낼 수 있는 안목이 나에게 생기다니, 흐뭇하다. 연구원 생활이 그냥 가는 것은 아니구나, 스스로 감탄한다.
그렇게 전개되던 삼국유사는 조신이 판을 뒤엎는다.
승려 조신은 강릉태수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는 여러 번 낙산사의 부처님 앞에 나아가 그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그 딸은 다른 곳으로 출가해 버렸고 기대가 무너진 조신은 이룰 수 없이 된 사랑 때문에 부처 앞에서 원망하여 울다 잠이 든다.
그런데 그의 꿈 속에 간절히 바라던 그녀가 나타나서 원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꿈 속의 삶은 곤궁하고 자식들에게는 조식조차 대지 못하여 큰 아이는 굶어 죽고, 딸 자식은 걸식하다 개에 물려 병들어 죽는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헤어질 것을 청하고 가족은 결국 해체 되고 마는 이야기 이다. 한단지몽(邯鄲之夢)의 세상살이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인생이니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의 배움은 역으로 흐른다. 계속되었던 나의 고민에 조신의 이야기가 틈입하더니 엉뚱한 지점에 이른다. 가난하니 죽도 밥도 아니구나. 더욱 욕심 내어 아내와 자식을 위해 돈을 벌어두어야 하고, 꿈도 좋지만 속세의 의지를 한층 더 강화하여 현실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라고 이야기한다. 단군의 동굴에서 막 벗어난 나는 다시 플라톤의 동굴 속으로 깊이 처박히는 느낌이다.
같은 이야기를 사이에 두고 조신은 부처님의 큰 뜻을 이해했고, 나는 현실의 무게 앞에 속세의 의지를 강화한다.
단군신화와 조신설화는 매일 반복되어 일어나는 내 안에 있는 전쟁의 실체이다. 우군과 적군이 명확이 구분되지만 그것들의 실체는 희미하다. 우군의 힘을 명확이 정의할 수 없는 것은 공격할 힘을 떨어뜨리고 적군의 실체가 희미한 것은 그를 베어낼 수 없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마음 속 전쟁은 게릴라전처럼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이번처럼 백병전으로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마음은 이래 저래 상처다. 어쩔 때는 고운기 선생님의 말처럼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윤택해진다면...." 하는 말처럼 내 맘속의 전쟁도 어느 쪽으로든 우열이 확연히 갈라져 그것에 그냥 충실해 지고 싶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렇듯 베이고, 베는 전쟁의 싸움터에서 나는 어디쯤에 서있는가? 우습게도 나는 우군을 응원하고 있는듯하지만 동시에 적군에게 끊임없이 식량을 공급해주는 배후세력이기도 하다. 어느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몰라 두 세력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 하고 있는 모사꾼처럼.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사람 되고픈 마음을 접고 동굴을 뛰쳐나간 들
마음이 흡족할 만큼의 먹이를 구할 수 있기는 한 걸까?
꿈을 믿어보겠다는 거..
평생 이슬만 먹고 살겠다는 다짐일 리 없겠지요.
기왕이면 내가 기쁜 일을 통해 처자식, 저는 夫자식을 호강시켜보고 싶다는 바램 아닐까요? ^^
넘 노골적이었나? ㅎㅎ
이번주 제가 내린 결론은
꿈을 지키되 조급해 하지 말자! 였습니다.
만약 단군 신화의 곰에게 자기 하나만 목을 빼고 기다리는 딸린 식구가 있었다면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
100일이 아니라 200일, 300일이 걸려도 좋으니 하루에 몇시간은 동굴 밖으로 나가
식구들 먹거리를 마련해주고 오면 아니되겠냐고...하느님께 청해보지 않았을까요?
만약 곰에게 이런 청을 받았담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
암 걱정없이 '꿈'만을 따를 수 있는 복받은 환경의 소유자들만 꿈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넘 비관적인 세계관인 거 같아서...적어도 저는 확실히 거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결국 제 세상은 '제 생각대로' 풀리기 마련일테니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