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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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은 시간이라든가 구조라든가 어떤 기제에 실릴 경우 사실 이상의 사실이 된다.
한 덩어리의 이야기는 사실 이상의 사실이 넘어간 그 어디쯤에서 완성된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中, 고운기>
<삼국유사>의 탑상(搭像)편에는 수많은 절과 탑, 불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 글들을 보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이런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연이 썼듯이 고대의 절과 유적에 관한 글 말이다. <삼국유사>는 일연에 의해 고려시대인 13세기에 쓰여 졌다. 일연은 걸으면서 이 땅을 읽었고, 그 현장 감각으로 고대 삼국의 역사를 글로 썼다. 나도 현대의 감각을 가지고 나의 눈으로 보고, 느낀 대로 글을 써본다. 그러므로 내가 쓴 이 짧은 글은 21세기의 내가 13세기의 일연을 느끼는 글이며, 고대 삼국의 모습에서 현대를 넘나드는 정겨운 대화이다.
경주여행에서 진평왕릉과 황룡사터에 서서, 앉아서, 놀면서 느꼈던 것이 있다. 거기서 그러고 있는 내가 참 신기하다는 것 이었다. 천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원효와 의상 또한 일연이 거닐었던 그곳에 내가 서있구나 하는 생각. 고대인들의 노동이 만들어낸 건축물 앞에 서있는 야릇한 신성함. 그 순간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이 역사라는 깨달음이 오고,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의식의 도약까지 스쳐갔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신기했다. 그랬던 경주의 기억을 떠올리니 내가 사는 이곳 당진 근방의 개인적으로 자주 찾아가는 신성한 장소가 떠오른다. 그곳은 서산 마애삼존불과 보원사터다.
보원사(普願寺)는 백제 말기에 창건하여 고려조에 이르러 99채의 절집을 갖춘 대찰이었다고 전해진다. 창건시기를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로 보기도 하지만 백제의 금동여래입상과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 마애삼존불의 발견으로 백제 때의 절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때는 고란사라는 이름이었다고 하는데, 사찰의 승려가 많아서 쌀을 씻은 뜨물이 내를 흐르게 했고, 절에서 십여리 떨어진 마을에서 냇물을 떠다 끓여 숭늉으로 마셔 그쪽 벌판 이름이 숭늉벌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2006년부터 12년 계획으로 발굴을 시작하여, 현재 탑 뒤 쪽 금당지를 중심으로 발굴되었다. 특히 금당지는 예상대로 상당히 큰 규모(102,886㎡)였으며 중심부에는 부처님을 모셨을 거대한 대좌가 놓여있다.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층석탑이 있는데 백제와 신라의 양식을 절충한 양식이다. 현재 드러난 각 건물지 아래에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건물지들이 발견되었다. 현재 소재지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로 구분되고 있으며 상왕산 보원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선조10년(1577년) 『예수십왕생칠제의찬요』가 보원사에서 간행된 사실, 1619년에 편찬된 『호산록』에 기록된 것, 그리고 숙종 8년(1682)에 제작된 『동여고비(東輿備考』에 보원사가 표시된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까지 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 폐사 되었는지 기록은 없다. 그러다가 2004년 12월 9일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 말사로 등록하였고, 현재의 보원사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절집 옆에 서보았는데 그 규모가 한 두 가족이 사는 한옥집 정도로 아담했다.
<보원사터를 사진으로 담는 그들을 내가 또 담았다. 백제와 신라의 양식을 절충해 고려시대에 만들었다는 오층석탑 앞에 그들과 내가 시간을 관통해 서있다.>
보원사터에서 내려오다 보면 다리 하나를 만나게 된다. 아래로 시원한 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서늘하고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절벽을 마주하게 된다. 그 절벽에는 거대한 석가여래가 서있고 보기에 왼쪽에는 보살이 서있으며 오른쪽으로는 미륵불이 앉아 있다. 앉아 있는 미륵불을 반가사유상이라 한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한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로 알려졌으며, 국보 제84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유리벽과 사당 형식의 집으로 막혀 있다가 지금은 철거되어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이곳 사람들은 이 삼존불이 있는 곳을 인바위(印岩)라 불렀다는데 아마 바위에 부처님을 새겼기에 얻은 이름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겠다. 지금이야 도로가 사방으로 뚫려 안 가는데 없이 넓은 길이 나있지만 그 옛날엔 이곳도 첩첩산중이었나 보다. 1959년 이 골짜기를 답사하던 부여박물관장 홍사준 선생은 이곳에 혹 부처님 새긴 것이나 석탑 무너진 것을 본 일이 있느냐며 답사를 다녔는데, 한 나이 지긋한 나뭇꾼이 이렇게 말했다 한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 마누라가 장돌을 쥐고 집어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그 나무꾼의 묘사가 얼마나 탁월한지 한 번 보시라.
가운데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전체적으로 둥글고 풍만하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부처님의 손 모양을 수인(手印)이라 하는데, 이 여래입상의 위아래로 엇갈려 든 수인은 두려움을 없앤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다.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쓰고 있는 왼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그런데 손에는 왜 장돌을 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른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백제인의 미의 기준이 이러했나 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새침한 모습에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세련됐다. 반가상이 조각된 특이한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화경』은 묘법연화경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의 각성이 중국으로 부터 태안반도를 통해 이 길을 따라 들어와 백제와 신라에 까지 이르렀음을 상상해 보라. 이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 앞에서서 천 몇 백년의 세월을 느껴보니 내 삶이 신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 마애불에서 보원사지에 이르러 뒷 길로 산 옆구리를 넘어 한 시간정도 가면 백제 의자왕때 창건된 개심사에 이른다. 이 길은 <신 택리지>의 저자 신정일씨가 소개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걷는길 중 하나다. 나 또한 백일기도를 마치는 날을 기념하며 걸어보았는데 '참 좋다'.
찬미하는 시를 바친다. 일연스님처럼.
개울물로 숭늉 끓여 먹은 풍요로운 마을에,
푸른 계곡, 붉은 바위 돌 틈에 새긴 삼존불.
장돌 들었다 두려워 말고, 내 미소에 화답하시게
우리 모두 부처되는 도를 전해 준다네.
(칼럼사진/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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