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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9일 09시 09분 등록

 

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 화엄경 중에서-


아,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원효가 의상에게-


iPhone_0.jpg

고창 청보리밭에서 - 청보리밭에서는 푸른 바람이 분다 from Pilgrim Soul by Sasha

잡히지는 않으나 느껴지는 바람처럼, 청보리밭 위로 쏴아 쏴아 불어오는 바람이고 싶다. 

언제였는지 문득 바람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그런데 바람은 온몸으로 느껴지지만 결코 잡히지 않았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순간들 조차도 없이 걸리지 않고 빠져나갔다. 그저 느껴질 뿐이였다. 그래서 바람을 사진안에 가두었다. 그렇게라도 바람을 잡고 싶은 나의 욕망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었다. 방랑이란 어쩌면 이런 잡히지 않는 욕망들로 인해 머리가 뜨거워지고 그러면 다시금 머리에 바람을 쐬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길위에서의 생각같다. 바람을 잡겠다는 허황된 욕망을 벗어나서 조금 더 훨훨 자유로울 수 있도록 스스로 바람이되고자 생각해본다. 원효대사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도 물어보지 않았을까 청보리밭에 바람이 부는지 내 마음에 바람이 불고 있는지 말이다. 잡고자하는 욕망도 결국은 마음 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요 돌아보면 바로 이자리이거늘 그 하나를 깨닫기 위해서 방랑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원효대사의 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해서 새삼 새로울 것도 없을 터인데, 삼국유사를 통해서 다시 만나는 원효대사의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라는 말은 푸른 바람이 내 손안에 흔적만 남기고 떠나듯이 보이지 않는 문신이 되어서 가슴 한켠에 남는다. 식지 않는 욕망들을 식히기 위해서 난 다시 순레자의 길을 떠났었고 이 사진 한 장을 마음에 담아 왔다. 고창 선운사 옆 청보리밭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뜨거워진 머리를 식혀주었다. 바람을 놓을 줄 알아야 비로소 바람이 느껴지는 걸까, 꼭 쥐고 놓지 못했던 주먹을 펴니 그 위로 시원한 바람이 텅빈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간다. 

참 이상하다. 다시 돌아올 것인데,  떠나봐야 그 자리를 안다. 

대한민국의 오월이야 어디로 떠나든 아름답기라도하지 그 옛날 영하 30도의 라다크로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들이야 말로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러한 발걸음을 옮겼을까. 저마다 자신안의 영울을 깨우는 길이야 다르겠지만 결국 순례의 길을 선택했을 때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결연한 각오 정도는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한 걸음 떼기가 어려워서 주저한다면 어짜피 가야할 그 길에서의 방랑이 조금 더 길어지는 수 밖에. 현실의 삶 속에서는 그 안에 매몰되어서 잘 보이지 않던 것도 떠나보면 내 안에 함몰되어 있던 작은 빛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을 잡고 싶어하던 쓸데 없는 욕망들도 덧없게 느껴지고, 그저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있는 시선도 생기는 것 같다. 의상과 원효의 길이 달랐듯이 둘다 거침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한 길로 가는 여정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내가 원효에게 좀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그는 매우 인간적인 면모와 성인 혹은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운기 작가가 마치 혁명가 손문의 글에서 그 고마움을 찾듯이 내 방랑의 끝에서 원효대사에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결국 그 첫 새벽을 열었던 힘은 현실의 문제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던지기란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 것 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가 그러한 마음은 있지만 그렇고 그런 삶 속에서 타협하면서 살다가 머리가 좀 뜨거워지면 다시 식히기 위해서 방랑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살아가는 삶의 반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난 방랑과 순례의 차이를 본다. 욕망을 쥐고 있는 텅빈 주먹과 놓아버린 충만함의 차이를 본다. 이제 아는 것의 실천이 남았다. 원효처럼 현실을 밀어붙여보는 배짱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첫 새벽이 된다는 바램은 바람을 잡겠다는 허황된 욕망보다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그 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방랑이 순례로 바뀌는 그 지점이다. 아직도 마음 밖에서 구하고 있다면 그대는 방랑중이다. 하지만 이제 돌아와 마음 밖에 법이 없음을 알고 안으로의 순례를 시작했다면 누군가의 첫 새벽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이된다.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만남이라는 파계를 통해서 자신의 부정을 겪고 원효 아닌 원효로 거듭났다. 나 역시도 그러한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이 방랑의 끝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새로운 길은 방랑의 끝에서 시작된 순례의 길이 될 것이다. 스스로 자기다움을 찾아낼 때에 비로소 뜨거운 머리도 허황된 욕망도 푸른 바람에 고요히 잠들 것이라는 것을 난 이번 방랑의 길 끝에서 느끼고 돌아왔다. 오늘도 청보리밭에서는 쏴아쏴아 1,000년 넘은 바람이 소식을 전하고 있겠지.

바하의 칸타타 149번으로 갈무리 하고자한다. 
잠들어 있는 자신의 영혼을 깨워서 그 수많은 마주침들 속에서 한 길을 보자.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두드리는 노래가 있어서 함께한다. 

눈뜨라 부르는 소리 있도다라는 바흐의 칸타타 149번 중에서

http://www.youtube.com/watch?v=__lCZeePG48 


Bach - Cantata BWV 140 - Peter Schreier - Sleepers wake



사진.JPG

photo by sasha

IP *.4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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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09:48:12 *.160.33.89
바하 노래가 좋구나.
재주가 있으면 여러 길을 이리저리 가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많다. 
그러나 재주가 있으면서 한 길로 나고 죽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나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나 한 길로 가서  지금의 내가 되었고, 
고운기는 너보다  재주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삼국유사 하나로 유명해 졌다.    순례자가 되도록 해라.  
늘 마감에 허덕이더니 글이 몇시간 일찍 올라오니  네 게으름이 좀 나아진 듯 하구나 .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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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4:43:10 *.45.10.22
사부님과 바하를 나누다니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이제 사부님을 만나 제대로 된 한 길로의 순례의 길 시작입니다.
저의 게으름이 조금씩 차도를 보이듯 그렇게
그 길위에서의 방랑도 차츰 잦아들어
눈감고 부유하는 방랑이 아닌
한 길 올곧게 나아가는 순례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늘 힘이되고 용기가되는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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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5.09 10:18:36 *.23.188.173
언니의 하루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음악, 사진, 그림, 글, 또 뭐로 이루어져 있는거야?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맞는거야?????
진짜 언니는 언니가 가진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반성시키는 재주가 있는 듯~
님좀짱인듯~ㅋㅋㅋㅋㅋ
언니 덕분에 음악도 들어보고 사네요~ 맨날 가요만 듣고 있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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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4:45:00 *.45.10.22
뽀로로 완전 중독성 있다고 하던데요 ㅎㅎ
엄마들의 필수 입문 코스라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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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09:45 *.166.205.132
뽀로로 듣는 시간이 더 많을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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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4:44:32 *.45.10.22
루미야~반성이 아니라 새로운 영감의 창출이면 좋겠다 ^^
네 댓글 덕분에 내 하루를 한 번 정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다이나믹한 오늘 하루도 벌써 반이 지나가고 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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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12:24 *.166.205.132
여행을 다녀왔구나.
마음을 담은 사진 하나 가지고.
글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분위기 있다~

넌 이미 행동하고 실천하고 있어~
우리 힘내자!

p.s. (어떻게 하면 저런 분위기 있는 사진을 찍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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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4:46:21 *.45.10.22
말랑말랑해지는 감성을 따라서
그걸 불안해하지말고 놓아두자 생각했어요.
주저하지말고 이끄는대로 가보자고..
행동하고 실천을 모토로 삼아서
실제로 변화를 가져오고 싶어요..
양갱 오빠의 PS는 유독 가슴에 남네요
사진작가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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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49:29 *.205.67.118
언니의 글은 늘 감각적인 느낌을 줘요.
예술쪽에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아서 그런가봐^^
사진에서도 싱싱한 5월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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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4:47:30 *.45.10.22
미선이가 감각적이라 느꼈다면 난 제대로 내가 쓰고자하는대로 쓰고 있는거네
고맙네.. 난 오감이 진동하는 그런 글이면 좋겠다 늘 생각하고 있거든
더 갈고 닦아야겠지..
싱싱한 5월초도 벌써 지나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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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5.09 14:12:00 *.236.3.241

청보리는 해를 넘기며 자란다고 합니다

11월에 뿌리를 내리고 겨울 바람을 맞으며 싹을 낸다고 합니다

땅딸막한 싹들은 흙에 숨어 겨울을 나고

3월에 싹이 고개를 들고 4월에 이삭이 패고,

5월엔 익고 6월엔 거둬지는 게 보리의 삶이라고 합니다

 
겨울을 지나 청보리로 필 날이 오겠지요

바람이 잎을 스쳐 초록에 물들 날이 오겠지요

그것은 어쩌면 이미 당도했지만 의식하지 못한 봄의 첫새벽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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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4:49:23 *.45.10.22
아... 늘 선배님의 말씀에는 절로 귀가 기울여지네요..
가슴에 꾹꾹 새겨담고 싶은 말씀들입니다.
해를 넘기며 자란다는 그 말씀이 위안이며 희망이 되네요.
파블로 카잘스는 93세때에도 끊임없이 연습했다고해요
그러면서 기자가 이제 대가인데 연습은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내가 조금씩 느는 것 같아'라고 했다죠.
선배님 말씀 가슴에 새길게요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올테지만
이번의 봄은 무척이나 기다려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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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09 18:09:34 *.35.19.58
와, 사샤야! 바흐 참 좋다.
사샤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나도 방랑하면서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싶어지네.
사샤의 글, 그림, 사진, 음악 너무 멋스러워 내가 청소리밭에 서있는 것 같아.
봄은 참 살고 싶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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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1:14:54 *.75.194.69
고마워요 언니 ^^ 
언니의 그 감칠맛나는 글을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일단은 머리의 뜨거움부터 가라앉히는게 우선인 것 같아요 저는 ^^
청보리밭 참 좋더라구요 
가족들과 한 번 다녀오셔도 좋을듯해요
Bach를 좋아하신다니 저 또한 기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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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4:53:29 *.109.82.151
응 누나 새벽에 듣는 바흐 너무 좋다..
갑자기 영혼이 촉촉해 지는 이 느낌이 뭘까?
사진과 글과 음악이 어우러진
눈을 감으면 솨아~
시원한 초여름 봄바람이 부는 청보리 밭의 그 내음을 맡고 있는 것 같네.
좋다 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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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1:16:59 *.75.194.69
그치 경인아? 영혼을 적시는 곡이지.. 바흐는.. 
오늘도 봄비가 내리네..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으로 갈 모양이다.. 
행복한 휴식되고 
청보리밭의 풍경 함께 느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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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8:02:14 *.219.84.74
글이 바람처럼 가벼이 좋은 느낌이다. 음악과 어울려서 들으니 더 좋다.
어떤 시선, 어떤 정서, 내 안의 어떤 가치와 공명하는 언어를 만나면..
그럴때면 조금은 덜 외롭다고 느낀다.
여기에 와서 글을 읽으면 그런 느낌이든다. 사샤의 글도 그렇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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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5.17 06:16:26 *.30.230.99
바하를 이제서야 듣고 있음.. 언니 글은 항상 읽고 나면 가슴이 촉촉해지는 느낌이에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고 부러운 일..ㅋ^^ 사진도 느무느무 좋아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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