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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9일 10시 11분 등록

※. 어제 칼럼 쓰고 올렸는데, 아침에 문득 이런 주제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서 다시 써봤습니다. 이전 글에 답글로 달려고 했는데.. 못찾고.ㅜㅜ.. 이전 글을 지우려고 했더니 사부님이 댓글을 달아 두셨네요.;; (명기님 좀 만들어주세요.ㅋㅋㅋ)

하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영화 나비효과를 기억하는가? 어릴 적 충격적인 기억 때문에 기억의 파편만을 지니고 살아가는 주인공 에반. 어느 날 자기가 써왔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를 찾게 된다. 사랑했던 여인 켈리의 자살을 막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에반은 과거의 순간들을 하나씩 바꿔보기 시작한다. 첫 번째 선택은 그의 개를 살려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레니는 미치광이가 되고, 켈리는 창녀가 되어 사회적 부적응자가 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힘든 삶을 살게 된다. 이 선택의 결과 역시 에반을 괴롭게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선택은 아이를 살려 내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에반은 장애인이 되어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장애인이 된 에반은 순간순간 짜증뿐인 삶을 살게 되고 견디기 힘들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너무 크다. 그래서 다시 세 번째 선택을 하게 된다. 켈리를 위한 행동이었지만 결국 켈리를 죽이게 된다. 어릴 적의 기억들 중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의 선택을 바꿨더니, 10, 20년 동안 너무나 다른 결과의 인생이 펼쳐졌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결국 그의 마지막 선택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만남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를 만남으로써 생기게 되는 불행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것이 에반의 마지막 선택이다. 그래서 켈리를 처음 만났던 파티장면으로 돌아가고, 그 파티에서 그는 그녀를 내쫓아 버린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 어느 도시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켈리와 에반은 어릴 적 파티에서처럼 스치듯 지나가는 우연한 인연이 된다

 

삼국유사에서도 한번의 선택이 두 여인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 있었다. 바로 유신의 여동생 보희와 문희의 이야기다. 유신의 맏여동생(보희) 꿈에 서형산 꼭대기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더니 오줌이 흘러 나라 안에 가득 퍼졌다. 자신의 꿈이 왕비가 있는 천하 제일의 길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보희였지만 당시 신라의 엄격한 골품제와 시대상으로 성골도 진골도 아닌 가야계 출신인 자신이 왕비가 없다고 판단해 이루어 없는 꿈을 꾸며 가슴 졸이며 사느니, 당시로서 고가인 좋은 비단치마를 받고 꿈을 동생인 문희에게 팔았다.
며칠 , 유신이 춘추공과 함께 공차기를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지게 되었다. 유신이 말하기를, “마침 우리 집이 가까이에 있으니 가서 옷고름을 답시다.” 하고는 함께 집으로 가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조용히 보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꿰매라 하였더니 보희는 과년한 처녀가 어찌 사내 앞에서 옷고름을 매냐며나오지 않았고, 문희가 앞에 나와 옷고름을 꿰매어 달았다. 단장은 수수했으나 날씬한 몸매에 환하게 어여쁜 얼굴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
그뒤 김춘추가 자주 내왕하였는데, 김유신은 문희가 임신한 것을 알고부모에게 고하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무슨 까닭이냐?” 꾸짖고 국중(國中) 누이를 태워죽인다는 말을 퍼뜨렸다
.
하루는 선덕여왕이 남산(南山) 놀러가는 것을 기다려 나무를 마당 가운데 쌓고 불을 질러 연기를 내었다. 왕이 연기를 보고 물으니, 좌우에서 김유신이 누이를 태우려는 같다고 하였다. 왕이 연고를 물으니, 그의 누이가 남편 없이 임신한 까닭이라고 하였다
.
왕이 김춘추의 소위인 것을 알고 속히 가서 구하라고 하였다. 김춘추가 명을 받고 말을 달려가서 죽이지 못하게 하는 뜻을 전하고 혼례를 행하였다. 문희는 김춘추가 진덕여왕에 이어 왕위에 오르자 비가 되었다. 소생으로는 문무왕인 태자 법민(法敏), 각간(角干) 인문(仁問문왕(文王노차(老且지경(智鏡개원(愷元) 등이 있다
.
슬프게도 우리나라 역사서 어디를 보아도 꿈을 보희의 후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한군데, 화랑세기 필사본에 보희의 후일 행적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보희는 꿈을 바꾼 것을 후회하여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았다. 춘추공은 이에 첩으로 삼았는데, 아들 지원과 개지문을 낳았다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어릴 적 꿈을 사고 팔았던 순간의 선택이 결국 한 여인은 한 나라 왕의 정실부인을 만들었고, 또 다른 한 여인은 후실부인으로 만들었다. 한편으론 문희가 그 꿈을 사지 않고, 보희가 그 꿈을 팔지 않았다면, 두 여인의 운명은 지금과 완벽하게 정반대로 바뀔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릴 적 나의 선택은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영화 나비효과의 에반처럼 나도 나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들여다 보고 싶은 욕구가 스물스물 밀려든다. 평이했던 일반적인 선택과 달리 굉장히 끔찍했던 순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순간의 선택으로 아마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중학생 때였다. 학교를 마치고 여느 때와 같이 학원을 가기 위해 밥을 먹고 있었고 동생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작은 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또 시작된 엄마와 아빠의 싸움. 그때까지만 해도 힘이 더 셀 수밖에 없었던 아빠. 언쟁이 시작되면 늘 아빠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기에 엄마는 거실로 나왔다. 아이들이 있는데서는 그나마 자제력이 있었던 아빠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아빠의 분노도 극에 달했나보다. 아이들이 보든 말든,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또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손지검을 한다. 그 날이었다. 아빠의 분노 못지 않게 나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점. 사춘기라 예민한 시점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분노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밥을 먹다가 한 손에 커다란 식칼을 들고 뛰쳐나갔다. 그리고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제발 그만하라고. 더 이상 못참겠어!!! 아빠 죽여버릴거야.” 울면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뻥 뚫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이 너무 슬퍼서 정신을 놓을 정도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잠깐의 정적. 엄마는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애기 착하지…?” 그리고 내 손에 있던 식칼을 가지고 갔다. 그때는 정말 아빠를 죽이고 싶었다. 아빠만 세상에서 사라지면 우리 집 식구들은 정말 화목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조금 더 미쳤더라면 아빠를 내 손으로 죽였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 사건 이후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일이 예전만큼 잦진 않았다. 아빠도 엄마도 그렇게 착하고 말 잘 듣는 딸이 미친년이 되는 것을 보고 충격이 크긴 컸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생에 처음으로 내 안에 엄청나게 쌓여있었던 분노를 한번 털어낼 수 있었던-정말 털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에 그렇게라도 내 감정이 폭발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내 삶이 지금까지처럼 과연 평탄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그 당시 정말 내가 아빠를 죽였다면 희대의 불효녀 살인마로 낙인 찍혀 지금과는 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건 왠지 등골이 오싹해 질 정도로 섬뜩한 이야기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선택이 있다. 대학교 1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평생 연락도 자주하지 않던 아빠가 서울에 오셨다는 전화가 왔다. 아빠는 기차 여행도 할 겸 딸을 보러 왔다고 했다. 학교 앞으로 찾아 오셨다. 아직 철이 없고, 학교생활을 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그저 좋기만 했던 나는 아빠에게 자취방 문을 열어주고는 다시 학교로 가버렸다. 반갑고 보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매일 보던 아빠 대하듯 말이다. 몇 시간이 흐르고 아빠에게 왔던 문자 한통.

 

아빠 다시 대구 간다.” 그리고 내가 보낸 문자. “네 아빠, 잘 가요

 

어쩌면 어릴 적의 아버지에 대한 그 분노는 시간이 지나, 다행히 더 커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사그라들지도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딸래미 학교는 어떻게 생겼는지, 서울에서 혼자서 잘 살고는 있는지 한번 보고싶어서 먼길을 왔던 아빠에게 말 한마디 살갑게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1분 거리에 살면서 학교 캠퍼스 한번 구경시켜 드리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 보내 버렸다. 사실 이런 후회도 당시에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아빠의 문자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 후에도 4-5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후회라는 감정이 생겼다. 젊은 나이에 부러울 것 없이 살다가 갑자기 장애인이 되어서 자신감도 잃고,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자괴감에 힘들었을 아빠. 아빠도 알고 보면 정말 외로웠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텐데.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내가 좀 더 아빠에게 잘 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지금도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지난 주에는 앞으로의 진로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작년 12월 말부터 일한 회사를 지난 주에 인수인계를 하고 퇴사했다. 회사 일을 하면서 만났던 분이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을 주셨다. 막걸리와 점심 초밥세트를 판매하려고 준비중인 사장님과 모히토를 만드는 재료를 오프라인 판매만 하고 있는 사장님의 온라인 판매를 맡아서 해 보라고 제안을 했다. 주변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처음에는 전자의 사장님과 같이 일을 보는 것으로 마음의 결정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민은 다른 고민을 낳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뭘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성장할 있을까?"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영업"이었다. 어떤 분이 내게 말씀 해 주신 것처럼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믿거나 말거나-" 내가 영업을 한다는 것은 장점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영업을 왔고, 앞으로도 사무실에만 쳐박혀 일을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막걸리 사업을 하는 사장님을 선택했을 , 영업을 모르시고, 스스로 영업에 대한 자신이 없다고 하는 분과 일을 함으로써, 겪게 상황은 왠지 눈에 뻔하게 보인다. 혼자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결국 지금처럼 지쳐버릴 것이다. 한편으론 조금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냥 몸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는 알바를 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과 경력이 조금 아깝다. 그래서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긴 하지만, 온라인 영업을 한번 해보기로 결정했다. 블로그를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한번쯤 해보고 싶었기에 좋은 기회가 같고, 오픈 마켓에 판매하는 것도 나름 경험해 보면 언젠가 도움이 있을 같다. 사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당장은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나면서 조금 지친 같다. 사람들을 만나 나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기분 좋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으면 '사람을 끄는 매력' 따위 발휘 일이 없긴 하겠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도 다시 웃으면서 대할 있는 에너지를 만드는 것일 같다. 당분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말이다
.

지금 선택이 내 인생을 또 어떻게 바꿔놓을지 모르겠다.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알 수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 단지 지금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또 다른 좋은 기회들이 주어 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이 날개짓이 10, 20년 뒤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지 무척 기대가 된다.

IP *.107.1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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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5.09 10:22:37 *.23.188.173
미나의 파워가 다시 돌아오나 보다.
이글 읽다가 눈물이 핑돈다. 뭐... 너는 그럴 의도로 쓴 글이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하나도 힘든 칼럼을 두개씩 쓰는 너는 뭐냐~~~~~
그래도 칼럼이라는 게 그렇지? 한번 생각나는 것이 생기면 술술 자리를 잡아가는 것
나는 그러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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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3:31:44 *.166.205.132
밑의 미나가 또 쓴거여? 가명으로 누가 대신 쓴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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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09 18:21:16 *.35.19.58
미나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셨다면 미나가 정말 좋은 딸이 되어 있을텐데 아쉽다.
이렇게 우리는 나이가 드나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후회하면서 말이다.
참 궁금하네. 미나의 지금의 날개짓이 어떤 결과를 만들게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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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5:01:40 *.109.82.151
고맙다 미나야.
우리 이곳에서 만큼은 마음껏 드러내자.
그럴 수 있는 곳이 잖아. 그러기 위해 온 거구.
내가 잘 아는 것,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게 맞는 것 같아.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지. 바로 나의 이야기.
미나도 그렇게 방향을 잡은 것 같구나. 반갑다.
마음껏 뿜어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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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2011.05.10 06:48:23 *.111.51.110
이제야 글을 제대로 읽었다.
위에 농담처럼 쓴 댖글이 부끄러워지네~
미나는 속 깊은 얘기를 어렵게 꺼내놓았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나비효과'에서 시작된 너의 이야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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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11 07:50:44 *.219.84.74
선택이라는 순간이 길을 갈리게 하지만
선택이라는 순간이 길 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 깊이 생각해서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나 또한 아무도 옳은 선택이라 격려해 주지 않았지만 걸어보니 썩 나쁜 것 같지 않다.

경험이라는 배움에서 너는 나보다 더 어른이구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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