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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6일 22시 20분 등록

 내가 좋아하는 신화 에로스와 프쉬케

 

프쉬케는 이 세상의 가난한 언어로는 도무지 그려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공주였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아니고는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게 된다. 아프로디테는 질투심에 불타 그의 아들 에로스를 불러 프쉬케의 아름다움만큼의 그녀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라고 명령한다.

 

어머니의 명령을 받은 에로스는 프쉬케의 침실에 숨어 들었고 그녀의 입술에 넘치는 것을 모자라게 하는 쓴 물 두어 방물을 떨어뜨려 그 어떤 남자도 그녀를 사랑하지 못하게 해버린다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뺏긴 에로스는 실수로 금화살 촉으로 자신을 찌르게 되고 이로 인해 프쉬케를 사랑하게 된다. 누구도 청혼을 하지 않자 딸을 걱정하던 왕은 그녀의 운명을 알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을 찾았고, 프쉬케는 신탁에 따라 바위산 꼭대기에 사는 괴물의 아내로 살겠노라며 길을 떠난다.

 

깊은 숲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궁전에 들어간 프쉬케는 신랑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신혼을 보낸다. 신랑을 의심하던 프쉬케는 언니들의 꾀임에 속아 남편의 얼굴을 확인할 결심을 하게 되고 한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알게 된다. 신랑은 괴물이 아닌 미소년이었다. 프쉬케는 충격으로 등잔의 기름 한 방울을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뜨렸고, 에로스는 말없이 날아가 버린다.

 

프쉬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운 남편도, 아름다운 궁전도 모두 사라져버리자 프쉬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 신전에 이르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아프로디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 마치 콩쥐팥쥐 이야기에 나오는 계모처럼 아프로디테는 프쉬케에서 어렵고 힘든 일감을 준다. 하지만 개미떼의 도움으로 각종 곡식을 종류별로 분류할 수 있었고, 강의 신의 도움으로 사나운 양떼의 금빛 털을 뽑아 오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임무는 저승의 왕비 페르세포테에게 얼굴 단장에 필요한 단장료를 얻어 오는 일이었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도움으로 단장료를 얻어 돌아오는 길에, 프쉬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단장료가 든 상자의 뚜껑을 열게 된다. 하지만 그 상자에는 단장료가 아닌 '잠의 씨'가 들어 있었다. 페르세포네는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때문에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가 된 옛일을 앙갚음하기 위해 잠의 신 휘프노스에게서 얻어 둔 잠의 씨를 프쉬케에게 건내 준 것이었다. 프쉬케는 저승의 잠에 떨어지고 말지만 에로스의 도움으로 깨어나고 제우스의 도움으로 둘은 영원히 사는 신이 되어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 후에 사랑(에로스)과 마음(프쉬케)이 결합해 딸 '기쁨'을 낳았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중에서 에로스와 프쉬케편 요약

이 신화가 좋은 이유

 

1)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여자가 주인공인 신화는 찾아 보기 힘들다. 신화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선택 당하고 주도 당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주인공인 경우에도 그다지 긍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스퀼라, 메데이아, 아리아드네는 사랑에 눈이 멀어 부모를 배신하지만 결국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버림 받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오비디우스>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자 영웅은 테게아의 여걸이자 뒤에 륀카이오스 숲의 자랑거리라고 불리게 되는 여전사 아탈란테다. 하지만 이야기도 짧고 그 비중 또한 크지 않다. <에로스와 프쉬케 이야기>는 여자인 프쉬케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이야기라서 애정이 간다.

 

2) 끊임없이 고뇌하고 실수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프쉬케는 이 이야기에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여러 번의 선택을 하게 된다. 신탁에 따라 살겠다며 가족을 떠났고, 남편을 의심하다 그를 잃었으며, 데메테르와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으려 노력했다. 물론 단장료 상자의 뚜껑을 열어 그 동안의 노력을 헛되이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프쉬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어두운 방에서 울고만 있지는 않았다. 마음에 의심을 품고 끝없이 남편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또한 자신의 실수를 곱씹으며 후회의 나날을 보내지도 않았다. 마지막에는 순간의 실수로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잃기도 했지만 바로 그 실수로 인해 제우스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에로스와 영원한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실수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프쉬케의 모습에서 내가 보인다.

 

3) 주도적인 선택을 보여준다.

 

프쉬케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했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선택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삶에는 3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성공한 삶, 실패한 삶, 어영부영한 삶. 인생을 주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얻을 수 없다. 어영부영한 삶이란 선택을 회피한 선택의 결과다. 어떤 길을 걷든 주도적인 선택을 한 사람만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어영부영한 삶이라면 그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 게으름일 것이다.

 

나는 지금껏 어영부영 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든 성급하게 결정했다. 매 순간 마음이 분주했고 해야 할 일로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우선시하면서 살았다. 남들이 만들어 틀에 나를 맞추려 했다. 사회적 성공이 나의 최우선 과제였다. 나는 이제 나의 천복을 따르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아닌가? 나를 위해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나의 행복을 위한 삶을 일구고 싶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프쉬케처럼 종국에는 행복한 삶을 일구고 싶다 

 

나의 신화 선덕왕과 유재령

 

눈부시게 아름다운 관음보살이 현현하시더니 내 머리 위에 찬란한 금빛 가루를 뿌려주신다. 가루를 입은 내 몸은 한없이 가벼워지더니 두둥실 떠올라 하늘을 오른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한 신령스러운 정원을 지나 극락의 문을 지키는 동자승들이 나에게 합장한다. 한없이 따뜻하고 향기로운 기운이 가득한 극락궁에서 부처님을 뵈는데 그 옆에 덕만 공주가 금관을 쓰고 용의 자수가 가득한 옷을 입고 앉아 있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위엄을 동시에 지닌 여왕의 모습 그 자체였다.

 

꼬기오~’ 첫 닭 우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다. 흘러내린 머리를 가다듬으며 간밤의 꿈을 생각해 본다. 이제 신라 땅에서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성골은 덕만, 천명, 선화 공주가 남았다. 성골 남자가 없기는 하지만 여인의 왕위 계승에 대해서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 시절이다.

 

오늘은 당나라 상인들이 서라벌에 도착하는 날, 올해 장사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날이다. 나는 당에서 온 상인들을 응대하고 흥정을 하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나는 신라 제일의 거상인 금보여각의 객주 유재령이다. 아버지는 내가 평범한 여인의 삶을 살길 바랬지만 나는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다. 성골도 진골도 아니며 여인의 몸인 내가 세상을 호령할 방법은 오직 하나, 재물을 모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부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전도유망한 사내를 골라 결혼해 정경부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안방마님이 되어 노리개만 만지작거리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신라 땅에서 거래되는 비단, 향수, 단장료, 패물 중에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물건을 볼 줄 아는 안목과 사람의 마음을 읽어 거래를 성사시키는 법을 아버지에게 배웠고 그 수완을 발휘해 금보여각을 신라 최대의 여각으로 키워냈다.

 

덕만 공주가 은밀히 사람을 보내 나를 궁으로 불렀다. 봉황의 태몽을 안고 태어난 공주답게 덕만은 총명하고 담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라면 왕위를 이어도 손색이 없을 듯싶었다. 공주는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한 신라를 만들고 싶소. 왕실과 신하들은 내가 여인의 몸이라고 반대하고 있지만 나는 반드시 왕위에 오를 것이오. 나는 얼마 전 꿈에서 부처님의 극락궁전에서 그대를 만났소. 이는 당신과 일을 도모하라는 부처님의 뜻이오. 나와 함께 신라를 위해 일하지 않겠소?”

 

그녀와 나는 마음이 통했다. 여인의 몸이지만 큰 뜻을 품은 그녀의 기개가 나의 그것과 닮았다. 나는 그녀와 의기투합해 강성한 신라를 만들기로 결의했다. 우선 그녀를 왕으로 세우는 일이 시급했다. 나는 인맥과 자금력을 총동원해 그녀를 물심양면 도왔다. 비밀회합을 열어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을 끌어 모았고 당나라 거상인 왕대인에게도 사람을 보내 당태종의 윤허를 얻기 위해 비밀리에 작업했다. 부처님의 뜻에 따라 그녀가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될 운명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632년 덕만 공주는 신라 제27대 왕으로 즉위했다. 선덕왕은 왕위에 오른 후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고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상대등의 벼슬을 얻어 출세하였다. 여왕을 여인 상대등이 보좌하자 조정에서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여인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선덕왕의 뜻에 따라 여인들을 교육하는 숙명당을 설립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이 출중한 여인이라면 누구든 숙명당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들이 수련했지만 진흙 속에 숨어 있던 부인네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여인들은 숙명당에서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논하며 성장해갔다. 숙명당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여인은 선덕왕의 비밀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부처님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분황사 석탑 디자인을 구상했고, 호국불교의 염원을 담아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고, 백성들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첨성대를 만들었다. 선덕왕의 주요 업적에 숙명당 인재들의 땀과 노력이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또한 숙명당 인재들과 함께 신라인들의 지혜와 기술을 담은 각종 서책을 출간했다. 특히 여인들이 주도적인 삶을 사는데 필요한 책에 집중했다. 지아비가 없는 여인들이 어떻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의 사업 경험을 기반으로 세세한 방법을 일러주었다. 지아비 또는 자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국을 돌며 찾아내 사례집을 만들어 내었고 여인의 몸을 주제로 한 의학서적도 출간했다. 신라 여인들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비단 짜기, 요리하기, 몸단장 하기, 바느질하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실용서들도 만들어 내었다.

 

여인들의 고충을 상담해주는 나비관도 설립했다. 나비관에서는 숙명당의 인재들이 상담사로 활동했는데 전국에서 여인들이 몰려들었다. 시어머니와의 악화된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상담하는 부인네도 있었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정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혼인을 앞둔 처자도 있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 서당을 밥 먹듯 빼먹는 아들을 둔 어머니도 찾아 왔고 지아비와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중년의 여인도 찾아 왔다. 이에 나비관에서는 한 달에 한번씩 특정 주제를 정해 강연회도 했다. 경제, 관계, 건강, 직업이 주 테마였는데 여인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나비관에 찾아왔던 여인들은 지루한 애벌레의 시간을 보내고 화려한 나비가 되어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창공을 날았다.

 

선덕왕과 나는 찰떡궁합이었다. 우리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라의 여인들이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행복한 한살이를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녀와 나의 꿈이었다. 그녀는 왕으로, 나는 상대등으로 일하며 우리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았다. 그렇게 평범하고 특별하게 우리는 늙어갔다. 신라는 점점 강성해졌고 신라의 여인들은 더욱 더 행복해졌다. 여인들이 행복해지자 남정네들도 행복해졌고 신라 전체에 활기가 돌았다. 숙명당에서는 여인들의 학문이 깊어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나비관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 여인들로 언제나 성황을 이뤘다. 우리가 출간한 책들이 당나라에까지 전해져 이국의 여인들에게도 도움을 주었으며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에까지 전해졌다. 이웃나라 여인들이 신라를 방문해 그 비법을 배워가 자신의 여인들을 이끌었다.

 

그녀와 나는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의 꿈과 이상은 여전히 이 땅의 여인네들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가끔씩 그 기운이 약해지곤 하는데 2011, 그 기운을 일깨울 여인이 모처에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 하니 한번 기대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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