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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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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2일 20시 09분 등록

무릇 주부라 함은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을 말한다. 예전에야 부인은 안살림을 하고, 남편은 바깥 일을 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지만 요즘은 부인도 밖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부는 둘로 나뉘는데,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 일만 하는 전업주부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주부가 있다.

 

경기 분당 서현에 사는 재령부인은 14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작년 말부터 전업주부가 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른 부인이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집에 있으면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일할 것이라 호언장담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전업주부 생활을 꽤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애초 계획한 1년 동안의 전업주부 생활을 더 연장하고픈 마음이 자라나 걱정이라고까지 한다. 재령부인의 전업주부 생활이 어떠한지 한번 엿보아 보자.

 

재령부인이 말하는 전업주부의 최대 장점은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물론 이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다.) 재령부인의 경우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나서면 부인은 간단히 집안일을 마친 후 집을 나선다. 퀼트 강좌에 가고, 서예 교실에 간다. 간혹 조조영화를 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도 하며, 가끔은 운동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과제를 한다. 물론 이 시간에 아무개 주부네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홀짝이며 시시콜콜 연예인 이야기를 하거나, 새로 산 옷이나 백, 구두를 품평회 하거나, 남편이나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을 씹어대는 이들도 있다.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는 하나 그리 생산적인 모임은 아닌 듯 하다.

 

살림이란 것이 사실 제대로 하자면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냉장고 청소를 하고, 욕실 청소를 하고, 수시로 장을 보아 요리를 하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조금만 게으름을 부려도 화장대 위 먼지는 뽀얗게 쌓여가고 가스레인지 주변은 음식물 자국으로 어지럽다. 그뿐인가? 계절이 바뀌면 옷장 정리도 해야 하고 세탁소에 맡길 옷들을 추려 놓아야 하니 좀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틈을 내기 힘들다. 당신이 만약 전업주부는 한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퇴근도 휴가도, 월급도 잔업수당도, 승진도 상여금도 없이 끊임없이 가사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직업이 바로 전업주부가 아닌가? 재령부인 역시 전업주부의 분주함과 고단함을 고스란히 감당해내고 있다. 가사일에 매우 협조적이었던 남편이 밥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집에서 놀고 있다는 이유로 외면하기 어려운 일들이 갑자기 떨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전업주부는 일의 경중을 따져 완급을 조절할 수 있으니 여유시간 활용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자신의 여유시간에 한 가지 취미에 매진하거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그 분야에서 나름의 성취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재령부인이 다니는 서예 교실에는 5~60대의 서예 작가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10년 이상 서예에 주력한 주부들로 그 실력이 가히 수준급이다. 부인의 퀼트 선생님 또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퀼트를 배우기 시작해 이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주부다. 부인의 지인 중에는 오랫동안 철학과 종교에 대한 책을 읽고 강좌에 참석해 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이도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여기서도 여지없이 증명된다.

 

반면 전업주부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활동의 대가, 즉 고정수입이 없다는 것이다. 재령부인이 직장인일 때,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부인에게는 큰 기쁨이자 자부심이었다. 직장 경력이 쌓일수록 승진을 했고 연봉도 올랐으니 그 맛에 직장생활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남편의 수입에 의지해 살림을 꾸려 나가자니 가계부에는 붉은 숫자가 끊이지 않고 슬쩍 눈감고 넘겨버리고 싶은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재상이었던 관중이 말하길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 이는 옳은 말이다. 내가 번 돈, 내 맘대로 쓴다 생각했던 직장인주부 시절에 비하면 씀씀이도 줄고 그 마음도 바람 빠진 풍선마냥 작아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에 재령부인은 효율적인 소비 생활을 위해 올 초부터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종이 가계부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가계부를 이용한다. 스마트폰은 항상 휴대하고 다니니 장소에 상관없이 내용을 입력할 수 있으며 결과를 자동 분석해주어 편리하다. 고정 지출은 제외하고 가변 지출만 기록하면 기록할 분량을 줄일 수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부인은 또한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무소유의 삶과 자급자족 하는 삶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되도록 사들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이들 앞머리를 직접 잘라준다. 금새 자라는 앞머리 때문에 미용실에 가기도 번거롭고 그 비용도 아낄 겸 미용가위로 잘라주다 보니 직접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들도 좋아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또한 부인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각종 주민 편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예전에 동사무소라고 부르던 주민자치센터는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취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재령부인이 참석하는 퀼트 강좌의 수강료는 3개월에 1만원, 헬스장 이용요금은 3만원에 불과하다. 영어, 일본어 회화에서부터 요가, 밸리 댄스, 사진 강좌까지 웬만한 프로그램은 구비되어 있으니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저렴한 가격에 얼마든지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 지난 어린이날에는 성남시청에서 마련하는 어린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해 큰 돈 들이지 않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전업주부라 좋은 점은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인은 매일 아침 9시면 둘째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타러 집을 나선다. 직장 다닐 때는 꽃이 피는지 지는지, 낙엽이 드는지 지는지 모르고 살았던 부인은 이제야 생의 첫 봄을 만끽하고 있다며 얼굴을 붉힌다. 부인은 아이와 함께 꽃비를 맞고 라일락 향기를 맡으니 정신이 아득해져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했단다. 처음으로 학부모총회에 참석하고, 체육대회에서 어머니 줄다리기를 하고, 공개수업에 참석해 큰 아이를 위해 손을 흔들어준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부인은 다행이라 생각한단다.

 

재령부인에게 전업주부라 좋은 점을 한가지 더 꼽아 달라 하니 마음껏 공부하는 즐거움을 말한다. 부인은 매주 팔백쪽이 넘는 책과 씨름하며 보내는 시간이 괴로우면서도 즐겁다고 한다. 직장에 다녔으면 그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을 것이다. 업무와 가사일에 치여 공부에 충실할 수 없을 테니, 무엇을 즐길 수 있겠는가? 매주 책의 저자를 조사하고, 좋은 문구를 필사하고, 내가 쓴다면 이렇게 쓰겠다 구상하니 이것이야말로 책 한 권을 꼭꼭 씹어 먹는 것이다. 평생 가르침을 받을 스승을 만났고 함께 수련할 도반들 또한 만났으니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배가 부르다. 무덤에 누워있는 세계의 석학들을 불러내 가르침을 받고, 스승이 갈 길을 밝혀주니 이 시간들이 마냥 소중할 따름이다.

 

재령부인은 말한다. “내가 전업주부와 직장인주부 노릇을 모두 해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인으로 태어나 직장인주부와 전업주부 이 둘 모두는 해 볼만한 일이다. 직장인주부로만 살면 전업주부의 분주함을 이해할 수 없고, 전업주부로만 살면 직장인주부의 고달픔을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이 둘을 해봐야 그 이로움과 아쉬움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직장인주부라면 잠시 전업주부로 살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전업주부라면 무엇인가에 매진해 자신만의 성취를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잠깐 멈추었다 해서 뒤쳐지는 것은 아니며 오랫동안 쉬었다 해서 다시 시작하지 못할 법은 없다. 또한 상황에 따라 누구라도 직장인주부와 전업주부의 모자를 바꾸어 쓸 수 있으니 편가르지 말고 서로 돕는 것이 좋겠다. 주부라면 누구든 가사 노동과 아이 양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서로간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주부라면 마음 속에 자신만의 세상 하나씩은 품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온전히 혼자 설 수 있으며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남편이든 아이든 내가 온전히 선 다음에 보살필 수 있다. 나를 세운 후 가족을 세워라. 그 안에 들어가면 아늑한 행복감을 느끼는 나만의 세상, 그 하나를 찾아보라. 구하면 얻을 것이요, 준비가 되면 일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

그대여, 구하고 있는가? 그대여, 준비가 되어 있는가?”

IP *.35.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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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04:02:06 *.205.67.118
이번에도 참 맛깔나게 칼럼을 쓰셨네요^^ 앞으로 혹시 서예와 퀼트의 전문가도 되시는 건가욤?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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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5.23 15:37:50 *.142.255.23
ㅋㅋ.. 서예 선생님 왠지 잼있는 분이실듯.. 미스유.. 미스 '누구누구'라고 부르는 것 참 오래간만에 듣는다능..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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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23 14:41:41 *.35.19.58
서예 선생님이 맨날 말하신다. ㅎㅎ

"미스유, 미스유는 젊어서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초대 작가 문제 없어.
내가 밀어 줄테니까 날 믿고 열심히 써.
글씨가 든든하고 힘이 있어서 좋아. 아주 좋아."

나 정말 서예작가 되는거야?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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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23 04:56:27 *.69.251.200
2011년 한국에 다수의 전업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편의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여인들이었지만 그들의 전투력은 눈여겨 둘만하다.
아이들의 교육에 너나 나나 할 것없이 집착하였고, 
각종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끊임없이 배우고 익혔으며,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위해서 각별히 신경썼다.
특히, 전업부인들은 마을 단위로 수다를 떠는데 특히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는데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는 없고, 오로지 아이들과 남편의 부족함이 그것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뒷집, 옆집 아줌마의 뒷다마(?)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들의 이야기에서 빼놓은 수 없는 앙꼬였다.

하지만 재령부인께서는 옛 선인을 비롯한 현대의 석학들과 1주일에 800페이지 분량의 썰(說)을
풀어 헤치고, 일필휘지 그녀의 뜻을 글로 표현하였으며
땡7이라는 중생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잘 이끌어 주어 이들의 깨어남에 큰 도움을 주었으니
무릇 다른 부인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과히, 그녀는 전업부인들의 롤모델이라 불릴만하였다. <재경 설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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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해
2011.05.23 10:37:57 *.113.130.40
끼야악~
댓글 재밌당. 일필휘지가 제일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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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10:52:35 *.45.10.22
우리 7기의 든든한 큰오라버니!
그대가 이곳에 함께한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큰 힘이 됩니다 ^^
전 언제쯤이나 주부가 되어볼까요? 
나는 주부다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네요 저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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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23 14:39:54 *.35.19.58
으하하하, 오라버니 너무 재미있어요.
사마천이 살아 돌아온 것 같고 고운기 교수님이 쓴 글 같네.
재경 설화 마음에 든다.
고마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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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08:42:46 *.45.10.22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 언니랑 함께가는 이 길이 얼마나 즐거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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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5.23 09:49:12 *.23.188.173
언니의 글도 훈오라버니의 댓글도 멋지다~
둘 다 해보아야 한다는 말이 확 와닿네요....
나는 일을 할 자신은 있는데 정말 전업주부만큼은 힘든 듯 해요
전업주부의 딩가딩가 부분은 자신이 있는데....
나만의 세상이 필요하다.
이 말은 정말 저도 뚜렷이 느끼는 부분이네요^^
언니의 글은 점점 더 끌어당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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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23 14:42:38 *.35.19.58
루미같은 스타일이 집에서 살림하면 잘할 스타일이야.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연습해야지.
나만의 세계는 아직 어리니까 지금부터 찾아도 늦지 않으니 걱정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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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10:36:24 *.124.233.1
맞아요 누나.
전업주부가 되든 직장인주부 되든
스스로 온전히 설 수 있어야만 가족들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겠지요? ^^
형님과 누나의 발자취를 보며 제 미래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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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5.23 15:39:27 *.142.255.23
진심.. 국가차원에서 전업주부들에게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는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능!!! 아.. 언니 글은 너무 언니스러워요.. 나 왜 글에서 '유재동'이 느껴지는거냐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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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23 18:40:51 *.35.19.58
나 공약 실천하고 있는거 맞는거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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