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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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오월의 시간은 생동감이 넘친다. 계절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나는 늘 머뭇거림이 많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이것 저것 생각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확인해야 하고, 나를 상대하고 있을 누군가의 마음도 짚어보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거침없이 걷고, 웃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책 없는 매력에 빠진다. 작은 것 하나에도 경이의 큰 눈을 뜨거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얼굴이 구겨지도록 웃는 사람들, 음정이 고르지 못한 노래를 열성적으로 부르거나 넘어지더라도 걱정 없이 걸음을 내 딛는 사람들, 그런 삶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부럽다. 머뭇거리는 나는 오월의 날씨처럼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이 부럽다.
멋진 날씨엔 더 멋지게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멋지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멋진 삶이라는 화두를 두고 생각을 거듭해보니 두 가지 단어에 이른다.
색깔과 깊이. 자신의 길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피어있는 사람을 보면 시선이 머문다. 평범하지 않은 독자성으로 자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요동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램과 여태껏 하지 못한 회한이 일으키는 화학작용이다.
색깔은 자신만의 자아로 피어나는 것이고, 깊이는 자신이 실재하는 길에서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느 누군들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자아를 만나고 그곳에서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바램만큼 이런 피어남과 도달함에 다다르지 못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무엇이 아름다운 색깔로 꽃피우거나 시들거나 혹은 도달하거나 꺾이게 하는 것일까?
생동하는 오월의 한나절, 나는 지금 마음 담고 있는 곳에서 질문의 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승님과 동지들의 환한 웃음 속에 답이 있다. 그들은 생을 이야기하고 웃는다. 때론 울지만 그것은 낙망의 울음이 아니다. 낙망 속에서 견디어 새롭게 피어나는 씨앗을 노래하는 울음이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본다.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과 그것을 믿고 걸어가는 견딤이 우리의 생을 가르는 어느 한 지점임을. 꽃피우거나 시들거나 도달하거나 꺾이는 어느 한 순간을 가르는 대목임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에는 나를 불사르게 하는 생의 즐거움이 감추어져 있고, 견디어 도달하게 하는 것에는 진리를 깨닫는 기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림자 없이 태어나는 것은 없다.
자신만의 자아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부활의 빛나는 깨달음이 필요하고, 하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생동하는 삶의 초입에 서 있다. 시일이 많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나는 깊이 있는 색깔로 활짝 피어나고 싶다. 그래서 멋지게 살고 싶다. 내가 피어날 색을 기대해본다.
역사는 멋지게 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선악(善惡)을 떠나서 자신의 삶을 살다간 이들의 명멸(明滅)이 작용과 반작용하며 역사라는 흐름을 돌리고 있다. 역사의 페이지는 생동감이 넘친다. 사(史)의 기록에는 평범함이 없다. 하나 하나가 독자성을 가진 깊은 사연이다. 역사의 생동감에는 승리와 패배, 기쁨과 죽음이 교차하고 있다. 지면 죽음이요, 이기면 사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이야기가 삶의 이야기이고 역사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기는 삶을 이야기하고, 이겨서 기쁜 삶을 남기고 싶다. 부자의 삶도 아니고, 명성과 영예가 있는 삶도 아니다. 나 스스로 내 안에서, 나와 싸워 이기고 싶은 그 부분에서, 나를 이겨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 이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소질(素質)'에 대한 발견이라 생각한다. 소질이란 하늘이 주신 선물로 내가 타고난 무엇이다. 그 무엇이 자신의 색깔을 빚어내어 하나의 독자성을 만들어 내면 역사라는 시간 위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나의 색깔을 만들어 내는 재료와 같은 것이 소질이다.
하워즈 가드너의 책 <열정과 기질>에는 영웅들의 삶이 어떤 경지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활짝 피어있다. 각자의 소질과 개성을 가꾸어 역사의 한 대목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나는 피었노라, 나는 이겼노라." 이야기 하고 있다. 박수갈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듯 이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늘이 주신 선물을 논외하고는 불가능하다. 나의 소질, 나의 재능을 깨닫고 이것을 무기로 세상을 사는 것이 삶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가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소질을 찾고 그리고 그 길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다. 그 길을 놓지 않는 것이 색깔을 깊어지게 하는 비법이다.
현대 무용의 혁명가 마사 그레이엄은 말한다.
"여러분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활기찬 인생을 사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삶, 그리고 작품활동은 필연입니다. 마치 동물처럼 다른 생각 하나 없이 오직 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선택은 없습니다. 동물이 일체의 속임수나 야망 없이 먹고 마시고 새끼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오월의 시간이 생동(生動)으로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머뭇거리지 말라고 한다. 기왕에 나선 길이니 힘찬 날개 짓으로 꺼져가는 소질의 불씨에 불길을 댕기라 한다.
나는 나의 색깔을 생각해본다. 나는 '파랄' 때가 좋다. 서슬 퍼런 기운, 온 몸의 기운이 한 개의 칼날처럼 곤두서서 어떤 것이라도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을 때, 새벽 기운처럼 차가우면서도 청아한 기운이 삿된 모든 것들을 덮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 때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일상이 무딜 때 느낄 수 없는 감동 같은 것이 내 삶에 자리한다. 감각은 올올이 작은 털처럼 민감하고, 보는 눈은 거스름 없이 보고자 하는 곳을 응시할 수 있다. 내가 '파랄'때 나의 힘은 가라앉음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무력(懋力)할 수 있다.
[점.점.이] 떨어지는 이런 파란 느낌이 많아지면 나는 나의 깊은 색깔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고 나의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기는 삶이 되고, 멋진 삶이 되는 것이다. 설렌다.
끝.
자신의 색깔을 찾는 일, 나에게 맞는 옷을 입는 일, 나만의 한 우물을 찾는 일.
형님의 그것은 무엇인가요?
매일 하는 수련은 나만의 명징한 그것을 발견한 뒤라야 진정한 수련이 되겠지요?
성마른 아우는 어서 빨리 그것이 찾아와
준비만 하는 일은 고만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장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니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움트고 여름의 뙤약볕과 모진 비바람을 견뎌 가을에 열매 맺는 것처럼
스승과 형님의 발자취를 따라 호들갑 떨지 않고 묵묵하게 걸어가려 합니다.
형님의 푸른 색이 멋진 승리의 하늘을 수놓는 그날을 바라며..^^